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치면 고칠수록 글은 좋아진다.
'고친다’의 전제는 잘못된 부분이나 틀린 점을 바로잡는 데 있다. 하지만, 틀렸다는 사실에 집중하다 보면 시선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집중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 쓰는 사람이라면 언제나 고치다, 라는 동사와 함께 살아야 하는 숙명을 지닌다.
글을 쓰고 나면 누군가에게 종종 감응의 여부를 묻곤 한다. 단골손님은 당연 카톡으로 아무 때나 시비를 걸 수 있는 오래된 친구다. 책과 원수가 된 녀석에게 3천자 분량의 숙제를 툭 던져 놓고 소감을 묻는다. “야, 이거 완전 작품 아니냐? 읽고 나서 5분 내로 느낌을 솔직하게 - 라고 쓰고 좋게로 읽는다 - 말해봐.” 그럴 때마다 귀가 썩는 말이 되돌아온다. “야 쓰레기 읽을 시간 없으니까 바쁜 사람에게 이딴 거 보내지 마”라고. 자식, 그런 말을 던지면서도 채팅창의 숫자 1은 1초 만에 사라진다. 읽긴 했는지 몇 분 후, 점잖게 훈계까지 일삼는다. 독자를 생각하지 않은 문장이라느니, 감동 코드가 없다느니, 문장이 너무 어렵다느니, 문법적으로 틀린 문장이라느니, 이런저런 충고로 소중한 내 글에 스크래치를 낸다.
책이라곤 통 관심이 없는, 말하자면 ‘빵지 순례’에 빠진 나머지 몸꽝이 되어버린 녀석의 조언이라 치면 무시할 법도 하지만, 은근 신경 쓰이는 것도 사실이다. 생각해보니 마침 미심쩍은 부분을 지적당한 것 같아 녀석의 의견에 동화되기까지 한다. 정신 차리고 보니 나도 모르게 문장을 고치고 있더라.
이런 상황을 상상해보자. 당신의 글이 독자를 배려하지 않았다고 문단 몇 개를 통째로 덜어내라고 누군가가 지적질한 것이다. 게다가 밑줄을 그을 만한 문장은 별로 없고 비문으로 가득 찼다고 분위기를 몰아간다면 당신은 그 의견에 긍정할 수 있을까? 머리를 벅벅 긁으며 독자를 배려하겠다고 문장에 덧칠이라도 해야 할까, 독자는 바보라고 착각하며 모른 척 내 방식을 고집할 것인가. 문제는 고치고 싶어도 의지가 말을 듣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당신만의 스타일, 고집, 무지, 이런 굳어진 습성을 고칠 수 있을까? 게다가 그 문장이 비문으로 범벅이 되었다면?
고치고 싶다. 너무 고치고 싶다. 하지만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한 부분만 고쳐서 될 일이 아니라 문장 전체를 뜯고 발려야 하고, 때로는 원고 전체를 버려야 하는 상황까지 이른다. 시작에서 마무리까지 일관성 있게 쓰지 못한 탓이다. 거창한 시작에 비해 미미한 결과로 흐른 것이 문제다.
고쳐 쓰는 이유는 문장의 구조적인 배치, 설득력이 떨어지는 문장, 일관성 없는 문단의 주제, 미괄식 구성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집중하는 것은 비문이다. 비문이란 문법적으로 결함을 가진 문장을 말한다. 아예 문장으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문장의 사생아라고 부른다. 모든 문장은 주어와 술어가 일치해야 한다. 글쓰기 책에서 짧게 글을 쓰라고 하는 이유는 글을 길게 쓰면 문장 좌측에 배치한 주어와 오른쪽 끝에 쓴 술어부가 이산가족이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결국 단문을 쓰라는 이유는 비문을 쓰지 않도록 예방주사를 맞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구체적인 문장으로 비문을 살펴보자.
사례 1)
“(1)직장 생활을 할 때, 우리는 상대와 나의 경계선이 어디쯤인지 확인을 해야 하고, (2)서로의 영역을 지혜롭게 넘나드는 법을 알아야 하는 것은 진정한 자세다.”
