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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Aug 02. 2020

좋은 이별

할아버지의 기억

일간 공심 과월호 중에서


사람마다 애도 반응이 다른 것은 그의 내면에 이미 이별에 대응하는 저마다 다른 정서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그러나 애도하지 못한 이별의 경험이 내면에 들어 있는 사람은 새롭게 만나는 이별 앞에서 더 깊이 절망하고 더 오래 슬퍼한다.

《좋은 이별》 김형경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어떤 장면들은 아직도 너무나 선명해. 그런 장면들은 잔잔한 호수에 비친 달빛 조각 같은 거야. 어스름하고 은은하게 가슴속에서부터 호수 표면까지 무심하게 흘러만 가는 거지. 그러다, 수면 위에 돌멩이를 잠방 던지면, 물결 위에서 파문이 고요하게 일어나다 이내 가라앉고 마는 거야, 그러니까 깊은 곳에서 기어코 수면 위로 자꾸만 길러지는 무언가가 우리를 살아 있게 만들다가도 다시 죽게 만드는 거야. 그래, 선명함이란 웅크려 있다 다시 활력을 되찾으려는 영혼의 마지막 외침이거나 눈물의 고백이라고 정의해 두자. 기억을 회상하는 방법이란 결국 사라지려 하는 것들의 마지막 소원, 또는 낡은 기억 같은 것이겠지. 다시 살고 싶은, 완벽한 생을 얻고 싶은 것들의 짧은 몸부림이랄까? 난 그 방법을 죽을 때까지 찾지 못할지도.


그날의 기억들은 짧은 조각들처럼 여러 기억 저장소에 분산되어 있었어. 나는 무엇이든 외면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그것들을 기억 속에 가두거나 영원히 소각하려 했지. 그런데, 지우려 해도 그렇게 되지 않는 일들이 대부분이잖아. 의지를 아무리 억압해도 본능은 어느 한쪽에서 그리움을 계속 켜켜이 쌓아두는 것처럼 말이야. 나에게 그런 일은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죽음이야. 할아버진 크리스마스이브에 갑자기 돌아가셨어. 내가 국민학교 2학년쯤이었으니까. 기억 속에서 완전히 제거될 법한데, 아직도 그날 밤의 일이 불타는 광경처럼 선명해.


난 작은 아이였으니까, 아이답게 크리스마스 전날 밤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거든. 기대감 같은 게 그 날밤엔 더 커질 수밖에 없었지. 착한 아이처럼 일찍 잠이 들면 다음날 아침이면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이 머리맡에 도착해 있을 거라고 믿었거든. 그런데 그런 기대가 한 번에 무너진 거야. 모든 게 할아버지의 죽음 때문이었어. 난 할아버지와 영영 이별해야 한다는 현실보다 이번 크리스마스엔 선물이 부재하다는 결과를 더 현실적으로 받아들였어. 그러니 할아버지는 죽어도 야속하기만 한 존재로 남은 거지. 그래, 내가 얼마나 철이 없으면 단 며칠이라도 지난 후에 돌아가시지 하필이면 왜 크리스마스 전날 밤이란 말이야. 이런 생각까지는 안 했을 테니까.


할아버지는 바깥 화장실에서 돌아가셨어. 할아버지는 왕십리 집에서 큰아버지와 함께 사셨는데, 마당엔 작은 연못과 전통 화장실, 장독대가 있었어. 물론 내부에 현대식 화장실도 있었지.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게 영 신통치 않으셨나 봐. 날이 아무리 쌀쌀해도 늘 바깥 화장실만 고집하신 걸 보면. 그렇게 할아버지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다 돌아가시고 말았어. 그 신념이란 게 참으로 낡고 보잘것없고 이부자리 한쪽 귀퉁이 꿰맨 자국 같은 것이었지만...


할아버진 차가운 밤, 불도 없는 화장실에서 혼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 거지. 난 할아버지가 겪었을 적막한 죽음을 이해하지 못했어. 그럴만한 나이가 아니었잖아. 원망하는 마음만 대신 가득했어. 그러니까 나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할 마음도, 슬퍼할 이유도 찾지 못한 채, 아무 감정 없이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무표정하게 앉아 있었지. 천장을 물끄러미 쳐다보거나,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의 오고 가는 그림자만 구경하면서. 난 정서적으로 문제가 큰 아이였을까.


몇몇 장면들은 선명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장면은 아무리 회복시키려 노력해도 헛수고인 거야. 그냥 사람들이 물밀듯 파고를 치다가 다시 고요한 순간이 찾아왔다는 것만 흐릿하게 떠오를 뿐이야. 검은색 버스에 오르던 건 분명 기억이 나. 뒤쪽에 관이 들어가는, 약간은 공포스러운 이미지였어. 난 뒷자리에 앉아서 사람들이 오르고 내리는 형상을 지켜봤지. 비가 조금 왔던 것 같아. 검은 옷과 검은색의 우산이 유별나게 기억나는 걸 보면... 버스는 질척한 길을 오래도록 돌아다녔어. 서울이 아니라 자꾸 시골로 내려가는 것 같았는데, 그때는 아, 사람은 죽게 되면 시골을 찾게 되는구나,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산 자가 아닌 죽은 자와 함께 몇 시간 동안 이동한다는 게 공포스럽기도 했지만, 그 사람이 명절 때마다 지켜보던 할아버지라니 실감이 나지 않았지.


