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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앗의 정원 Oct 13. 2022

생명을 간직한 물! 식물 기르기의 핵심은 ‘물 주기’

식물이 자란다, 아이가 자란다, 나도 자란다

밥을 짓기 위해 쌀과 잡곡을 씻어 물에 불린다. 한나절 가량 지나면 바싹 말라있던 곡식은 통통하게 부풀어 오르며 깨어난다. 실제로 그 곡식을 흙에 심으면 싹을 틔우고 자라난다. 생명의 근원인 물이 잠자던 씨앗들을 깨운 것이다.


씨앗을 심기에 앞서 미리 촉촉한 솜에 (혹은 물에 담가) 씨앗을 불린다. 하룻밤만 지나도 씨앗에 통통하게 물이 오르며 생명의 기운이 차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씨앗이 벌어지며 빼꼼 뿌리가 나오기 시작하면 나는 조용히 환호하며 조심스레 흙으로 씨앗을 옮겨 심는다. 며칠 안에 어김없이 연둣빛 새싹이 쏘옥 고개를 내민다.


씨앗은 적절한 조건이 주어지기 전까지 잠을 잔다. 얼핏 보면 생명이 없다고 느껴진다. 씨앗은 일생에 단 한번 싹 틔울 기회를 갖는다. 싹을 틔우는 일은 한 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고 되돌릴 수도 없기 때문에 씨앗은 아주 신중하게 싹 틔울 조건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천 년 넘게 잠들어 있던 연꽃 씨앗을 싹 틔우는 데 성공했다는 기사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잠자는 씨앗을 깨우는 것은 적당한 양의 물과 온기이다. 잠든 씨앗을 깨우는 물을 보며, 아이들에게 물과 같은 역할을 하면 되겠구나 힌트를 얻어 본다. 


식물 기르기의 핵심은 물 주기다. 쉬워 보이지만 식물마다 물을 주는 주기가 달라 식물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물을 주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아보카도와 망고처럼 물을 쑥쑥 먹는 아이들은 화분 아래에 그릇을 담아 저면관수로 물을 준다. 물을 얼마나 많이 먹는지 사나흘마다 한 번씩 물을 보충해줘야 한다. ‘물먹는 하마’라는 별명이 생길만하다. 반면 선인장과 다육식물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물을 적게 주어야 잘 자란다. 




식물들마다 물 주는 방법이 다른 것은 아이에게도 적용된다. 아이마다 필요로 하는 것이 다르니 아이의 특성을 파악하고 필요한 지원을 하는 것이 포인트다. 첫 아이만 키울 때는 비교 대상이 없어 몰랐다. 둘째 아이가 태어난 뒤로 성격도 취향도 몹시 다른 두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며 아이들을 하나로 뭉뚱그려 볼 것이 아니라 각자의 매력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밝고 창의력이 풍부한 첫째 아이에게는 어떤 부분을 도와주어야 할지, 바르고 제 할 일 똑 부러지게 잘하는 둘째에게는 어떤 부분이 필요할지 곰곰이 생각해 볼 부분이다. 효과적인 방법으로 접근해야 할 텐데, 오늘 아침도 잔소리와 꾸중으로 시작하고 말았다. 잔소리는 씨알도 안 먹히는 아이에게 오늘도 헛수고를 하다니! 


얼마 전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MBTI 유형 검사를 해보았다며 자신의 유형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아이의 유형을 들은 나는 ‘아하!’ 무릎을 치며 감탄했다. 나는 무언가를 하기 전에 늘 계획을 세우고 계획에서 틀어지는 상황을 싫어하는 J 성향인데, 아이는 정 반대의 P 성향이었다. 그간 아이와 갈등을 빚어오던 상황이 머릿속에 휘리릭 스쳐 지나가며 ‘아이와 나의 성향이 달라 그랬던 거구나’를 알게 되었다. 아이가 초등 3학년이 되던 때부터 영어 수학을 매일 일정 시간 공부하기로 계획을 세워두곤 했는데, 아이는 계획해둔 공부 시간을 지키지 않고 상황에 따라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계획을 지키지 않는 아이가 못마땅해 계속해서 잔소리를 했다. 재미있게 책을 읽는 아이를 불러와 책상 앞에 앉혀 놓으면 아이는 ‘한참 재미있게 책 읽고 있었는데 엄마 마음대로 한다.’며 불만을 드러냈고 나는 ‘계획대로 하지 않는다.’며 아이를 다그치곤 했던 것이다. 


