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발적 재택 감금 일지
오랜만에, 그러니까 거의 한 달 만에 출근했다. 물론 여기서 출근은 사무실 쪽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출근이라는 단어를 다른 곳에 사용한단 말인가요?'라고 묻는 당신을 배려해서 나는 출근이라는 용어를 재정의하고 싶어 진다. ‘출근’의 뜻을 한 번 알아보자. 사전적으로 ‘일터로 근무하러 나가는 것’이라고 사전님이 따스하게 말씀하신다. 음, 재택근무를 시작한 나에게 일터는 바로 내방이 아닌가. 하지만 나는 사무실이라는 과거형인 일터로 가끔 나가기도 한다. 물론 보고 때문이라, 쓰고 맛있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라고 읽는다. 나는 현재 회사에서 나름 중역의 위치인 '이사'의 직함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다른 상무나 전무 혹은 부사장들에겐 아직 애송이 같은 존재다. 보고를 받기도 하지만 받은 보고를 또 전달해야만 하는 중간자적인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출근했다. 억지로! 새벽 6시에 알람을 맞춰놓고 침대에 누우려는데 영 불편했다. 과연 제시간에 일어날 수 있을 것인가, 내 정신력은 믿지만 본능을 따르는 몸뚱이는 믿을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핸드폰을 냅다 던져버리는 건 아닐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30년 직장생활의 본능이 아직 몸에서 완전히 씻겨나간 것은 아니었다. 아직까지 팔팔하다, 정신 상태 역시 쓸만하다, 나라는 인간 아직 죽지 않았다.
그렇게 버스와 지하철에서 맹렬하게 밀려드는 인파를 뚫고 내 소중한 신체에 위해를 가하려는 아(개)저씨라는 종족의 위협에서 겨우 벗어나 오른손에 스타벅스 아아를 들고나서야 겨우 사무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웬걸, 그런데, 아뿔싸, 망할 대체 이게 뭔 일인가. 보안 장치를 해제하고 1등으로 출근에 성공한 나 자신을 칭찬하며 연구소에 들어선 순간, 뭔가 구조적으로 이상한 낌새, 그러니까 총체적으로 나타난 변화의 기운을 쉽게 감지해 낼 수 있었다. '아니야, 이건 아니야, 이럴 수는 없는 거야, 믿을 수 없어! 소문으로만 무성하던 일이 정녕 나에게 일어났단 말인가. 신이시여, 착하디 착한 순한 양인 저를 왜 심판하십니까. 교회 안 다닌 것이 그렇게 큰 죄였습니까?'라고 허공에 새된 소리를 푸르르 떨며 지껄여야 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내 책상, 아니 내 자리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자리가 없어졌다. 내 방이 사라지고 그곳에 회의실이 대신 들어섰다. 책상이 통째로 날아가는 사례가 학계에 보고된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연구소도 총체적으로 바뀌었다. 순간, 나는 내가 알츠하이머에 걸린 것은 아닌가 의심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 모든 상황을 의심할 필요가 있다. 눈에 보인다고 그것이 반드시 사실이라는 증거는 없다. 카를로 로벨리는 보이는 세상이 실재가 아니라며 그 실재에 숨은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계를 구성하는 관계들의 네트워크, 즉 우리가 그 네트워크에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하지 않았던가. 나에게 네트워크는 직장이었을까? 내가 그곳에서 끊어졌을 때, 나의 실재도 송두리째 날아가버린 걸까? 그래, 저것은 모두 가짜다, 모두 허수아비다, 저것들은 내 에고에 비친 모순된 형태일 뿐이다. 나는 왜곡된 것들을 바로 보지 못하는 오류를 지닌 인간이다. 눈을 감아보자, 그리고 5분 동안 명상을 마친 후, 다시 천천히 떠 보자. 분명 바뀌어 있을 것이다. 그래 믿자, 믿는 자에게 구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바뀐 것은 없었다. 여전히 나는 그곳에 없었다. 아니 내가 사랑했고 존재했고 나의 의미를 빛나게 했던 내 방과 책장과 그 책에 꽂힌 프로그래밍 서적들과 내 서랍과 나의 위상을 증거 하던 모든 형체가 실재하지 않는다는 걸 두 눈을 목격하고 말았다. 그래 실재하는 모든 것들은 엔트로피의 법칙에 따라서 맹렬하게 어지럽혀진다. 질서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된다.
나는 내 자리도 아닌 초라한 보조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사람들이 도착할 때까지 초조하게 원두커피나 내려 마시며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내가 선호하는 원두마저 없어졌다. 커피마저 나를 배신하는 것이다. 그러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도착하기 시작했다. 멀뚱멀뚱 나는 그들을 영문을 모를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들은 나를 모르고 나는 그들을 몰랐다. 우린 완벽한 타인이었다. 언제 이렇게 대규모의 신입사원들이? 질문을 던지면 되돌아오는 건 공허한 대답, 주인을 잃은 질문들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보고를 마쳤다. 경황을 잃은 채 보고를 마치고 정황을 들어보니 모바일 오피스라는 개념을 도입한 결과가 바로 연구소였다. 모바일 오피스에는 특정한 자리의 개념이 없어진다. 나는 사건의 진상을 들었지만 모바일 오피스에 적용되는 사람은 재택근무에 뛰어든 오직 나 한 사람뿐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역시 대표는 나를 미워하는 게 분명하다. 아니면 나를 내보내려는 어떤 팀원의 치밀한 농간이려나. 나 혼자만의 망상은 결코 아니었다. 나는 예비로 마련된 모바일 오피스, 나의 수줍은 책상 앞에 앉아 인도에서 온 팀원과 스타벅스 아아 벤티를 나눠 마시며 인도 친구의 고향 나가랜드의 IT 취업 실태에 대해서 격렬한 토론을 나눴다. 커피는 맛있었지만 동시에 쓰기도 했다. 이런 몹쓸 스타벅스! 불매 운동해야 하는데…
나는 짐을 꾸려서 곧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11시 30분이었다. 다시 집으로 출근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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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발적 재택 감금 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