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수술한다. 에피소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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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좁은 틈바구니속에서도 무가지 신문을 차지하려는 할아버지들을 많이 목격하게 되는데"
이 문장에서 첫 번째 문제점은 ‘무가지’와 ‘신문’을 동시에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네이버 사전에서 ‘무가지’를 검색한다. ‘신문사에서 무료로 나누어 주는 신문’이라고 한다. 무가지에 이미 신문이라는 개념이 포함되었다. 신문은 필요없다. ‘많이’도 많이(?) 사용하는 부사다. 앞서 말했듯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은 독자를 지루하게 만든다. 모자란 어휘 탓만 하지 말고 제발 사전을 애용하자. ‘많이’를 사전에서 검색하니 ‘적잖이’가 눈길을 끈다. ‘목격하게 되는데’ 이 문장도 다이어트가 가능하다. ‘목격하는데’로 고치면 얼마나 날렵한가.
"그런데 그 좁은 틈바구니 속에서도 무가지를 차지하려는 할아버지들을 적잖이 목격하는데"
이제 중간이다. 계속 가보자.
"대표적인 모습들을 보면 서있는 사람 툭 치거나 밀쳐서 선반의 신문 꺼내기, 키가 작은 할아버지들의 반말과 함께 툭치며 신문을 꺼내 달라고 부탁하기, 경쟁자들과의 심한 몸싸움과 함께 욕설 내뱉기..."
‘대표적인 모습들을 보면’ 이런 문장은 필요가 없다. 없어도 문제없는 건 문장의 살만 찌울 뿐이다. ‘키가 작은 할아버지들의 반말과 함께 툭치며 신문을 꺼내 달라고 부탁하기’도 어색하다. 이런 문장은 대화체로 전환한다. ’ 어깨를 툭 치곤, 어이 그 위에 신문 좀 꺼내 줘’ 이런 식으로. ‘경쟁자들과의 심한 몸싸움과 함께 욕설 내뱉기.’ 이 부분도 대화체로 바꾼다. ‘야. 여기 내 구역이야 저리 꺼져’
"누군가 어깨를 툭 치곤, ‘어이 그 위에 신문 좀 꺼내 줘’, 경쟁자들과 벌어지는 ‘야 이 영감탱아 여기 내 구역이야 저리 꺼져’"
다음 문장도 계속 해부한다.
"물론 그러한 무례함을 무릅쓰고서라도 차지하려는 누구나 쉽게 습득해서 읽게 되는 보잘것없는 무가지 신문이 어느 이게는 소중한 삶의 지킴이가 될 수도 있다는 현실이 서글퍼지기도 한다."
형용사 ‘그러한’은 생략해도 되겠다. ‘누구나 쉽게 습득해서 읽게 되는 보잘것없는’과 ‘무가지 신문’과 서로 비슷한 뜻을 가진다. 앞 문장을 삭제한다. ‘무가지’와 ‘신문’에서 ‘신문’도 삭제한다. ‘소중한 삶의 지킴이가’ 이 부분은 ‘소중한’의 위치가 잘못됐다. ‘삶의 소중한 지킴이가’로 고친다. ‘소중한 삶의 지킴이가 될 수도 있다는 현실이 서글퍼지기도 한다.’ 이 문장은 비문이다. 여기서 주어는 ‘무가지 신문이’인데 ’ 서글퍼지기도 한다’ 술어와 호응하지 않는다. ‘소중한 삶의 지킴이가 될 수도 있다’로 문장을 끊는다. ‘현실이 서글퍼지기도 한다.’는 삭제한다.
"물론 무례함을 무릅쓰고서라도 차지하려는 무가지가 어떤 사람에게는 삶의 소중한 지킴이가 될 수도 있다."
이제 마지막 문장이다.
"그 늙은이가 느끼는 삶의 고단함이 어쩌면 나에게도 언젠가 찾아올지 모르는 두려움이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늙은이가’가 보다는 ‘노인이’ 더 일반적이다. ‘생각이 들게 된다’ 이 문장의 문제는 ‘생각’의 사용과 수동태 문장이다. 글은 작가가 쓰는 거다. 당연히 작가의 생각이라고 독자는 짐작한다. 굳이 생각을 쓸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두려움’도 문제다. 작가의 감정을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건 아마추어가 하는 짓거리다.
"노인이 느낀 삶의 고단함이 언젠가 나에게도 찾아오지 않을까?"
문장을 손 본 결과는 아래와 같다.
제목 : 살아남기 위한 전쟁
밤낮없이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
휴가철이지만 그날 아침도 거의 만 원이다시피 했다. 비좁은 틈바구니 속에서도 무가지를 차지하려는 할아버지들의 생존투쟁을 적잖이 목격하는 편이었다… 누군가 어깨를 툭 치곤, ‘어이 그 위에 신문 좀 꺼내 줘’, 경쟁자들과 자주 벌어지는 ‘야 이 영감탱아 여기 내 구역이야 저리 꺼지지 못해’ 이런 말들.
물론 무례함을 무릅쓰고서라도 차지하려는 무가지가 어떤 사람에게는 삶의 소중한 지킴이가 된다. 어쩌면 노인이 느낀 삶의 고단함이 언젠가 나에게도 찾아오지 않을까?
2009년 8월 어느 날의 역사를 고쳤다. 지나간 시간은 회복되지 않지만 글은 언제든 회복될 수 있다. 블로그에 처음 기록한 글을 끄집어 내어, 이리저리 헤집어 놓으니 이거 영 민망하다. 과거의 글이 부끄럽다는 건 내가 성장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니 한편으론 다행 아닌가.
https://brunch.co.kr/@futurewave/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