계획하고 이를 실천하는 것은 인생에서 중요한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아이가 이 부분을 해내지 못할까 걱정되는 마음이었지만, 돌아보면 아이는 자신의 성향에 맞춰 나름의 삶을 잘 꾸려오고 있었다. 계획적이란 성향은 달리 말하면 돌발 상황에 취약하다는 뜻이다. 반대로 계획적이지 않다는 것은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부족한 면을 채우려 아이를 힘들게 하기보다 이미 가지고 태어난 자유분방하고 유연한 특성을 살려 자신에게 맞는 일을 하며 살아가도록 돕는다면 아이는 자연스레 자신만의 꽃을 피워갈 것이라 믿는다. 둘째 아이는 아직 유치원생으로 어려 어떤 성향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 아이의 성향도 잘 고려하여 더욱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이끌어줘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각각의 씨앗이 싹트는 서로 다른 조건을 보며, 우리 아이들의 잠재력은 어떤 환경에서 잘 발휘될지, 아직 깨어나지 못한 나의 잠재력 또한 어떤 상황에서 깨어나려는지 생각해 본다.


다행인 것은 발아할 기회를 단 한 번 밖에 가지지 못하는 씨앗과 달리, 우리 사람들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도 또다시 도전할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시도해도 괜찮다니 정말 든든한 빽이 아닌 수 없다. 


식물 키우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때 맞춰 물을 열심히 줬는데도 식물이 말라죽어버렸다’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는 물이 부족해 말라죽은 것이 아니라 뿌리가 흡수하지 못할 만큼 흙이 축축해 뿌리가 썩어버려 물을 빨아들이지 못하고 잎이 말라죽어버린 것이다. 즉, 과습으로 인해 말라죽은 것이다. 


보통 화분에 물을 줄 때 ‘일주일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번’으로 정해서 알려주기도 한다. 허나 집집마다 온도와 습도가 다르고 생활환경도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이러한 주기를 정할 수는 없다. 화분에 물을 주는 적절한 시기와 방법은 ‘화분 겉흙이 말랐을 때, 흘러내릴 만큼 듬뿍’ 주는 것이다. 즉, 식물이 원할 때 충분히 주는 것이 포인트다.


아이에 대한 부모의 관심과 사랑은 어떨까? 늘 관심과 사랑으로 지켜보다가, 아이가 필요로 할 때 적절하게 개입해 도움을 주는 것이 좋다. 태어나 몇 년 간은 전적으로 부모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지만, 유치원에 들어가는 시기가 되면 벌써 아이만의 사생활이 필요해진다. 이때부터 조금씩 아이만의 시간을 갖도록 해 주고 부모와 아이는 점차 서로의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줄여나가는 것이 좋다.


또 한 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아이에게 하는 부모의 사랑이 아이에게도 ‘사랑’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여부이다. 아이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은 불필요한 지나친 간섭은 아니었을까 신경이 쓰인다. 


요즘 내가 관심을 기울이고 보살피는 존재는 씨앗을 심어 키우는 작은 식물들이다. 이제 막 싹트는 식물들을 들여다보며 잘 자라고 있는지 살피고, 자라는 모습에 기뻐한다. 늦게 싹튼다고, 이상한 모양으로 자란다고 다그치거나 화내지 않고 그저 바라보며 기뻐할 뿐이다. 이것은 확실히 관심과 사랑이라 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는 어떠한가 생각해 보면 ‘관심’인지 ‘간섭’인지 헷갈린다. 아니, 사실은 간섭에 더 가까운 것임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사랑의 탈을 쓴 간섭은 나의 에너지만 소모하는 것일 뿐, 아이의 삶에 그다지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한다. 과습으로 오히려 말라가는 식물들처럼 아이는 오히려 숨 막혀하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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