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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앗의 정원 Oct 11. 2022

봄날의 햇살

식물이 자란다, 아이가 자란다, 나도 자란다

3월의 텃밭은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겨울이다. 이 시기에 밭에 나갈 때면 두툼한 외투를 챙겨 입는데, 쏟아지는 햇살을 맞으며 텃밭을 가꾸다 보면 따스한 햇살이 등을 달구어주고 머리카락이 따끈따끈해진다. 어느새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힌다. 두꺼운 옷을 입고 시작한 밭일은 외투를 벗으며 마무리되곤 한다. 온몸으로 스며드는 봄 햇살의 따스함을 느끼고 있자니 나도 식물이 된 듯하다. 식물의 입장에서 보자면 따스한 햇살을 받는 봄은 돋아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계절이다. 겨우내 꽁꽁 얼어붙은 땅에서 숨죽이고 있던 씨앗은 이렇듯 따사로운 햇살의 격려로 봄을 맞이한다. 


이솝우화 해와 바람의 나그네 외투 벗기기 이야기에서 나그네의 옷을 벗긴 것은 세찬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살이었다. 바람의 공격에 옷깃을 부여잡던 나그네는 햇살의 따스함에 스스로 외투를 벗게 된다. 매서운 바람 뒤에 ‘빛의 격려’를 받는 상상을 하니 마음이 훈훈해진다.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굳게 닫힌 사람의 마음을 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따스한 격려다.  


사춘기 아이의 잘못을 훈계할 때 따스함의 힘을 실감한다. 화나는 감정에 사로잡혀 차가운 표정과 말투로 언성을 높이면 아이는 움츠러들며 마음의 문을 닫아건다. 이런 상태에서 아이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 어렵고 오히려 억울한 마음이 생기기 쉽다. 아이가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반발한다 싶으면 잠시 숨을 고르며 아이의 눈을 바라본다. 어떻게 하면 갈등 없이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훈계할 수 있을까? 숨을 고르는 사이 잔뜩 힘이 들어갔던 얼굴 표정이 풀어짐을 느낀다. 눈빛은 최대한 부드럽고 따뜻하게 유지해 본다. 입가에 살짝 미소까지 지어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잔뜩 굳어졌던 아이의 표정이 풀어지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다. 


사실 아이도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바람처럼 호되게 자신을 몰아붙이는 엄마 앞에서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이 굴복하는 것으로 느껴졌을 수도 있다. 봄날의 햇살 같은 따스함으로 아이에게 다가간다면 아이도 마음의 문을 열고 엄마의 진심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곧 사춘기에 접어들 아이와의 관계에서 빛의 격려를 마음에 새겨둔다면 큰 갈등 없이 지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따스한 태양처럼 끊임없이 사랑과 격려를 보내주는 것이야말로 부모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꽁꽁 언 땅을 녹이고 세상 모든 씨앗을 깨어나게 하는 햇살처럼 부모의 따스한 사랑은 아이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자라도록 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매일 사랑 고백을 한다. “사랑해 고마워, 엄마에게 와줘서 정말 고마워.” 특히 더 공략하는 시간은 잠들기 전 시간이다. 포근한 이불속에서 꼭 안아주고 머리를 쓸어주고 이마에 뽀뽀를 해주며, 오늘 하루도 너희들 덕분에 행복했노라 속삭인다. 그럼 아이들은 더 오버하며 “내가 더 사랑한다.” 달려든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이 애정표현을 나는 좋아한다. 


첫 아이가 갓난아기일 때부터 늘 일상적으로 해오던 말이라 아이들은 익숙한 듯 넘길 만도 한데 내가 사랑 고백을 할 때면 눈썹 꼬리를 강아지처럼 늘어뜨린 채 “저도 사랑해요.” 하며 품에 안겨온다. 제법 몸집이 커져 어른 키 만한 녀석이 몸을 구겨 품 안에 들어오려는 모습을 보면 아직 어린아이구나 싶다. 아이들이 언제든 안겨올 수 있게 너른 품을 가진 엄마이고 싶다. 


아이에게 물었다. 


“엄마가 널 사랑하는 게 느껴지니?”

“가끔은요. 하지만 가끔은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요. 뭐, 혼날 때나 화낼 때.”

“너라는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 거니 네가 어떠한 잘못을 해도 엄마의 사랑은 변함없을 거야. 네가 못생겨도, 공부를 못해도, 쿵쿵대고 뛰어다녀도, 엄마는 너를 사랑해!”


그럴 줄 몰랐다는 아이의 표정이 황당하기만 하다. 늘상 사랑고백을 해왔으니 당연히 엄마의 사랑이 충분하다 여기는 줄 알았다. 얼마나 더 표현해야 하는 걸까?


지구에 사는 생명체들은 모두 태양의 사랑을 먹고 산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눈보라가 날리는 날에도, 태양은 늘 따사로운 빛을 보내주고 있다. 구름 뒤에 가려 보이지 않을지라도 그곳에 태양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세상의 모든 부모는 아이에게 태양과 같은 존재다. 태양의 따스한 빛처럼 아이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보내주는 일,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그 일을 오늘도 묵묵히 해본다. 설사 아이가 구름에 가린 햇빛을 보지 못하고 투정을 부려도 부모는 지치지 않고 사랑을 보낼 것이다. 맑게 갠 하늘에서 다시금 햇살을 발견한 아이가, 언제나 그 자리에 자리한 부모의 사랑을 깨닫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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