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내가 울지 못하는 이유를…… 눈물이 마른 까닭조차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나 자신을 생각한다. 운 이후의 닥칠 상황을 감당할 자신이 없는 걸까. 운다는 것 자체를 부끄럽다 여기는 걸까. "남자는 우는 게 나빠"라는 보편화된 속설 때문일까.
물론, 내가 전혀 울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가끔 영화나 드라마의 슬픈 장면을 보고 눈물 쏟아낼 감정은 되니까. 문제는 내 감정에 다가서고 있지 못한다고 할까. 내 감정을 살펴보기에 두렵다고 해야 할까.
스스로를 가혹하게 몰아치는 면이 있는데, 마음속에 어떤 주문을 외우고 산다. 마음속에서나마 숱하게 울었을 거다. 이를테면, "절대 울면 안 돼, 평정심을 항상 유지해야 해, 우는 건 바보 같은 짓거리야." 눈물을 짜내기 위해 깊이 파고들수록 내면은 멀어지고 냉정한 현실은 더 가까워진다.
나는 메마른 짐승이 되어가고 있다.
내 눈물은 흐르지 못해 낮은 곳에 머무르다, 경직되어 간다. 바닥에 엎질러진 얕은 물이나마 끌어올리고 싶어도 그 깊이를 가늠할 능력이 없으니 속수무책이다.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니 어디로든 떠나야 하는 운명인데, 이별을 할 때에도 울지 못했다. 마음을 다 주지 못해서 일지도, 아껴두려는 습성 탓일지도 모르겠다. 우는 기술을 다시 회복하여 눈물이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중력의 법칙대로 흘러간다는 걸 찾을 수 있으면. 메마른 숨결에 물길이나마 낼 수 있으면……
나는 왜 울지 못하고 있을까.
내 몸속에 뻗어 있던 물줄기, 아니 그 원시의 샘물이 모두 말라버린 걸까. 남자라는 사실, 그 이유 때문에 머릿속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건 아닐까. 우는 방법을 잃어버린 탓에, 이제는 꺼내고 싶어도 아이 시절의 울음은 없다.
너무 많은 세속들이 눈물 대신 퇴적된 탓일지도, 내가 기억하던 슬픈 일들이 영영 잠들어 버린 탓일지도. 그렇게 애써 변명이라도 풀어내면 마음속 어딘가에 뜨거움이 다시 찾아올지도. 그런 허무한 기대라도 남겨두고 싶다.
박준 시인의 말처럼,
슬픔이 자랑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아무렇지 않게 펑펑 우는 일이 부끄럽지 않은 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실패해서 일어날 수 없더라도. 힘을 모두 잃어버릴지라도. 실컷 울음이라도 터뜨려버려 남은 울분을 깨끗이 씻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우는 일이 떳떳함이 아니라는 망상 탓에, 숨죽인 채 등을 돌리거나 속으로만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런 감정이 근육으로 커서, 다른 사람의 슬픔과 만나 감정의 바다 한가운데 물길을 터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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