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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앗의 정원 Oct 12. 2022

세상 모든 씨앗을 품어내는 건강한 흙

식물이 자란다, 아이가 자란다, 나도 자란다

‘흙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는 유치원 꼬마도 쉽게 대답할 수 있을 만큼 흙은 우리 주변에 늘 존재하는 흔한 것이다. 그런데 각자가 머릿속에 떠올린 흙의 모습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사막의 모래를, 길가의 메마른 흙을, 또 누군가는 비옥한 토양의 모습 등 자신이 살면서 경험한 흙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국어사전에서 ‘흙’의 정의를 찾아보면 ‘지구의 표면을 덮고 있는, 바위가 부스러져 생긴 가루인 무기물과 동식물에서 생긴 유기물이 섞여 이루어진 물질’이라고 나온다. 무기물과 유기물이 어떤 비율로 섞였는지, 어떤 종류의 바위가 부서진 것인지, 어떤 동식물로 이루어진 것인지에 따라 셀 수 없이 다양한 종류의 흙이 생성된다. 흙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하지만 모두가 떠올리는 모습이 다른 이유이다. 내가 떠올리는 흙의 모습은 촉촉하고 까만 빛깔에 향긋한 흙내음을 풍기는 비옥한 텃밭의 땅이다.  


농사모임에서 농사를 지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텃밭의 흙을 건강히 만드는 것이었다. 작물을 심고 수확하는 것보다 건강한 흙을 만드는 것에 집중했다. 비옥한 땅에서라면 어떤 작물이든 잘 자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이를 위해 밭에 비닐을 씌우지 않고 대신 밭에서 나는 풀을 베어 작물 주변을 덮어주었다. 잡초가 자라나기 시작하는 4월부터 장마철까지 계속해서 풀을 베어 땅을 덮어주다 보면 마치 두툼한 솜이불을 덮은 것처럼 땅의 표면이 풀 부산물로 뒤덮인다. 비닐이나 풀 등으로 밭을 덮어주는 것을 농사 용어로 멀칭이라고 하는데, 멀칭을 하면 비바람에 흙이 쓸려 내려가는 것을 막고 토양의 온도를 유지하며 잡초가 자라나는 것도 막을 수 있다. 또한 풀 멀칭 자체가 분해되며 땅에 유기물을 공급해 준다. 당장 눈에 띄는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몇 년간 풀과 낙엽 등으로 덮어준 밭은 점차 작물이 자라기 좋은 토양으로 변화한다. 


몇 년간 애지중지 만든 밭의 흙은 색이 검고 촉촉하며 포실포실했다. 맨 손으로 밭의 흙을 어루만지며 향기를 맡아보니 기분 좋은 흙 내음이 코끝을 찔렀다. 어떤 맛이 날까 궁금해 한 입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까만 흙에서라면 어떤 작물이라도 풍성하고 건강하게 자라날 듯 보였다. 실제로 이곳에서 수확한 농작물은 맛이 남달랐다. 심어 두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잘 자라나 맛있는 열매를 내주었다. 양파와 마늘은 단단하고 향이 강했다. 파뿌리는 땅 속 깊이까지 뻗어 내려갔고 파 밑동은 아이의 팔뚝만큼 굵었다. 파를 잘라보면 진득한 진액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오이는 달고, 배추는 고소했다. 작물 하나하나에는 크게 신경 쓰지 못하고 흙을 가꾸는데 전념했을 뿐인데, 결과적으로 수확물이 훌륭했던 것이다.


아이에게 엄마로서 어떤 역할을 해줘야 할까 고민이 많은 요즘이다. 흙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작물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저 건강한 흙과 같은 사람, 좋은 흙을 닮은 엄마가 되는 것으로 충분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의 생활에 일일이 신경 쓰고 간섭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좋은 흙을 닮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에 집중하려 한다. 아이가 어려 부모의 손길을 많이 필요로 할 때에는 나의 삶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지만, 다행히 아이가 커가면서 점차 나의 생활에 집중할 시간이 늘어간다. 엄마가 꾸준히 자신의 삶을 가꾸는 데에 집중하다 보면 아이는 자연스레 본인만의 삶을 일구어 나가리라. 




건강한 흙과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몇 가지가 있다. 


먼저, 주말농장과 실내가드닝 등 자연을 가까이 느낄 수 있는 활동을 한다.


책을 가까이하며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 주말이면 함께 도서관에 간다. 도서관에 들어선 아이는 책에 흥미를 보이고 몇 권 뽑아 읽다 보면 자연스레 책을 좋아하게 된다. 아이들이 책을 스스로 읽게 된 뒤부터 우리 가족은 거실에 각자의 책을 들고 앉아 독서를 한다. 평화로운 주말 풍경이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몇 년 전, 식물 생활에 대한 유튜브 채널을 시작했다. 전혀 알지 못하던 분야였기 때문에 영상 촬영 및 편집기술을 공부하며 도전했고, 아이들은 엄마가 만든 영상이 점차 발전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글쓰기 공모전에 여러 차례 응모하여 1등 상을 받기도 했다. 시상식에 아이들과 함께 참석했는데 당시 네 살이던 꼬마는 상을 받으러 단상에 올라간 나를 보며 ‘우리 엄마예요!’라고 자랑스러운 듯 외쳤다. 지역 시민 기자로 활동하며 매월 기사를 발행하는데, 아이들은 기자 직함이 새겨진 엄마의 명함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아이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된다는 것은 나에게도 큰 기쁨이다. 아이들도 삶을 살아가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다양한 일들에 도전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는 습관을 가지려 한다. 습관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행복한 마음을 먹는 것도 습관처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매일 행복했던 일을 한두 가지만 떠올려보아도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가족들과 함께 건강한 음식을 먹을 수 있음에, 함께 손을 잡고 산책을 나설 수 있음, 함께 집에서 평안히 잠자리에 들 수 있음에 감사하다. 아이들이 과거에 얽매이거나 미래를 불안해하기보다 매일 누리는 평온한 일상에 감사하며 행복한 나날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이외에도, 건강한 식습관 유지하기, 운동하기, 저축하기 등 아이가 살아갔으면 하는 삶을 내가 먼저 살아간다.  

아이들은 신기하리만치 부모의 생각과 행동을 그대로 흡수한다. 그래서 간혹 좋지 않은 행동을 하게 되면 아이의 눈치부터 살핀다. '못 봤겠지?’ 아이가 알아차리지 못했기를 바라곤 하지만, 어느 틈에 본 것인지, 못난 내 모습을 그대로 따라 하는 아이들을 발견하곤 한다. 역시 쉽고 빠른 길은 없다. 아이들이 잘 자라기를 바란다면 먼저 내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 효과 좋은 방법일 것이다. 포실포실 포근한 흙과 같은 엄마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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