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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Aug 15. 2016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냉정과 열정 사이>를 읽고

츠지 히토나리와 에쿠니 가오리의 연애편지와 같은 이야기



과거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한 남자가 있다. 과거와는 다른 시공간에서 또 다른 사람들과 일상을 북적거리며 보내고 있지만, 그의 마음은 자꾸만 과거로 흘러내리려 한다. 세월의 물살이 흘러가는 일정한 방향을 역행한 채, 과거 속의 옛사랑을 다시 복원하려는 남자의 회고는 집착일까? 사랑일까? 그는 심장이 시키는 요구에 단순히 응답했을 뿐이었다. 단지 그 솔직함을 내면으로 숨긴 채, 세월을 억지로 눌러왔을 뿐,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의 마음 한편을 저장했던 심장도 식을 수밖에 없는 속성이라 그는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리움도 시간이 지나면 옅은 수채화처럼 세월 속에서 무디어지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사랑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이기죽거리는 황망한 소리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어지고, 더 짙어지는 사랑이 있다. 기억 속에서 그 사람이 너무나 큰 똬리를 틀고 앉아 있어, 지워버리려 해도 그럴 수는 없는, 마음을 온통 해집어 놓은 사랑 앞에 한 남자는 매일 좌절의 삶을 되풀이하고 있다. 새로운 사랑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강렬한 첫사랑에 대한 끌림은 그 남자를 더욱 과거로 물들게 한다.  <냉정과 열정 사이>의 주인공 "쥰세이"가 바로 그 남자다.  


 

쥰세이



영화 OST를 먼저 듣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pN8xvm5TrBA

The Whole Nine Yards



오래전, 나는 안타깝게도 <냉정과 열정 사이>를 책으로 접하지는 못 했다. 재미있게도 책과 영화로도 이야기를 접하지는 못했지만, 오히려 OST의 애틋한 여운을 더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다. 특히 "The Whole Nine Yards"가 담고 있는 "평생 한번 만나기 힘든 행운"-이라는 메시지가 더 강렬하게 내 마음으로 다가왔다. 숫자 9가 전하는 완벽함, 충만함, 행운을 생각한다. 9라는 완벽한 숫자가 연속으로 나오는 우연의 연속을 떠올린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숫자 9가 연속으로 이어질 만큼의 행운과 그 행운을 다시 사랑의 결실로 거두려는 의지가 있어야 가능하다. 나는 이 음악을 들을 때마다, 마음을 깊게 도려내는 듯한 아린 감정에 빠진다. 사랑이란 것은 어느 순간 우리의 심장 안으로 깊게 후벼 파고 들어와 한자리를 차지하고, 그 사람의 생과 사를 함께하는 운명을 지녔다. 사랑 때문에 우리는 처참한 아픔을 겪기도 하고, 절정의 기쁨을 맛보기도 한다. 


마치 OST를 듣고 있으면, "나는 네 사랑의 고통을 알아." "너의 아픔을 이해해"-라고 위안을 내미는 것 같다. 사랑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없지만, 한차례 나의 내면을 휩쓸고 지나가는 파도와 같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나는 첼로의 연주를 들을 때마다, 인생을 많이 살아본 선배가 "내가 경험해보니 사랑은 원래 아픈 거야, 그렇다고 절대 사랑 앞에 굴복하지 말고 후회 없는 사랑을 해!"-라고 나지막이 속삭이는 것 같은 침착한 감정에 스며든다. 사랑은 때로 은은하고 차분하지만, 때로 격정적으로 불타오르기도 한다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하게 된다. 


