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그르니에 <일상적인 삶>에서
여행이란, 리트레 사전에 따르면'어떤 곳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곳에 이르기 위하여 옮겨가는 과정'이다. 여기서 '위하여'라는 말을 강조해야 한다. 여행은 의도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도달해야 할 목표가 주된 것이며 그 수단은 부차적이다. 수단은 그것이 목적지에 닿게 해줄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한곳에서 다른 곳으로의 이동이 바로 여행이니만큼 중요한 것은 목적지이다. <일상적인 삶> 장 그르니에, 김용기 <민음사>
장 그르니에는 여행에는 분명한 목적이 존재한다고 정의했다. 여행은 '나'라는 인간의 형식을 규정하는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원한다면 우리는 여행을 통하여 거짓된 삶을 살아볼 수도 있다.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되어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과는 정 반대의 일상을 살아볼 수도 있는 것이다. 떠난다는 것, 그것은 정체성을 벗는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으며, 규칙에서 틀어져 제멋대로 행동하고픈 욕망마저 품고 있는 것이다.
그러함에도 나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정신은 개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동일한 패턴을 계속 유지할 수밖에 없는 한계성 앞에 굴복하고 마는 것이다. 여행지에서 나는 더 낯선 나그네가 되어서, 몇 시간 동안 어색한 발걸음을 어떤 풍경 또는 대상에 끌려다니기만 한다. 새로운 곳에서 시간은 제법 빠르게 흘러가고, 이미 멀어진 나의 도시, 익숙했던 사람의 소음과 향기에 대한 그리움은 자유 의식과 미지의 세상에 대한 탐구적인 의지를 점차 감소시킨다.
결국 나는 마음과 부당한 거래를 주고받는다. 잠시의 휴가 기간이 주어진 것뿐이니 마음을 완전히 뺏기면 안 된다는. 그것이 나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가르침을 깨닫는 것이다. 여행지에서 나는 무엇을 원했던가, 왜 이곳을 찾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목적은 언제나 똑같다. 자의식은 없었고 강력한 에너지에 이끌려왔을 뿐, 내 생각은 여전히 통제당하고 있으며, 감동조차 엇비슷하다.
생각을 하고 있건, 여행지로 떠나고 있건, 시간은 자비가 없다. 냉정한 시간을 요긴하게 써먹을 궁리나 하며 나는 피곤함을 잊는다. 그래야 여행지에서 온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