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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Oct 27. 2022

내 소울 브라더가 되어 주세요

안자이 미즈마루

안자이 미즈마루는 하루키와 30년을 함께 지낸 소울 브라더라고 한다. 하지만 하루키는 여전히 살아서 왕성한 작품 활동 중이고 안자이는 2014년에 이미 세상을 떠났다. 하루키의 팬이라면 안자이 미즈마루를 모를 리 없다. 만약 당신이 그 사실(안자이의 죽음)을 지금 알았다면, 당신은 하루키의 팬이라는 사실을 부정해야 할 것이다. 안자이를 잘 아는 나, 그리고 그의 작품을 자주 접한 나는 하루키의 팬이라는 사실이 입증된 셈이니 그나마 다행일까?


하루키의 에세이 몇 권(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먼북소리)과 소설 한 권을(기사단장 죽이기) 읽고 나서 뭔가 느낀 점(소설을 쓰고 싶다는 유혹 같은 것?)이 생겨서, 즉흥적으로 하루키의 장편 소설을 읽는 모임을 만들어버렸다. 소설을 읽으면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즉흥적으로, INFP 성향 답게, 하루키의 장편이 출간된 순서에 따라 아주 천천히, 거의 1년 넘게 읽는 중이다(드디어 다음 달이면 끝이 난다. 하루키가 좀 지겨워질 것 같기도 합니다만?)


하루키 이야기를 쓰려는 건 아니었는데, 나도 모르게 의식의 흐름이 하루키로 옮겨졌다. 역시 안자이를 연상하면 자동적으로 사고가 하루키로 몰아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뭐, 그래도 하루키는 안자이와 소울 브라더라고 하니, 그 정도는 안자이가 이해해 주지 않을까?


안자이 미즈마루의 일대기를 기념하는(?) 그의 에세이를 읽게 된 것은 역시 우연의 산물이었다. 지난 토요일 도서관 서가 사이를 떠돌다, 즉흥적으로 몇 권의 책을 뽑아들었다. 기묘하게도 도서관에 가면 길을 잃고 만다.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다. 분명하게 대출할 책이 있었건만, 심지어 노션 데이터베이스에 우선순위까지 꼼꼼하게 목록을 작성해놨는데, 여기저기를 헤매고 다닌다. 그러다, 옆 칸에서 우연히 얻어 걸린 것이다. 심지어 나는 그때 하루키의 책을 찾으려고 한 것도 아니었다. 진심으로!


안자이는 하루키와 30년 넘게 같이 일했다. 안자이가 그리면 하루키가 따라 쓰는 게 아니라 각자 쓰고, 그리고 나중에 작품을 합친다. 그런데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평소에 서로 대화 - 주로 술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 를 많이 하기 때문에 굳이 작품에 대한 구상을 구체적으로 공유하지 않아도 글과 그림이 찰떡처럼 들어붙는가 보다. 역시 소울 브라더라서 그런가?


그런 관계가 참 부럽다. 하루키는 1993년에 안자이를 두고 이런 말을 했다. ‘안자이’와 함께 10년 넘게 일했지만 어떤 인물인지 규정이 점점 모호해진다고.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하고, 작가이기도 하고, 술꾼이기도 한, 가끔은 대단하다고 감탄사를 연발하기도 하지만, 남들에게 발설할 수 없는 비밀이 존재기도 한, 온갖 복잡한 면들이 모여 한 인간, 즉 안자이라는 인간을 만든 것이라는 것. 그러니까 한 인간을 단 하나의 측면으로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특히 안자이를 하나의 사고방식으로 들이댈 때, 그가 장어처럼 스르륵 어딘가로 도망가 버리고 말 거라는, 하루키의 짧은 문장. 나는 그런 표현을, 누군가를 마치 나처럼 이해해 주는 배려가 한가득인 문장을 읽으며 참 부럽다는 생각을 혼자 했달까.


사실, 사람은 누구나 안자이 같은 면이 있지 않을까? 여러분들은 그다지 궁금해하지 않겠지만, 사실 나도 안자이 같은 면이 있다고 우겨보고 싶다. 그러니까 말이다. 나에겐 이런 다양성들이 존재한다. 개발자로서 코드를 즐겁게 만지작거리기도 하고, 인기는 없지만 어쨌든 에세이든 소설을 끄적거리기도 하고, 회사에서 밥 먹듯 과제를 기획하고 성과를 내는 전문가가 되기도 하고, 노션이라는 툴을 쓰는 강사로서 명성을 구가하기도 하고(이래 봬도 MKYU 인기 강사입니다만…)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말로서 먹고사는 처지이기도 하고(강사), 물론 술은 더럽게 못 마셔서 소주 한 잔에 맛이 가버리기도 하는 독특한, 약간은 4차원적인 면을 나라는 인간은 갖고 있다. 나 역시 안자이처럼 한 가지로 정의되고 싶지는 않다. 나는 계속 변화하는 중이고, 어쩌면 탈피하는 중일 지도 모르며 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그러니까 고정되고 토착화된 그런 고인 물, 신념이라는 과거의 고집스러움 따위는 딱 질색으로 여기는 인간이니까. 그래서 나는 하루키든 안자이든 모두 좋아하고 그들에게 물들려고 애쓰는 게 아닐까, 라고 정의해 본다.


일러스트레이터의 세계, 안자이 미즈마루와 하루키의 교감이 궁금한 사람, 그가 술술 힘을 빼고 즉석에서 그려내는 그림의 가치가 궁금하다면 나는 이 책, 안자이 미즈마루를 추천한다. 이 책엔 안자이 미즈마루의 멋진 작품이 한 가득이다. 안자이만의 다차원적이면서도 풍성한 맛을 느끼고 싶다면 당장 서점으로! 혹은 도서관으로!


평점 : 4.8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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