왜 사람에겐 만남이란 게 있을까, 그런 개똥철학 같은 의문이, 이 르네상스의 정신이 살아 숨 쉬는 거리에서, 나를 옭아매고 있는 것이다. - P.10



이탈리아의 피렌체는 과거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옛 동네이다. 피렌체의 거리를 거니는 사람은 모두 과거를 사랑하는, 과거의 기억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추억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과거의 증거인 셈이다. 그들은 과거로 서로 통한다. 현재라는 시공간에 속한 분명한 존재이지만, 과거의 아득한 기억이 전하는 역사와 예술에 묻혀, 피렌체의 사람들은 과거의 기억들을 복원하여 현재를 메우며 살고 있다. 쥰세이의 말대로 피렌체에 있어서 "기억이란 덧없는 아지랑이의 날개처럼 햇살 아래 녹아내려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피렌체의 석양



피렌체를 직접 가보지는 못 했다. 사진으로나마 그곳을 간접적으로 찾아가 보고 싶었다. 피렌체는 역사를 담은. 살아있는 과거에 대한 논리적인 증명, 그 자체였다. 과거가 존재했기 때문에 우리는 현재의 시간에서 잠시 뒤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피렌체는 과거를 품은, 옛것을 지우지 않고 지키려는 사람들이 오래도록 살아 숨 쉬는 꿈의 도시였다. 


피렌체는 허물어진 쥰세이와 아오이의 마음을 품었다. 쥰세이가 피렌체를 찾은 것은 그의 뜨거운 열정과 관련이 되어 있다. 피렌체를 찾는 모든 사람들은 과거를 잊지 못하는 괴로움 때문에, 마음 한편이 비워져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지만, 과거의 시간 속에서 여전히 방황하며 사랑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찾게 되는 도시가 피렌체이다. 


피렌체의 거리



쥰세이의 기억과 함께, 그의 추억을 가슴에 담아 피렌체의 낯선 거리를 함께 거닐어 본다. 그가 자전거를 타고 돌았던 골목, 카페, 두오모의 맑고 푸른 하늘이 내 눈앞에서 넓고 시원하게 펼쳐진다.  쥰세이처럼 고개를 하늘로 높게 쳐들어, 맑음이 사그라들지 않은 구름이 언뜻 펼쳐진 파란 하늘 속으로 시야를 내밀어 본다. 그 하늘에서 허우적대며 더 깊이 과거의 사랑을 현실로 복원하려 하는 쥰세이의 애달픈 감정이 내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피렌체의 파란 하늘


복원 일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잃어버린 시간을 돌이키는 세계에서 유일한 직업이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 P.24

 
쥰세이는 아오이와의 모든 순간을 기억 속에 담았다. 한순간을 잃어버리려 할 때마다, 그는 처절한 망각의 본능을 거부했다. 쥰세이는 아오이와의 약속을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서른 살의 생일날, 피렌체의 두오모, 쿠폴라 꼭대기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을 잊지 않고 살았다. 아오이와의 마지막 인연을 붙들기 위한, 그들을 연결해 줄 수 있는 우연일지도 모를 마지막 한 줄기 희망이었다. 


쥰세이는 과거의 예술 작품을 다시 현재의 세상에서 빛을 볼 수 있도록, 그것들을 되살리는 직업으로 살아간다. 쥰세이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그림쟁이라는 직업을 선택하지 않는다. 스스로 충분한 자질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새로움을 잉태하는 직업을 스스로 거부한다. 오로지 과거의 것에 숨겨진 원래의 의미를 찾아내려고 몰두한다. 과거를 되살리는 복원작업, 그것은 그가 아오이를 잊지 못하는 과거의 사랑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담은 열정이었다. 그는 자신의 삶의 의미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명확하게 이야기한다.


내가 되살려 낸 명화의 생명이 또다시 후대 사람의 손에 의해 더 먼 미래로 이어져 가는 것을 꿈꾸어 본다. 그것이 지금 내 삶의 의미이다. - P.22



라파엘로의 대공의 성모자(쥰세이가 가장 사랑한 그림)



남자는 지나간 사랑을 평생 가슴속의 응어리로 안고 산다. 과거의 사랑이 만약, 첫사랑이었다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죽을 때까지 그 사랑을 더욱 잊지 못한다. 그 사람과 함께 나눴던 공간에서의 모든 대화들이 늘 귓전을 때리게 된다. 스쳐 지나갈 뿐인 평범한 사랑은 없다. 누군가와 만나서 사랑에 빠지는 것이 스쳐 지나가다 맺게 되는 우연뿐일까? 가늠할 수 없는 방대한 우주에서 티끌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존재가, 인연의 다리가 이어주는 또 다른 사람을 만나서 불꽃 튀는 사랑을 나누는 것이 평범한 우연의 연속이라고 한다면, 과거의 지나간 사랑이 너무 서글프지 않겠는가? 그저 단순한 인연이라고 하기에는 설명이 만족스럽지 못한, 남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그 시간에 최선을 다했던 남자들의 헌신과 배려가 과거의 사랑 속에 담겨 있다.


