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씨앗의 정원 Oct 10. 2022

솔방울의 비밀

식물이 자란다, 아이가 자란다, 나도 자란다

아이들과 함께 겨울 숲을 거닐다 보면 어느새 손안에 솔방울 몇 개가 들어있다. 예쁜 모양으로 바닥에 떨어진 솔방울을 지나치지 못하고 하나씩 들어 살피다가 온전하게 모습이 남아있는 녀석들은 집으로 들고 온다. 솔방울은 건조해지면 입을 쩍 벌리게 되는데 바싹 말라 활짝 벌어진 솔방울을 물에 담그면 물기를 흡수하며 다시 오므라든다. 촉촉해진 솔방울을 건조한 실내에 놓아두면 다시 습기를 뿜어내며 활짝 벌어지니, 천연 가습기로 사용하는 것이다. 혹은 솔방울에 물감을 바르며 아이들의 놀잇감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소나무 열매인 솔방울 안에는 잘 여문 씨앗이 가득 들어차 있다. 어느 날엔가 소나무 씨앗이 궁금해져 바닥에 떨어진 솔방울을 주워 들어 자세히 들여다보았는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씨앗이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솔방울에 달려있던 씨앗들은 이미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간 뒤였다. 소나무의 씨앗은 바람에 날아가기 쉽게 날개 모양을 하고 있다. 가능한 모체로부터 먼 곳으로 날아가 싹을 틔우게 하기 위함이다. 큰 소나무 그늘 아래서는 햇빛을 충분히 받지 못해 작은 나무들이 잘 자라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말을 듣고는 식물의 지혜에 크게 감탄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은 일을 하느라 바빠 자식들에게 세세하게 관심을 쏟지 못하셨다. 그나마 조금 남은 관심은 오빠와 남동생을 향했으니 나는 형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지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엔 섭섭하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그 덕분에 나는 어린 나이부터 주체적으로 자라날 수 있었다.


스무 살 성인이 됨과 동시에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 생활했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학교를 다녔기 때문이었다. 부모님과 물리적으로 떨어져 생활했던 그 시간 동안 나는 훌쩍 어른이 되었다. 세상을 향한 두려운 마음도 있었지만 하나씩 도전해 성취하는 기쁨도 맛보았다. 마음먹은 것은 무엇이든 도전해볼 수 있는 시기였다. 부모님은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내가 하겠다는 일에 반대하신 적이 없었는데 스무 살 이후로는 더욱 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들에 모두 도전해보며 살았다.학기 중에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방학이면 해외여행을 했다. 대학교 2학년 때 휴학을 하고 위험 지역으로 자원봉사활동을 떠나겠다고 했을 때 얼굴에 당황한 기색을 살짝 내비치셨지만 이내 내 선택을 지지하고 응원해 주셨다. 


“네가 잘 알아서 하겠지. 잘할 거라 믿는다.” 


무관심이라 느꼈던 것은 어쩌면 부모님의 믿음과 기다림이었을까? 부모님의 적당한 거리두기와 기다림 덕분에 20대의 나는 마음껏 세상을 누비며 경험을 쌓았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 부모의 입장이 되고 보니 ‘내가 아이들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한다. 엄마의 사랑이 충분했다고 느끼면서도 간섭은 심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둘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다. 사랑의 탈을 쓴 간섭을 하고 있는 나를 수시로 발견하곤 한다. 


아직은 아이들이 어려 내가 하는 말을 대체로 수용하고 따르는 편이다. 그러나 초등 고학년에 들어서는 첫째 아이는 슬슬 저항하기 시작한다. 


“꼭 그래야 해요?” 

“엄마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일 수도 있잖아요.”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뾰족한 말로 대응해오는 아이를 보며 서운한 마음이 들다가도, 그렇게 점차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인가 보다 생각하면 기특하고 대견하다. 


아이가 넘어지고 휘청일 것이 뻔해 보이는 길을 가겠다고 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의 선택을 지지하고 기다리며 응원해 줄 수 있을까? 아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나의 마음은 찢어지게 아프겠지만 묵묵히 응원하는 엄마가 되고 싶다. 그 길에서 설사 넘어지고 길을 잃더라도, 아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니 기쁘게 고통을 감내하고 배우며 자신만의 인생을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엄마 나무의 그늘 아래에서 아기 나무들이 잘 자라지 못하는 것처럼 부모의 그늘 아래에서는 아이들이 마음껏 자라지 못한다. 나는 내 인생의 주인으로, 아이는 아이 인생의 진정한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부모의 지나친 관심과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인생을 설계하고 만들어나가는 행복한 어른으로 자라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이전 16화 뿌리 깊은 나무 vs. 자유로운 인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