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부터 개킨다

나의 자발적 재택 감금 일지

by 공대생의 심야서재

재택근무가 시작되기 전에는 거의 6시에 일어나는 편이었다. 거의 30년 가까이 무의식적으로 실행해오던 단순한 몸의 습관이랄까, 아침 알람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몸에 충분히 익었을만한 그런 오래된 습관들조차 새로운 패턴에 따라 변화를 겪어야 한다. 변화는 필연적으로 스트레스를 낳는다. 스트레스 없는 변화는 절대 없는 것이다. 스트레스는 그냥 견디는 걸까, 슬쩍 모른 척하고 넘어가면 되는 걸까. 인생을 오래 살았어도 나는 스트레스가 왜 오는 것이며 어디서 발생하는지 정체를 알 수 없고 스트레스가 마치 시간 속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애써 무시하는 방법도 제대로 찾지 못했다. 그냥 스트레스와 함께 무엇이든 흘려보내고 싶다.


재택근무가 시작된 이후, 일어나는 시간이 약간 바뀌었다. 알람 시간이 2시간 뒤로 미뤄졌기 때문에… 출근에 거의 2시간을 절약한 셈이니 약 2시간 정도를 더 잘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알람 시간도 후퇴를 선택했다.


이제는 8시라는 알람 시간에 적응해야 한다. 8시가 되면 자기 계발서에서 읽은 '5초의 법칙'에 따라 알람이 부르르 몸을 떠는 소리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데파페페의 'Start'가 재생되며 일어날 시간이 도래했음을 명령한다. 데파페페가 싫어지려고 하는 이유는 알람 소리로 그것이 세팅된 탓일까. 모든 건 기분 탓이라는데, 시작을 어떤 마음으로 조성할지 결정하는 것도 내 몫이고 산뜻하게 일어나서 이불을 개키는 것도 내 몫인데 마음속으로 5초를 새고 부리나케 일어나는 일이란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사람의 감정이란 그날의 날씨와 그날 처리해야 할 산적한 업무들과 그간 미뤄온 집안일 따위들에 휘말려 그만 부정적인 곳으로 흐르기도 하는데, 나는 그 감정을 통제하는 일이 나로부터 파생된 것이 분명한 그 감정이 내가 주도한 게 아니라 마치 갈 길을 잃고 대기권에서 떨어져 나간 별똥별의 조각들이란 생각이 들어서 자꾸만 외면하고 싶어진다.


이불을 박차고, 그 따뜻한 품 속에서 탈출하는 일이 그 어떠한 난도가 높은 알고리즘을 푸는 일보다 더 힘들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그래 이런 행사를 견디고 끝끝내 해내는 일이야말로 정말 대단한 성취에 해당되며 용감한 하루를 시작하는 거라고 나에게 거짓 칭찬이라도 한마디 던지곤 천천히 일어난다. 이미 30초가 지나갔다. 5초의 법칙은 망했다. 그래, 생각은 필요 없다. 생각은 장애물만 만들 뿐이다. 그러니 때론 이유든 고심의 흔적이든 의무든 당위성이든 그런 온갖 치렁치렁한 이유들 그러니까 생각 따위들은 접고 무심하게 일어나는 게 필요한 것이다.


일어나서 나는 곧바로 햇살을 만나러 간다. 정남향 베란다 앞으로 이동해서 잔뜩 긴장에 빠진 근육을 이완시키는 것이다. 좌우로 위아래로 움츠려지고 무력해진 몸에 새로운 활력을 심어주려고 간단한 체조 같은 동작을 펼친다. 물론 국민체조도 영화 《안경》의 메르시 체조 같은 것도 아니다. 아주 간단한 움직임만…


몸이 슬슬 깨어나기 시작하면 청소를 시작한다. 내 방으로 돌아와 창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바깥에서 기다리던 바람이 내 감정과 소통을 시작하면 나는 나에게서 잠시 떨어져서 세상에서 나를 관조하기 시작한다. 알아들을 수 없는 혼잣말을 내뱉는다. 그리고 침대로 돌아가 매트리스 위의 먼지를 털고 이불을 개킨다. 아주 모양 좋게 보기 좋게 3등분을 해놓는 것이다. 그리고 빗자루를 들고 책장과 3단 트롤리와 책상 위 노트북과 모니터의 먼지를 쓸어내린다. 공중으로 흩어지지 않게 바닥으로 조심스럽게.


그리고 소형 청소기를 조작한다. 내방부터 시작해서 아까 빗자루로 털어낸 바닥의 먼지들을 주워 담기, 아니 흡입하기 시작한다. 내 폐 속을 보다 건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행사다. 내방과 거실과 안방 그리고 작은방과 주방까지 온 집을 휩쓸고 다닌다. 그리고 바닥에 흡착해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고집 센 모든 먼지들을 수집한다. 흡입 행위가 끝나면 다음 절차는 부직포가 붙은 밀대를 사용해서 먼지를 마지막으로 제거한다. 먼지 한 톨조차 남겨놓지 않겠다는 다부진 마음의 각오다. 침대 밑과 소파 밑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꼼꼼하게 먼지든 머리카락이든 짐승의 사체든 무엇이든 다 부직포에 들러붙는다. 그렇게 빗자루, 청소기, 밀대 등의 첨단 청소용품을 사용해서 온 집안을 깔끔하게 다듬고 나면 이제야말로 업무에 충실해질 수 있다는 믿음, 아니 하루를 보낼만한 딱 그만큼의 활력이 새롭게 충전되는 것이다. 에너지는 전날 밤의 수면과 관계가 있다고 말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에너지는 아침 루틴, 즉 청소 행사에 달려 있다. 이불을 개키고 침대 위의 온갖 부유물들과 바닥의 먼지, 집안에 분포된 온갖 더러운 것들을 포집하고 나면 집안도 깔끔해지지만 내 마음도 덩달아 깔끔해진다. 마지막으로 몸에 붙은 잔여 먼지들까지 깨끗하게 비우는 샤워까지 마치고 나면 그야말로 완벽한 업무 준비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8시에 일어나서 나는 그렇게 약 1시간 동안 청소와 몸 씻기에 열중한다. 재택근무를 위한 완벽한 서막을 온 집안에 알리는 것이다. 들을 수 있는 모든 형체들은 나의 동작에 예민하게 집중한다. 온 집안과 내 안의 잠든 거인 같은 의식, 모든 기운이 깨어난다. 이제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





신나는 글쓰기에 당신을 무료로 초대합니다.

https://brunch.co.kr/@futurewave/1529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오너의 의심을 물리치는 법 - 데일리 리포트를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