우연이라 치부하기엔, 과거의 사랑이 너무나 소중했고 열정적이었다. 때로는 식어버린 자신의 냉정함에 몸을 부르르 떨기도 했다. 삶이라는 것은 열정을 억누르고 살아야 하는 처절하며 때로는 비루한 것이 본질일지도 모른다. 주위 사람들의 북적거림 속에서도 오직 쥰세이와 아오이만이 그 공간에 머물고 있었다. 그들의 미래는 마치 장밋빛처럼 생생한 색채로 물들어갈 수 있을까?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어떤 확신을 얻을 수 있을까? 해답은 두 사람이 각자 얻어야 했다.  


우리는 우주의 질서라는 큰 틀의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시공간에서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현재 우연을 거스르며 살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연이 반복된다면 그것은 필연이다. 두 사람은 거부하고 싶어도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의 질서 앞에서 그것을 수긍하며 미래를 바라본다.
 




땀을 흘리며 몇 백 계단을 필사적으로 오르면, 거기에 기다리고 있을 피렌체의 아름다운 중세 거리 풍경에는 연인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 주는 미덕이 있다고 했어 아오이 - P.99



열정이란 시간적인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사랑이라는 감정도 뜨겁게 타오르다가 언젠가 차갑게 식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로 작은 불씨를 버리지만 않는다면, 언제든지 다시 환하게 타오를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랑이다. 쥰세이는 10년을 기다렸고, 희미하게 꺼져가던 불씨를 마음속에서 지켜내었다. 그는 400계단이 넘는, 두오모의 계단을 오르며 자신의 대한 믿음과 아오이에 대한 믿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만날 수 없어도, 서로 대화할 수 없어도 피렌체에서 그들은 서로 연결되었고, 마음을 주고받았다.


과거밖에 없는 인생도 있다. 잊을 수 없는 시간만을 소중히 간직한 채 살아가는 것이 서글픈 일이라고 만을 생각지 않는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뒤쫓는 인생이라고 쓸데없는 인생은 아니다. 다들 미래만을 소리 높여 외치지만, 나는 과거를 그냥 물처럼 흘려보낼 수 없다. - P.206



우리는 냉정과 열정 두 감정의 사이에서 살아간다. 척박한 삶은 냉정한 선택을 늘 강요하고, 열정은 냉정함 속에서도 한순간 의지를 불태울 수 있는 신기한 힘을 발휘하게 한다. 시인 안도현의 시처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가 계속 내 주변에서 배회를 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에게 열정적인 사람이었는지, 지금 얼마나 열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내가 바라보는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돌아 보아야 한다. 그리고 나에게 남은 사랑이란 것은 무엇인지, 쥰세이처럼 10년을 기다리고, 또 400계단을 묵묵히 오르게 하는 사람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계속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단순히 그 사람과 같은 공간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기쁘다는 말은 거짓이다. 그 사람을 단 하루, 아니 단 몇 분이라도 볼 수 있다면 나는 두오모의 계단을 기꺼이 오를 것이다. 그리고 내 가슴에 오래도록 품었던 속마음이 전하는 말을 하고야 말 것이다. 내가 과거를 잊어버리지 않고 여전히 뜨겁게 불타오르는 가슴을 가진 남자라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그래서, 과거 속에서 빠져 후회의 삶을 살지 않도록, 먼 훗날이 지났을 때, 뜨겁게 그 순간을 기억하려 할 것이다. 그리고 차곡차곡 모아놓았던 내 사랑의 온기들을 모아 모아, 내가 감히 뜨거운 남자였음을 조용히 고백할 것이다.

 

확실한 건 하나도 없다. 모르니깐 이렇게 달리는 것이다. -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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