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씨앗의 정원 Oct 21. 2022

사춘기 자녀를 위한 분갈이

식물이 자란다 아이가 자란다 나도 자란다

작은 화분에 씨앗을 심는다. 서서히 몸을 키우던 새싹은 하나 둘 잎을 더해가며 몸집을 키운다. 화분에 딱 알맞은 크기의 식물이 심겨 있는 모습을 보면 식물도 화분도, 바라보는 이의 마음도 편안하다. 식물이 계속해서 몸을 키워가며 화분 바닥 물구멍으로 뿌리가 삐져나오거나 화분 흙 위로 뿌리 한 두 가닥이 올라오는 때가 온다. 작은 화분 안에 몸을 구겨 넣고 있는 식물도, 그 식물을 지탱하고 있는 화분도 힘겨워 보인다. 시급한 분갈이가 필요한 시점이다. 


초등 고학년이 된 아이의 모습을 보며 아이를 대하는 나의 시선과 역할에 분갈이가 필요한 시기임을 깨닫는다. 어렸을 땐 고분고분 엄마가 하자는 대로 하더니, 이제 “엄마,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전 내 방식대로 해볼게요.”라며 부딪혀온다. 부쩍 달라진 눈빛과 말투에 마음이 철렁 내려앉다가도, ‘아 이제 올 것이 왔구나! 이 녀석, 벌써 다 컸네.’ 훌쩍 자란 아이의 모습이 반갑기도 하다. 


아이가 어릴 때는 부모가 챙겨야 할 일이 많다. 하나부터 열까지 아이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시중을 들다 보면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간다. 한밤중에도 수시로 깨는 아이 덕에 잠을 푹 자지 못해 눈이 퀭한데 다음날이면 또 하루 종일 놀아줘야 한다. 잠시 앉아 커피 한 잔 마실 틈도 없는 날들을 지내다 보면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갖기 힘든 시기가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다. 이제 난 영원히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어느덧 시간이 흘러 훌쩍 자란 아이는 ‘엄마 그러지 않아도 돼요. 이제 엄마의 시간을 드릴게요.’라고 말하듯 혼자서 자신의 일을 해나간다. 아이가 열 살을 넘어가면서부터는 밥 해주는 것 말고 딱히 해 줄 것이 없다. 이제 육아에서 한 발 빠져나와도 되는 건가, 이 생활도 끝이 있는 것이었구나. 이렇게 끝나는 것인 줄 알았다면 조금 더 기쁘게 아이와의 일상을 즐길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든다. 다행히 아직 둘째 아이가 남아 있으니 이 아이에게는 조금 더 감사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아이를 위해서만 분갈이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엄마의 삶에도 분갈이가 필요하다. 아이를 보살피던 화분에서 이제는 나 자신에게 더 집중하는 화분으로의 전환 말이다. 엄마는 다시 자신의 삶에 집중해 나가면 된다. 그때가 오면 마냥 좋을 줄로만 알았는데 막상 자유가 주어지니 어디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10년이나 경력이 단절되었는데 다시 사회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생각하며 자꾸만 작아진다. 그럴 때면 뜨거운 커피 한잔을 들고 앉아 가만히 생각해 본다. 아이에게 그러했듯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가?’, ‘무엇을 하며 삶을 더 행복하게 누릴 수 있을까?’ 찬찬히 질문을 던져본다. 이제 더 이상 아이들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순간이 찾아왔을 때 훌훌 털고 가벼운 마음으로 분갈이를 해 내기 위해 준비를 시작한다.


