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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Oct 14. 2018

한숨이라고 하자

김소연 시 필사


빛은 차별이 없다고 차분한 말로 우릴 쓰다듬지. 그래 너와 나 모두에게 평등하다고 속삭여, 그럼에도 빛은 때로 균일하지 못했어. 볕을 찾아보겠다고 뛰어다녀도 내 가슴은 싸늘하게 가려졌지. 어쩌면 먼저 도망치고 싶은 날도 많았을 거야. 문제는 말이야, 숨을 곳이 없다는 거, 도망쳐도 멀리 못 간다는 현실적인 제약이 나를 아프게 했지.

네가 아픈데 난 멀쩡하게 숨 쉬어야 한다는 게 쓰린 거야. 쓰러지고 부서지는 영혼들 사이에서도 태연한 척 살아가야 하는 게 지구별 여행자의 숙명인 셈이지. 내 얼굴 보는 게 매일 낯설어. 거울 앞에서도 점점 멀어지고 탁해지기만 해. 눈물조차 말라버린 내가, 한숨조차 기댈 구석 없는 내가 여행을 마칠 수 있을지 모르겠어.

누구나 가슴에 동그란 빛 하나쯤은 품고 살지 않을까. 어떤 순간을 기다리는 거야. 가장 밝게 빛날 영광스러운 날을 학수고대하는 거지. 그런데 그 빛은 나보다 너를 더 밝게 비춰. 그게 진리야. 그 환희의 순간을 알기까지 숱한 세월의 조각을 붙였다 뗐다 반복하는 거야. 생채기를 그어야 할지도 몰라. 그 정도의 상처를 가슴에 별처럼 달아 두어야 우린 서로를 알아볼지도. 상처란 걸 서로 주고받는지도 모른 채. 길가에 일부러 흩뿌리기도 하면서. 나도 모르게 흘리기도 하면서. 그런 게 인생일 거야. 우리는 아픔을 선물 교환하듯 우스꽝스러운 사회에 살고 있는 거야.

너를 위로하겠다는 섣부른 말이 무슨 소용이야. 아무것도 아는 게 없고 본 적도 없는 우린데, 어떤 영향을 너에게 끼칠 수 있겠어. 어김없이 지고 떠오르다 겨우 만나는 게 해와 달의 순간인데, 그 운명이 교차하는 시간에 우리가 무얼 하겠어? 하염없이 기다리다 장면의 목격자나 되어보는 거지. 영화처럼 달은 뜨고 우리는 달빛을 쐬는 거야. 

영화 한 편이 상영되는 거지. 영사기에서 불빛이 세상을 한 바퀴 돌아오는데 눈이 참 부시네. 빛은 어둠에서 더 매끈하지. 벼락이나 천둥처럼 모순적이지도 않아. 섬세한 손길이 나에게도 머물고 너에게도 찾아가는 거야. 평등하게 다가서지. 햇살처럼 모두에게. 단지 너만이 알아듣는 언어로.



시 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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