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다 : 초심

작은 일에도 행복했던 시절

부동산에 집을 내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몇 사람이 집을 구경하고 갔지만, 새집처럼 깨끗하다는 칭찬만 실컷 들었을 뿐, 여간해서 팔릴 것 같지 않았다. 몇 년 전에 처음 내놓았을 때는 조금이라도 덜 손해 보기 전에 처분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섰지만, 손해 볼 위기를 넘기고 다시 오름 추세로 바뀌자 이제는 좀 관망을 해야 하는 건 아닌지, 조금이라도 더 이익을 봤으면 하는 태세로 판이 바뀌고 있었다.

"조금만 더 버텨보면 임자가 나타날 거야. 좋은 가격에 팔 수 있겠지? 오빠"
"아냐. 그러다 타이밍 놓치면 어떡해. 조금이라도 가격 낮춰서 한번 내놔보자"
"글쎄……"

아내가 베란다에 갇히는 거짓말 같은 사건이 일어났던 날, 그 시간에 들이닥쳤던 사람과 계약을 하게 됐다. 그 사람과는 악연이라 생각했는데, 인연이었을지도 모른다. 우습게도 그 사람에게 집을 팔게 되다니…… 다음 날, 아내는 이사 가고 싶은 동네로 달려갔다. 하지만, 마음에 담아두었던 정남향 집은 거품이 심하게 껴있었다. 실망을 했지만, 가격이 맞지 않았기에 그 집을 포기하고 다른 곳을 찾았다. 아내는 괜찮은 집을 바로 찾았던 모양이었다.

마음이 분주해진 나는 정시 퇴근을 하고 아내에게로 달려갔다. 낯선 동네를 방문한 나에게 편안한 풍경이 다가왔다. 그 동네는 시간이 좀 천천히 흐르는 듯한 여유가 느껴졌다. 그곳은 얼마 전부터 입주를 시작한 새 아파트였다. 새집을 구경하고 우리는 아파트보다 동네가 마음에 들어 망설임 없이 계약을 마무리해 버렸다.

서글프게도 새 아파트를 계약했다는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계약금, 잔금, 대출, 명의 이전, 이사 업체, 입주 청소, 복비, 세금을 생각하자 두통이 났다. 이것저것 점검 목록을 확인하다, 10년 전 첫 집을 샀을 때 남겨두었던 메모를 우연히 찾았다. 그 메모에는 처음 집을 사고 나서 입주까지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오빠. 이것 봐봐 내가 예전에 노트한 게 있네. "
"우리 집 처음 살 때 모든 역사가 여기 다 있어. 이거 보고 다시 차분하게 준비하면 되겠다"

10년도 더 된 오래전 일이었다. 순수 우리 힘으로 장만했던 첫 집이 사진과 글 속에 담겨 있었다. 새 집을 계약하고 가슴 설레어 잠 못 들었던 밤, 이제나저제나 이사 날짜만을 손꼽아 기다렸던 밤, 마치 신혼부부처럼 새집에 들일 가구에 들떴던 밤, 숱한 기다림과 행복의 기록이 나타났다.

신고하고 계약하느라 이리저리 땀나게 뛰어다녔던 일, 무릎이 닳도록 걸레질을 하며 방바닥이 번쩍번쩍하도록 청소를 했던 일, 이 방 저 방 줄자로 재고 다니며 새 가구 배치한다며 신났던 일, 입주 점검 날짜를 기다리며 새벽부터 아파트 앞에서 서성거렸던 일,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부모님께 신나게 자랑했던 일,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세상을 다 가진 듯 가슴이 부풀었던 일, 이 모든 수고스러움과 고단함에도 행복에 취해 잠 못 들던 날들이 떠올랐다.

지금은 어떨까. 학수고대하던 동네에 내 자리 하나를 만들고, 더 멋지고 근사한 브랜드를 가진 아파트의 주인이 되고,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터전 하나를 갖게 되었지만, 점검해야 할 목록들은 귀찮고 신경 쓸 거리가 되었다. 때로는 노심초사한다. 이왕이면 구매한 집이 조금 올랐으면 하는 생각, 손해보다는 이익을 챙겼으면 하는 생각, 이 집에서는 더 좋은 일만 생겼으면 하는 생각, 이런저런 욕심들이 생각에 꽉 차게 되었다.

우리는 10년 전, 생에 첫 집을 살 때의 초심을 잃은 걸까.
그 젊은 날의 활력은 어디로 보내버린 걸까.
그때의 설레었던 밤들은 다 어디로 떠난 걸까.
행복함에 무뎌질 정도로 우리는 충분히 만족하며 살고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때의 행복을, 처음의 설렘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그때의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다.
작은 일에도 한없이 행복했던 그 시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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