분갈이를 하고 나면 식물은 잎이 축 처지는 등 몸살을 앓는다. 그도 그럴 것이 분갈이는 땅 속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던 뿌리가 통째로 드러났다 다시 심기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꼭 필요하지만 식물의 모든 근간이 크게 흔들리는 일이기도 하다. 다행히 분갈이 몸살을 덜 앓게 하기 위한 여러 방법들이 있다. 분갈이는 봄가을에 해야 몸살이 덜하고 안정적으로 뿌리를 내린다. 분갈이 후에는 물을 흠뻑 주고 뿌리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때까지 일주일 가량 반음지에 두고 관리한다. 분갈이에 크게 예민하지 않은 식물이 있는가 하면, 뿌리가 민감해 몸살을 심하게 앓는 식물도 있다. 화분 안에서 오래 자란 뿌리는 물과 영양분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므로, 새로운 뿌리가 나올 수 있도록 묵은 뿌리를 정리해줘야 식물 생장이 원활해진다. 그러나 뿌리가 민감한 경우에는 가능한 뿌리를 건드리지 않고 화분만 갈아주어야 한다. 분갈이 역시 각 식물의 특성에 맞게 진행해야 하는 것이다. 


부모의 관심과 사랑 그리고 간섭을 줄여나가는 과정에서 아이와 부모 모두 몸살을 앓기도 한다. 훌쩍 자란 아이를 여전히 어린아이 대하듯 한다면 필연적으로 갈등이 일어난다. 마음에도 없는 말로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도 하고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 아이의 사춘기와 엄마의 갱년기가 만나면 집안 분위기가 살벌하다는데, 우리 집의 분갈이는 어떻게 진행될는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기다리는 중이다. 


무언가 변화를 시도한다는 것은 식물에게도 사람에게도 쉽지 않다. 종종 분갈이 시기가 지난 화분을 바라보면서도 애써 모른 척하고 넘길 때가 많다. 분갈이하며 식물이 몸살을 앓게 될까 봐, 잘못해서 죽을까 봐, 귀찮고 겁이 나서 등 여러 이유로 분갈이를 미뤄보지만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다. 식물은 화분이 작건 말건 계속해서 새로운 뿌리를 뻗어 내려가고 잎을 올린다. 화분 속은 뒤엉킨 뿌리로 가득하다. 분갈이 시기를 놓쳐 화분 안에 뿌리가 가득 들어차면 결국 화분을 깨뜨려 빼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뒤엉킨 채 화분 안에 터질 듯 들어차 있는 뿌리를 보면, 그동안 이 작은 화분 안에서 얼마나 갑갑하고 힘들었을지 안타까운 마음이다. 


다행히 식물들은 분갈이가 필요하다는 신호를 보낸다. 화분에 뿌리가 꽉 차 물이 빨리 마른다거나 화분 구멍 아래로 뿌리가 빠져나오거나 성장이 느려지면 분갈이를 해줘야 할 때다. 아이들도 부모에게 분갈이가 필요함을 알리는 신호를 보내곤 한다. 이 적절한 시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아이가 보내는 신호를 민감하게 살핀다. 혹시 엄마의 울타리를 갑갑해하는지, 더 넓은 화분으로 나아가고 싶어 하는지를 살펴 적절한 타이밍에 성공적인 분갈이를 하려 한다. 이미 어른이 될 준비를 하고 있는 아이에게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키워준 은혜도 모르고 어디서 반항이야!’라며 간섭과 통제를 이어가려 한다면 아이는 격렬하게 반항하며 어떻게든 그 화분을 뚫고 나가려 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삶의 큰 비중을 내어주고 있던 사람들은 아이들이 품을 떠나간 뒤 공허함을 느끼리라 예상한다. 그 시점에 힘들고 싶지 않아서, 아이들이 떠나간 품 안에 어떤 것들을 들여놓을 것인가에 대해 미리 생각해 본다. ‘나’라는 화분 안에서 아이들이 갑갑해하기 전에, 더 크고 알맞은 화분으로 옮겨갈 수 있도록,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신이 원하는 땅에 완벽히 뿌리를 내리고 온전한 개채로 우뚝 설 수 있도록 그렇게 응원하고 싶다. 


이전 22화 솎아내기의 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