이 문장은 부끄럽게도 내가 몇 년 전 블로그에 쓴 것이다. (1) 번 문장을 살펴보면, “우리는”과 술어부인 “확인을 해야 하고”로 문장을 끝맺고 쉼표를 찍었다. 쉼표 이후 문장에서 주어부는 “서로의 영역을 지혜롭게 넘나드는 법을 알아야 하는 것은”이고 술어부는 “진정한 자세다”라고 했는데, 이 부분이 문제다. 먼저 (1) 번 문장과 (2) 번 문장이 서로 호응하지 않는다. (1) 번과 호흡을 맞추려면 (2) 번은 다음처럼 고쳐야 한다. “서로의 영역을 지혜롭게 넘나들어야 한다”로 말이다. 문장의 전체 주어인 “우리는”과 술어부인 “진정한 자세다”가 호응하지 않는다. 다른 문제가 하나 더 있다. 술어부인 “진정한 자세다” 이 부분이 누가 가져야 할 자세인지 생략이 된 것이다. “직장인의 진정한 자세다” 이런 식으로 써야 한다.
매끄럽게 손 본 문장은 다음과 같다. 문장을 단문으로 나누었고 일부 단어도 고쳤다.
“직장 생활을 할 때, 우리는 상대와 나의 경계선을 확인해야 하고, 서로의 영역을 지혜롭게 지키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이 직장인의 자세다.”
비문의 다른 형태를 더 살펴보자
사례 2)
“늦기 전에 기록하세요.”
이 문장의 문제점은 목적어와 같은 필수 문장 요소가 사라진 데 있다. 고쳐본다면 이렇다. “늦기 전에 여러분의 삶을 기록하세요.” ‘여러분의 삶을’이라는 목적어를 문장 사이에 추가했다.
사례 3)
“지난 분기 매출 실적이 낮은 이유는 반도체 시장의 성장이 더디었다”
이 문장도 어딘가 수상쩍다. 매출이 낮은 이유는, 하고 물었는데 시장이 더디었다,라고 대답한다. 구조적으로 잘못된 문장이다. 고쳐본다면 다음과 같다. “지난 분기 매출 실적이 낮은 이유는 반도체 시장의 성장이 더디기 때문이다”로 고쳤다. “~ 이유는”이라고 묻는다면 “~하기 때문이다”라고 적는 것이 맞다.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한 사람은 고쳐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때마다 고민에 빠진다. 하루 종일 고민만 하다 침대 누워 잠이 들기 직전 전까지도 ‘고치다’, 라는 동사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내 문장이 그렇게 문제 투성인가? 지적받은 걸 고치려면 쓴 시간보다 더 걸릴 텐데, 아 귀찮다. 사람이 성격을 고치려면 죽을 고비를 넘겨야 한다는데, 내일 동물원에 가서 악어 입에 얼굴이라도 들이밀어 봐야 하는 건가? 그런 고비를 넘기면 글의 성격도 단번에 고칠 수 있을까? 이런 쓸데없는 공상이나 하며 밤을 새운다. 성격이든 글이든 어쨌든 고치기 어렵다.
글을 쓰다 보면 작가의 생각과 달리 독자는 때로 정반대의 시선에 서 있다. 생각의 불일치, 의견의 부조화를 넘어서지 못한 결과다. 이것을 극복할 방법을 안다면 누구나 독자가 감동하는 글을 매일 몇 만 자씩 찍어낼 수 있겠지. 당신도 안되고 나도 넘어서지 못하는 문제다. 독자와 작가의 간극, 그 넓은 불일치를 줄이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고쳐 써야 한다.
문장은 좌측에서 우측으로 써야 한다고 말한 김정선 작가의 평범한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쉬운 명제를 앞에 두고 나서도 비문은 여전히 생길 테고 우리는 그것을 고치려고 두 눈을 시뻘겋게 뜨고 문장을 쏘아볼 것이다. 사람은 고쳐쓰기 힘들다고 하지만, 글은 비교적 고쳐쓰기 수월하다. 고치면 고칠수록 글은 좋아진다. 이 글에는 비문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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