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이 자란다, 아이가 자란다, 나도 자란다
고개를 들어 거실 창가를 바라보았다. 바깥은 한겨울 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창문으로 귀한 겨울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어 안 쪽은 따스하기까지 하다. 창가에 자리한 식물들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식물은 저마다 견뎌낼 수 있는 추위의 온도가 다르다. 열대작물들은 우리나라의 겨울을 견뎌내지 못하지만 망고, 아보카도, 파인애플 등 열대작물들은 이 거실에서 3년째 대한민국의 매서운 겨울을 견디며 살아있다. 이들이 무사히 자라날 수 있었던 것은 창문 덕분이다. 창문은 추위와 바람을 막아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따사로운 햇살을 고스란히 통과시켜준다. 덕분에 우리 집 거실 한편에서 열대작물들은 푸른 잎을 뽐내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추위와 비바람을 막아주면서도 따스한 햇살은 통과시켜주는 창문을 닮고 싶다. 열대작물들이 창문 덕분에 우리나라의 겨울을 견뎌내었듯 아이들에게도 창문 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 식물마다 견딜 수 있는 추위가 다르듯 아이마다 견뎌낼 수 있는 어려움의 강도와 분야가 다르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기 전까지는 견뎌낼 수 있는 정도로만 시련을 겪을 수 있게 거센 비바람을 막아주고 싶은 마음이다. 허나 언제까지고 아이들 대신 비바람을 맞을 수는 없으니, 아이들이 견뎌낼 수 있는 시련의 강도와 분야는 점차 커져야 할 것이다. 작은 어려움을 극복해 낼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토닥여주며, 역치를 키워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 어두운 방에서 이불을 턱밑까지 올려 덮고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요즘, 힘든 점은 없니?"
아이는 몸과 마음이 모두 편안한 상태에서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한다. 종종 엄마에 대한 불만이 포함되어 있지만 나 역시 취침을 앞둔 여유로운 상태인지라 아이의 불편한 마음을 저항 없이 받아들인다. 아이들이 삶의 어려움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동시에, 아이들이 자라나는데 필요한 따스한 햇살(사랑)은 담뿍 전해주고 싶다.
모든 것을 투명하게 비추는 창문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너그러움’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자신을 통과하는 대상을 왜곡하거나 변형하는 것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하는 창문, 창문을 닮은 엄마를 꿈꾼다. 아이들이 내가 기대하는 방향과 다른 행동을 할 때면, 나도 모르게 아이의 태도를 수정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그것이 옳고 그름에 관한 부분이라면 당연히 행동 수정을 해야 하겠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의 부분이라면 자신의 생각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는 멈칫한다.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딸이 애교도 많고 밝은 성격이길 바라셨다. 애석하게도 나는 부모님의 기대와 달리 무뚝뚝하고 내성적인 성격이라 종종 지적을 받았다.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애교 많고 외향적인 성격이 유리하니 자녀에게 그렇게 가르친 것이리라 이해한다. 그러나 타고난 성향을 고쳐 다르게 행동하기를 요구받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다. 어느새 나도 어른이 되었다고 아이에게 부당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반성하게 된다. 아이들이 자신이 가진 고유한 성품과 재능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어른이 되어서도 변함없이 간직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창문의 또 다른 특징은 실내에서 바깥세상을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어린 시절에 부모라는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부모라는 창문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엄마'라는 창문을 거쳐 들어온 세상은 아이들의 눈에 어떻게 비칠까? 가능한 넓은 세상을 보여줄 수 있게 커다랗고 맑은 창문이 되고 싶다. 아이에게 밝고 긍정적인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이 세상 모든 부모들의 소망일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 부부가 하는 몇 가지 루틴이 있다. 매 주말 온 가족이 나들이 가듯 도서관을 찾는다. 남편과 내가 읽을 책 몇 권과 아이들이 읽을 책을 한 보따리 빌려 집으로 돌아온다. 거실에 배를 깔고 엎드려 귤을 까먹으며 책을 읽는 시간은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일상이다. 아이는 책을 통해 넓은 세상과 만난다. 주말농장도 빼놓을 수 없는 일과다.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던 시절부터 아이들은 텃밭의 흙을 만지며 식물이 자라 꽃 피우고 열매 맺는 과정을 함께하고 있다. 흙바닥 한 번 밟기 어려운 도시에 사는 아이들이 자연을 가까이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때 맞춰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고 정성을 기울여야 비로소 열매를 얻을 수 있다는 이치를 배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긍정적인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아닐까 싶다. 커다랗고 맑은 창을 통해 세상의 다양한 모습을 바라보며 아이들이 마음 안에 소중한 꿈을 키워나갈 수 있다면 좋겠다.
창문이 가진 또 하나의 매력은 언제든 여닫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실내 공기가 답답할 때 언제든 창문을 열어 신선한 공기를 불러들일 수 있다. 열고 닫으며 신선한 공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창문을 닮고 싶다. 아이들은 언제까지고 부모의 품 안에 자리하지 않는다. 자라나면서 종종 창문을 열어 엄마를 벗어나 세상의 새로움을 만나기를 바란다. 창문을 통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꿈을 키운 아이들은, 언젠가 때가 되면 저 문을 열고 당당히 세상으로 들어갈 것이다. 자신만의 새로운 세상 속으로. 그리고 나는 아이의 그 걸음을 온 마음으로 응원하며, 자기의 세상을 꾸려가는 아이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볼 것이다.
“그러다 언젠가 때가 되면, 저 문을 열고 세상으로 들어가렴. 너만의 새로운 세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