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다니며 칼럼을 게재할 때 모두가 잠든 밤에 혼자 글을 썼다. 며칠 동안 고민하고, 쓰고, 수정하고를 반복한 후 스스로 만족하는 글이 나왔다고 생각했을 때, 아내에게 칼럼을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괜찮네’ 나 ‘재밌다’ 등의 반응을 당연히 기대했다.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스러웠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이 용어는 너무 어려운 거 같아’, ‘글이 집중은 안 되고 멋만 잔뜩 부린 거 같은데’ 등. 결국 나는 ‘네가 글에 대해 뭘 알아!’라고 말하고 더 이상 보여주지 않았다. 지적받는 것도, 나의 글이 누군가에 의해 평가받는 것도 불쾌했다.
그 때문일까. 이후론 내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이 불편했다. 칼럼이 릴리즈 되기 전까지 미리 읽어보는 사람은 오직 편집자뿐이었다. 그마저도 뭔가 헐벗은, 드러내고 싶지 않은 내 비밀을 다른 이에게 알려줘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견디기 힘들었다.
내 글에서 숨은 오류 찾기
그랬던 내가 에디터로 근무하면서부터 생각을 바꿨다. 글을 쓸 때 놓쳤던 부분들을 여러 명이 보면서 찾아내고, 보완하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팀원들에게 지적당하면서 느낀 점은 ‘혼자 글을 쓰면서 생기는 오류’였다. 내가 자주 하는 ‘첫 번째 오류’는 주제에 대한 배경지식이다. 에디터로 근무하면서 리뷰해야 할 제품에 대한 정보와 소식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지만, 독자는 그렇지 않다. 하지만 독자가 글을 쓰는 나와 동일한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착각을 한다. ‘명품에 관심 있는 사람이면, 이 정도 브랜드는 다 알지 않나?’라는 생각으로 명품의 이름을 나열하지만, 정작 독자는 그 브랜드의 특징과 역사를 모른 채 글을 읽기 때문에 이해도 공감도 끌어내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브랜드의 특징을 몰라도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쓰거나, 필요하다면 간략하게 부연설명을 하는 등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두 번째 오류’는 말투다. 글을 완성한 후 오타나 어색한 문장을 찾기 위해 소리 내어 읽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읽을 땐 어색하지 않던 문장들이 왜 다른 사람이 읽으면 어색하게 느껴지는 걸까. 누구나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말투가 있다. 그리고 글을 쓰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습관이 글에 그대로 드러난다. 동료들이 찾아준 나의 습관은 ‘했다’라는 능동의 표현보다는 ‘하게 됐다’와 같은 수동의 표현을 주로 사용하는 것이다. 습관이기도 하고 성격인 것도 있지만, 동료들이 찾아주기 전까진 전혀 알지 못했다. 덕분에 주의 깊게 검토한다.
지금은 오류를 고치려고 글이 완성되면 동료들에게 공유한다. 그리고 코멘트를 주지 않은 동료에겐 콕 집어서 부탁한다. 물론, 지적을 당하면 기분 좋지 않다. 하지만 더 좋은 글, 완성도 높은 글을 쓰려면 분명히 거쳐야 할 과정임은 틀림없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요청하고 싶다. '제 글을 읽어 주세요.'라고.
Q. 쓴 글에서 자주 지적당하는 포인트가 있나요?
다음 매거진의 글은 공심 작가님의 <글쓰기는 과거를 회복시킨다. 2편>입니다. 과거에 쓴 문장을 다듬어 가는 과정이 인상적인 글인데요, 지난주에 발행된 글과 내용이 이어지니 이전 편을 못 보신 분들은 여기를 클릭해주세요! 6명의 작가들이 전하는 글쓰기 이야기가 궁금한 분들은《매일 쓰다 보니 작가》매거진을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