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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Oct 28. 2022

나는 존재 없음이에요

사라지지 않는다 - 클라라 뒤퐁-모노


《사라지지 않는다》는 가족 소설이다. 《사라지지 않는다》는 프랑스 세벤 산맥에서 살아가는 한 가족의 인내와 고통, 슬픔, 질투, 시기심, 보살핌, 절망, 희망, 체념, 원망의 감정을 다룬다. 이야기엔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맏이, 누이, 아이 그리고 막내가 등장한다. 이 소설의 시작은 이렇다. 가족 중에서 부적응한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첫 문장을 한 번 같이 읽어 보자.


어느 날 어느 가족에게 부적응한 아이가 태어났다. ‘부적응하다’는 말은 품위가 떨어지는 추한 단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흐느적거리는 몸, 고정되지 않는 텅 빈 눈길이라는 현실을 말해 준다.

《사라지지 않는다》의 첫 문장


은연중에 나도 모르게 자주 사용하는 듯한 이 단어, 부적응은 ‘일정한 조건이나 환경 따위에 맞추어 응하지 못함’이라는 뜻을 가진다. 말하자면 이 가족에게는 가족의 구성원으로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온전하지 못한 신체를 지닌 아이가 태어났다는 사실을 독자에게 알리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부적응한 아이, 그러니까 신체적인 장애를 안고 태어난 아이, 슬프게도 이 아이는 소설에서 이름도 혹은 명칭도 갖지 못한다. 나는 추상적인 아이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나머지 가족은 모두 저마다의 명칭을 가졌다. 아버지, 엄마, 할머니, 맞이, 누이, 막내 이렇게… 어쩌면 그들도 명확한 이름을 갖지 못하지만.


하지만 이 불완전한 아이는 아무런 명칭이 없다. 아이는 어쩌면 포괄적이다. 아이는 자연을 대표한다. 불완전하면서도 완전한 모습을 모두 가진 자연의 모순을 닮은 채, 그대로 그것을 반영한다. 어쩌면 완전한 무, 아이는 개념을 상실한 체념적 대상에 불과하다. 그 대상은 가족에게 원망이자 불만이지만 가족이기 때문에 연결은 절대 끊어질 수 없다. 물론 이 아이는 스스로 각성할 수 없다. 그래서 순응한다. 아무리 소설이라도 때로는 소설이 현실보다 더 잔인하므로, 아이는 허무, 무응답, 존재 없음의 상태로 계속 머물 수밖에 없다. 그래, 이 아이는 가족에게 소외를 일으킬 테고 필연적으로 파탄을 일으키겠지만 연민의 정을 표상하는 그리움의 상징으로 영원히 남기도 하는 것이다. 그 이유 때문에 아이는 영원히 산다. 


가족은 결국 상처를 받을 것이다. 상처는 그들에게 구형된다. 상처는 극복될 수 없다. 상처는 더 작은 상처로 덮을 수도 없다. 잊히지도 않는다. 아물지도 않는다. 시간은 그대로 그곳에서 세벤 산맥에서 멈춰버린다. 아니다, 그냥 끊어진 것이다. 가족을 지탱하는 끈을 어느 순간 그 아이 탓에 비의도적으로 놓아버리게 된 것이다. 


이 소설은 부적응이라는 단어를 첫 문장에서 뚜렷하게 강조하곤 그 사실로부터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물론 이후 벌어질 상황은 굳이 연상하지 않아도 어떻게 될지 우린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비극적이겠지. 클라라 뒤퐁-모노,라는 작가는 과연 한 가족의 비극을 어떻게 서사할 것인가. 어떤 식상한 구조로 우리의 지루함을 건드리는 건 아닐까, 우려스럽다. 그 우려는 비교적 쉽게 불식되고 만다.


공교롭게도 한 가족의 비극적 서사를 풀어가는 화자는 자연계에 속한 일부분이다. 몇 천 년을 넘게 살아왔을 그 가족을 대대로 지켜보았던 돌담에 박힌 돌멩이들의 묵묵한 관찰로 부적응에 관한 이야기는 시작된다. 돌멩이는 맞이를 지켜보고, 누이를 주시하고 막내를 쳐다본다. 아니 모든 가족을 돌보듯 시선을 흘려보낸다. 불완전한, 부적응한 아이는 그 가족 사이에서 어떻게 될까?


이 소설의 작가인 클라라 뒤퐁-모노는 1973년 프랑스 파리 출생으로 현재 프랑스 문단이 가장 주목하는 작가라고 한다. 음, 73년생이 주목을 받을 수 있다고 하니 왠지 나에게도 희망이 생기는 것 같은 기분이다. 기자와 방송 작가로 일하며 내공을 쌓아왔다고 하는데, 나는 기자도 방송작가도 아닌 프로그래머라서 다시 희망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 든다. 나야말로 부적응자가 아닌가?


프랑스 4대 문학상을 받은 소설이라고 해서 대형서점에서 충동적으로 구매한 소설이다. 작은 가족이 짊어진 삶은 결코 아름답지도 순수하지도 사랑스럽지도 못했다. 적응하지 못한이라는 수식어를 갖고 태어난 장애아와 그의 부모, 형과 누이의 삶이 프랑스의 세벤 산맥 속에서 고독하고 은밀하게 펼쳐졌을 뿐이다. 돌멩이가 이렇게 아름다운 언어를 구사하다니 경이롭다! 


평점 : 4.5점




책 속의 한 문장


어느 날 어느 가족에게 부적응한 아이가 태어났다. ‘부적응하다’는 말은 품위가 떨어지는 추한 단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흐느적거리는 몸, 고정되지 않는 텅 빈 눈길이라는 현실을 말해 준다.


사람들은 일단 어떤 장소에서 태어나 흔히 그 장소를 혈육처럼 닮아간다.


사랑은 그와 반대로 상대가 설령 앞을 보지 못해도 그 눈 속에 풍덩 빠져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니 얼마나 아쉬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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