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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앗의 정원 Oct 09. 2022

뿌리 깊은 나무 vs. 자유로운 인간

식물이 자란다, 아이가 자란다, 나도 자란다

나무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뿌리내린 곳에서 평생을 살아간다. 아늑하고 편안한 장소가 아닌, 콘크리트 틈바구니나 보도블록 틈새를 비집고 자라난 식물들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너는 어찌 한 번뿐인 인생, 이리도 힘든 곳에 뿌리를 내렸니. 더 나은 곳으로 이주해갈 수 있다면 좋으련만. 


제 의지로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식물들의 처치를 안타깝게만 여겼었는데 얼마 전 어린 왕자를 읽다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했다. 사막에 뿌리내린 작은 꽃의 시선에서 바라본 인간이라는 존재가 재미있게 묘사된다. 작은 꽃은 '인간들이란 뿌리내리지 못하고 바람에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는 위태로운 존재'라며, 메마른 사막에 뿌리내린 자신의 안위보다 인간들의 처지를 더 걱정하고 있다. '오호라!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누군가 살아가는 방식이 내 기준에서 무의미하고 틀린 것처럼 보여도, 내 마음대로 그들을 판단하거나 섣불리 동정하거나, 내 방식대로 바꿔주려고 하는 마음을 경계해야겠다. 누구든 각자, 나름의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 아닐까?


잠시 길가에 난 풀이되어 인간을 바라보는 상상을 해 본다. 이리저리 무리 지어 몰려다니는 모습이 영락없이 바람에 밀려다니는 모습이다. 뛰어다니기 좋아하는 아이들은 데구루루 굴러가는 나뭇잎 같다. 뿌리내린 존재의 안정감이 느껴진다. 사람들은 흔히 결혼을 해야 안정감이 느껴진다고 한다. 안정적이란 것은 움직이지 못하는 나무처럼 메어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육아의 어려움으로 지칠 때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다니던 회사를 계속 다니며 사회적 경제적으로 성장했을 테고, 주말엔 춤을 추거나 여행을 다니며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자유로웠을 것이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장점이 끝도 없이 밀려들어 ‘아 결혼하지 말걸 그랬나 봐.’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려는 찰나, 그러면 아이들도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된다. 아이들이 없는 삶은 상상하기 어렵다.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지금 걷는 이 길을 선택 가능성이 높다. 운명이다. 받아들이고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고 마음을 다독인다.


일곱 살 둘째 아이는 종종 뜬금없이 “엄마, 아이를 키우느라 좀 힘들죠?”하고 묻는다. 그 표정이 너무나 진지해서 웃음이 났다. “엄마는 하나도 안 힘들어. 오히려 행복한 걸? 너희들이 있어서 엄마는 행복해. 예전에 혼자 살 때는 되게 심심했거든. 그래서 너희들에게 참 고마워!” 엄마가 힘들지 않아 다행이라는 듯 아이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가까운 친구들 중에 딩크로 지내는 친구가 몇 있다. 그들을 만날 때면 그들이 선택한 길이 멋지고 의미 있어 보인다. 친구는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는 화려하고 당당한 모습이라 살짝 위축된다. 우리는 서로의 모습에서 내가 가지 않은 그 길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곤 한다. 두 길 모두 매력이 있고 장점과 단점이 명확하기에 어느 길이 더 낫다고 할 수가 없다. 각자가 선택할 영역이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다하며 살면 되는 것이다. 




딩크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왔을 때였다. 즐겁게 식사를 마치고 친구들이 돌아간 뒤 첫째 아이가 물었다. 


“엄마, 저 이모들은 아기가 없어요?”

“응!”


“그럼 결혼은 한 거예요?”

“응, 이모들 다 결혼했지.”


“근데 왜 아기를 낳지 않았어요?”

“글쎄, 엄마도 자세한 건 물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이모들은 아기를 낳지 않기로 했대. 결혼하고도 아기를 낳지 않는 사람들도 많아!”


“왜요?”

“왜냐하면, 아기를 낳으면 포기해야 할 것들이 많거든. 회사를 그만둬야 할 수도 있고, 친구들도 잘 못 만나고 그래. 아기를 돌봐야 하니까.”


“...... 그럼, 엄마도 아기를 낳고 그런 걸 포기한 거예요?”

“맞아, 엄마도 너희를 돌봐줄 사람이 엄마밖에 없어서, 결국 회사를 그만두었지.”


“...... 죄송해요 엄마.”


아이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고이고 얼굴이 일그러진다. 어라, 얘기가 왜 이렇게 흘렀지? 다시 정리를 해야 했다. 


“네가 왜 죄송해? 그건 엄마가 선택한 일이고, 엄마는 사실 회사에 다니는 것보다 너희랑 이렇게 지내는 게 더 행복해!”

“진짜요?”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내 표정을 살피는 아이에게, 지금의 삶이 행복하다는 걸 몇 번이고 설명해주어야 했다. 아이는 행복하다는 엄마를 보며 안심한 듯 돌아섰지만, 마음 한 편으로 씁쓸함이 올라온다. 간절한 바람을 덧붙여본다. 네가 자라 어른이 된 세상에서는 육아를 위해 꿈을 포기하거나 직장을 그만두지 않기를. 아이들을 낳아 기르는 것이 힘들고 어렵기만 한 일이 아닌 축복이기를. 어린이들이 마음 놓고 자라나고 부모들도 행복한 육아를 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육아가 더 이상 한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함께 책임져야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혀야 할 것이다. 아이를 낳은 부모들이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가 갖춰지고 육아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그 안에서 누구 하나 희생하는 일 없이 행복한 육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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