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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Jan 02. 2023

진정한 문학인의 길이란?

로베르토 볼라뇨 - 《 칠레의 밤 》

철권통치 사회에서 문학인이 담당해야 할 소임에 대해 날카롭게 되묻는다.

짧은 평(《칠레의 밤》, 로베르토 볼라뇨, 열린책들)

칠레에서는 어떻게 문학을 하는지 나는 모른다. 어쩌면 알고 싶지도 않다. 문학은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주관적인 부분일 테니까. 그러니 나는 나대로 그러니까 열심히 문학을 읽는 방식으로 문학을 한다고 나름 간주하련다. 물론 문학을 한다는 기준이 문학의 세계를 창조하는 의미라면 나는 그 기준에 부합되지 않겠지만… 현재는 단순히 소비만 하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문학은 생산하는 자가 따로 있고 소비하는 자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물론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게 위험하긴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획일적으로 선을 긋고 싶다.) 딱히 내가 생산자 입장이 아니라고 해서 실망하지는 않는다. 그럴 만한 재능이 부족할지도 모르니(아니 분명하니), 나 자신을 돌아볼 때 그저 문학을 생산하고 싶다는 의지만으로 되는 세계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현재의 삶, 즉 직장에서 직업의 전선을 방어하면서 그 안전하게 구축된 방어선 내부에서 작은 자유를 누리는 것(독서)만으로도 충분히 행복감을 느낀다. 또 언젠가 생산자가 될지도 모를 일 아닌가.

로베르토 볼라뇨는 이번 소설 《칠레의 밤》을 통해서 처음 접했다. 도입부를 읽으며 나는 칠레라는 나라의 한마을, 작은 집에서 벌어지는 문학인들의 토론 혹은 대담을 그린 말하자면 문학의 개론을 사유하는 소설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얇은 두께와는 달리 그런 대담이나 문학을 놓고 서로 설전을 벌이는 류의 소설은 아니었다.

이 소설의 배경은 대부분 실제 역사에 기반한다. 네루다를 비롯한 독재자 피노체트, 실제 작가, 정보원이 등장한다. 그리고 독재라는 감시 체제에 저항하지 못하고 정치적으로 순응하거나 그들의 정보요원이 되는 걸 택하거나, 절대적으로 그들의 사상을 따른 문학인의 이야기를 상세하게 다룬다. 문학인은 어디서든 어떤 방식으로든 그들이 믿고 있는 선을 따라 문학을 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독재자에게 무력하게 저항조차 못하거나, 그들의 정치적 선전도구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는 독재에 저항하다 목숨을 잃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목숨을 잃게 만드는 매개자 위치에 문학인이 놓여있기도 하다.​


주인공 역시 실제 어떤 인물을 놓고 그렸다. 그 인물은 문학 평론가이자 시인인 아바카체 신부다. 그는 독재에 저항하는 것보다 독재를 체념하는 방식으로 그리스 고전에 빠져들거나 독재자들에게 마르크스 주의를 가르치기도 한다. 그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사상을 주입시키는데 큰 역할을 문학인이 해낸 것이다. 볼라뇨는 이 부분에서 문학을 한다는 작가들을 쓰레기로 전락시켜 버린다. 심지어는 자기 자신도 작가이면서. 자기가 정치적 도구로 쓰인다는 사실에 분노하지 않으면서.​


또한 주인공인 이바카체 신부는 독재자의 정보 요원으로 활동한 보잘것없는 문인 경력을 지닌 한 여인을 도리어 가르치려고 한다. 스스로도 문학의 올바른 길을 버린 사람이 타인을 가르치려 드는 것이다. 자신 스스로는 독재자 피노체트에게 적극적인 협력을 마다하지 않았으면서 말이다. 누가 누구를 가르치고 훈계하나.​


이야기는 이렇게 한 문인의 일대기를 다룬다. 그 문인은 혼란스러운 칠레의 역사 한가운데 놓여 있다. 문인은 엄혹한 시절에 질끈 눈을 감아버리는 걸 택한다. 그래서 독재에 협조하고 독재가 필요한 논리를 만들고 그들이 원하는 교리를 창조해 준다. 문학인의 상상력으로써, 창조적인 재능을 열심히 발휘해서.

볼라뇨의 문장은 아름답다. 시인이 소설을 쓴다면 이런 문장으로(의심의 흐름 위주) 점철되겠지. 그래서 쉽게 읽히지 않는다는 단점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래도 시인이 쓰는 소설의 세계가 궁금하다면 충분히 읽어볼 만한 가치는 있다. 다만 호불호가 명확히 가릴 소설이라 주의는 필요하겠다.​


종합 책식지수 : 4.5


책 속의 한 문장

산티아고로 차를 몰고 돌아오면서 그녀의 말을 생각했다. 칠레에서는 이렇게 문학을 하지. 하지만 어디 칠레에서만 그런가. 아르헨티나, 멕시코, 과테말라, 우루과이, 스페인, 프랑스, 푸르른 영국과 즐거운 이탈리아에서도 그런걸. 문학은 이렇게 하는 거라고. 아니 우리가, 시궁창에 처박히기 싫어서, 문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렇게들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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