할아버지에 관해서는 밋밋한 기억들뿐이야. 워낙 무뚝뚝했던 할아버지의 성격 탓도 있겠지만, 큰집에서 제사를 지내는 명절에만 간혹 보는 일이 전부였기에 손자와 할아버지 간의 각별한 관계가 있을 리 만무하잖아. 큰집에 갈 때마다 내가 보는 할아버지는 늘 혼자 조용히 시간을 보내기만 하는 분이었어. 마루에 혼자 앉아 있거나, 앞마당 자그마한 연못에 사는 금붕어만 연신 쳐다보다, 먹잇감이나 던져 주고 계셨어. 난 그런 할아버지를 옆에 쪼그리고 앉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어. 나는 일부러 연못에 사는 물고기들을 관찰하는 것처럼 할아버지를 쳐다보며 관심을 끌려고 노력했어. 할아버지와 잠깐이나마 대화를 나누고 싶은 이유가 컸던 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는 오래도록 말이 없었어.


나한테 통 관심이 없는 것 같던 할아버지가 나를 찾아오는 날이 종종 있었어. 그런 날은 큰집에서 제사가 열리는 날이었어. 수업이 끝난 후, 나는 멀리 보이지도 않는 집을 향해 터덜터덜 걸어가며 아침에 엄마가 당부한 말을 떠올렸지. 그것은 할아버지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방과 후 딴 곳으로 절대 새지 말고 곧장 집으로 가라는 말이었어. 엄마의 말을 곱씹으며, 친구들의 각종 유혹들을 뿌리쳐야 했어. 그렇게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면 어느새 집에 도착했어. 덜컹 문을 열고 빈집에 들어서면 할아버지는 마당에 놓인 작은 의자에 말없이 앉아있었지. 할아버지는 담배를 피우거나, 조그만 책을 읽고 계셨는데, 어떤 책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아. 아마도 내가 언제 올지 모르는 지루했던 시간을 견디기 위한 사소한 장치였을 거라고 짐작해.


버스에 먼저 내가 오르면 뒤에 할아버지가 올랐어. 빈자리가 생기면, 할아버지가 먼저 앉고 나는 할아버지 무릎 위에 앉거나 할아버지 무릎 사이에 생긴 조그만 공간에 앉았어. 창밖을 바라보며 나는 할아버지에게 질문을 던진 것 같아. 저기 간판은 뭐 하는 곳이냐고. 여긴 어느 동네냐고 조잘조잘 물었던 것 같아. 할아버진 내 물음을 전혀 귀찮아하지 않았어. 꼬박꼬박 대답을 해주시거나 움직이면 다친 다고 가만히 있으라고 다정하게 대답을 하기도 했지. 할아버지와 난 그런 관계였어. 자주 만나지는 않았지만 날 데리러 오고, 하교 시간까지 기다리고, 다시 어느 곳으로 데려가는 이상한 사이였지. 국민학교 2학년짜리가 버스를 혼자 못 탄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야. 난 혼자서 마천동에서 광화문 교보문고, 어린이대공원 같은 곳도 곧잘 다니는 아이였거든. 할아버진 굳이 날 데리러 오겠다고 왕십리에서 마천동까지 먼 행차를 했던 거야. 이상하지 왜 그랬을까? 할아버진. 그러니까, 할아버진 말을 살뜰하게 하거나 귀엽다고 손자의 머리를 어루만지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거리를 두면서도 가까움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고 할까.


할아버지와 영원한 이별을 했을 때, 난 너무 어려서 그 단어에 서린 슬픔의 의미를 몰랐던 것 같아. 이별이란 무엇인지 그 감정의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철도 없었고. 아무튼 난 살아가는 동안 할아버지를 그립다고 생각한 적이 별로 없었는데, 자꾸만 할아버지의 기억들이 복원되려는 거야. 나도 이제 늙어가는 건 가봐. 왜 그랬던 걸까. 누군가의 죽음이 시간이 갈수록 더 무거워지는 이유, 심장을 자꾸 저리게 하는 이유는 뭘까. 혈육의 정일까? 단순한 그리움에 불과할까? 남자니까 슬픔을 감춰야 해,라는 어린 시절에 들은 어른의 충고가 이제 퇴색해지기 때문이었을까. 상실의 흔적이란 건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사라질 거라 믿었는데, 그게 사실은 할아버지와 제대로 이별을 하지 못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어. 충분히 절망하고 충분히 그리워하고 슬퍼했어야 했는데 말이야. 난 그걸 제대로 하지 못했어. 그래서 자꾸만 기억이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나 봐. 찢긴 감수성을 꿰매려고 하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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