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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Apr 25. 2020

더 많은 양화가 나타나기를

*데백화점 본점 강의 소식

낯선 번호가 핸드폰에 찍혔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대체 유선전화 질이야." 이런저런 생각에 주저하다 마지못해 전화를 받았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여기 *데백화점 본점인데요."

"아, 네네 안녕하세요."


내 목소리는 금세 공손하게 변해갔다. 무슨 용건이냐고 따지듯 물으려던 내 공격성은 알아서 풀어져 버린 것이었다. 연락이 난데없긴 했지만 무슨 용건인지 이해할 것도 같았다.


"평*점에게 소개를 받아 작가님께 강의 제안을 드리고 싶어서 전화드렸어요. 통화 괜찮으세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옆자리에 앉은 직원에게 설마 목소리가 새어나간 건 아니겠지?,라는 의심의 안테나를 추켜 세우며 출구를 향했다. 문 앞까지 걸어가는 시간은 너무나 길기만 했다. 나도 모르는 추임새를 섞어가며 문을 열어젖혔다. 그 순간 들어오는 사람과 어깨가 살짝 부딪혔다. 나는 잠시 움찔거렸지만 곧 평정심을 되찾았고 속으로 큰 한숨을 쉬고 나서야 다시 센터 담당자와 통화를 지속할 수 있었다.


"저희가 6월부터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 중인데요. 작가님을 평*점에서 소개받았어요. 강의 잘 하신다고 소문이 자자해요. 저희가 직장인을 상대로 문화살롱이라는 프로그램을 기획 중이에요. 8주간 진행하는 프로그램인데요. 한주는 나와서 책만 조용히 읽고 한주는 독서 토론을 하는 모임이에요. 그 모임을 운영해 주실 수 있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아... 그럼 2주간 한 권의 책을 읽는 모임이네요? 보통 도서관이나 문화센터에서는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읽는데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여기 직장인들을 상대로 프로그램을 개설할 예정인데요. 출석률도 놓고 열정도 대단해서 크게 문제없을 겁니다. 특강을 한 번 열어서 책을 같이 선정하면 될 것 같아요."

"아, 그렇군요. 그럼 수업은 몇 주간 진행하나요?"

"네. 수업은 8주간 진행한답니다. 작가님은 언제 시간이 괜찮으세요?"

"네 제가 지금 직장에 다니고 있어서 월/수/금은 저녁에 괜찮고요. 화목은 아무 때나 상관없습니다"


담당자는 스케줄은 협의하자는 말과 함께 금액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나는 강의료와 상관없이 불러준다면 웬만하면 어디든 가는 편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괜찮은 금액을 제안받았다. 게다가 문화센터의 요람, *데본점이 아닌가. 서울의 정중앙, 그것도 요지 중의 요지 을지로에서 강의를 한다는 게 보통 행운이란 말인가. 나는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시간이 모자란다면 퇴사까지 각오할 작정으로.


몇 년 전 브런치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이후, 갑작스러운 문화 센터의 강연 제안을 받은 이후, 두 번째로 충격을 받았다. 긍정적인 의미로서의 충격, 즉 행복의 충격인 셈이었다. 기회란 것은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는 말, 나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바람에게 의지하기만 한, 지난 몇 년 간의 피로가 한 번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고 하면 과장일까.


물론, 이 경험으로 나의 앞날이 탄탄대로를 달릴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나는 여전히 가시 밭길을 걸어야 할 것이고 가시에 찔려야 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가시에 할퀴고 찔려야 할까. 몸에 박힌 이 가시들은 나를 더 뾰족하게 다듬어 줄까.


그제는 디지털 콘텐츠 유통하기,라는 특강을 진행했다. 내가 가진 지식을 타인에게 조건 없이 베푸는 즐거움을 누렸다. 순도 100%의 즐거움과 재미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절대 못할 일이다. 나는 최선을 다했고 하지도 못할 농담까지 섞어가며 떠들어댔다. 심지어는 부끄러운 얼굴까지 공개하며.


강의 후, 피드백을 받았다. 12명이 피드백을 전달했고 11명이 만족과 매우 만족이라는 점수를 안겼지만, 한 사람이 불만족을 표시했다. 나는 11명의 칭찬보다 단 한 명의 가시 같은 말에 휩쓸렸다.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가시들을 겪어왔기에 아무런 문제 없이 넘어갈 거라 믿었겄만 가시는 여전히 나를 지근거리게 만들 뿐이었다.


토마스 그레셤은 악화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 한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나에게 악화는 누군가의 가시 같은 피드백이었고 양화는 문화센터 본점에서의 강의라 하겠다. 내가 비탄에 잠시 빠진 것, 헤어 나올 수 없는 이물감에 빠진 것은 악화가 양화를 밀어내 버린 까닭이었음을, 24시간쯤 지나 스스로를 진단했다.


나에겐 더 많은 양화가 앞으로 나타나기를 소원한다. 그리하여 악화가 힘을 쓰지 못하도록 더 자주, 빈번하게 양화가 활약하길 기대한다. 그런 생각 때문이었을까. 평*점에서 소개한 안*지점에서도 강의 요청이 도착했다. 한 건의 양화가 도착했으니 나는 어쩌면 악화를 밀어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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