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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앗의 정원 Oct 21. 2022

씨앗은 나무가 되기까지 숱한 바람을 견뎌낸다

식물이 자란다 아이가 자란다 나도 자란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커다란 나무도 시작은 작은 씨앗에서 비롯된다. 씨앗에서 싹튼 여린 줄기는 어떤 과정을 거쳐 웅장한 나무로 자라나는 것일까? 그 과정은 쉬이 상상하기 어렵다. 


화분에 망고 씨앗을 심어 작은 망고나무가 자라났다. 아직 어린 망고나무는 줄기까지 모두 초록빛으로 여려 ‘나무’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단단한 풀 같은 느낌이다. 망고나무가 3년생이 되면서 가지 밑동에 갈색 주름 같은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병인가 싶어 한동안 관찰해 보았다. 갈색 주름은 점점 짙어지고 늘어났다.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니 망고나무에 생긴 변화는 ‘목질화’라는 현상이었다. 목질화는 식물이 자라면서 세포벽에 리그닌이 축적되어 줄기와 뿌리가 단단해지는 현상이다. 그러고 보니 나무 밑동이 눈에 띄게 굵어지고 있었다. 만져보니 감촉도 나뭇가지처럼 단단했다. 풀로 불리는 것이 더 어울렸던 어린 망고나무가 성숙한 나무가 되어가고 있었다. 작은 씨앗에서 비롯된 여린 풀이 어떻게 커다란 나무로 자라나는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식물은 바람에 흔들리는 과정을 겪으며 점차 목질화가 진행된다. 초록빛의 매끈한 줄기가 우둘투둘 갈라지며 거친 갈색의 나무로 변화해 이전과는 전혀 다른 물질로 바뀐다. 싱그러운 느낌이 사라져 아쉽다고 느끼면서도 단단하고 성숙한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니 반가운 마음도 든다.




목질화가 진행되며 거친 나무가 되어가는 망고나무를 보며 엄마로 사는 이들의 삶을 생각해 본다. 아이를 낳기 전과 후의 삶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이전의 삶이 전생처럼 느껴질 정도로 모든 것이 변화한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나의 세상은 하루아침에 뒤집혀버린 듯했다. 나를 기준으로 살던 삶에서 아이를 기준으로 사는 삶으로 바뀐다. 아이와 한 몸이 되어버린 듯, 먹는 것, 입는 것, 생활하는 모든 것이 아이가 기준이 되었다. 


모유를 먹이는 동안은 고춧가루가 들어간 매운 음식을 먹을 수 없어 간이 세지 않은 밍밍한 음식을 먹는다. 더운 여름날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이 생각날 때도 탄산수 한 모금으로 달래고 따끈한 커피 한 잔이 절실할 때도 몸에 좋다는 차로 대신한다. 아이 얼굴에 상처가 날 수도 있으니 장식이 달린 옷은 입을 수 없고 귀걸이나 목걸이, 반지도 뺀다. 아이를 안고 다녀야 하니 굽 높은 신발도 포기하고 향수나 화장도 어렵다. 


사실 이런 사소한 것들이야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 가장 힘든 것은 한시도 자유롭지 못한 생활이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니 어느 정도 생활의 자유가 생겨났다. 이제 다시 날아오를 수 있을까 날개를 파닥거려 보지만, 여전히 발목이 묶인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오르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해볼까 하고 구직 사이트를 기웃거려보았다. 만만치가 않다. 원하는 분야의 직장에 풀타임 근무를 하려면 아이들이 하교 후에 혼자 보내야 하는 시간이 너무 길다. 육아에 도움받을 곳 없이 오롯이 부모가 아이를 돌봐야 하는 가정에서는 맞벌이가 쉽지 않음을 실감한다. 선택의 문제이니 눈 질끈 감고 사회로 돌아갈까 하다 조금 더 기다리기로 결정한다. 아이가 초등 고학년은 되어야 엄마가 조금 더 자유롭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으려나보다. 


사회로 나가는 발걸음을 다시 거두어들이고 나서 한동안 마음이 일렁였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면서도 마음은 다른데 가 있었다. 요리도 청소도 시큰둥해 집안이 어수선했다. ‘아, 나는 가정주부로서의 역할도 똑 부러지게 해내지 못하는구나.’ 자괴감이 나를 갉아먹기 시작하고서야 상태가 심각해졌음을 알아챘다.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금 할 일만 생각해 보았다. 어수선한 집안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말끔하게 끝냈다. 부족한 요리 실력이지만 최선을 다해 가족들이 먹을 저녁 식탁을 차려 보았다. 깨끗해진 집안과 맛있게 먹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며 다시금 힘을 내 본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 보자. 흔들리는 이 시간을 알차게 보내다 보면 나라는 존재도 늠름한 나무로 거듭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조금 생긴다. 


앞서 말했듯 나무의 목질화는 바람에 흔들리는 과정을 거치며 진행된다. 엄마로 지내는 동안 숱한 바람에 흔들리고 나면 나라는 사람도 이전보다 단단해질 수 있을까? 비록 예전처럼 싱그럽게 빛나지는 못하겠지만 단단한 나무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 망고나무 밑동을 보며 나 자신의 성장을 기대해 본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을 거치며 뿌리 깊은 나무로 변화해 가는, 세상 모든 부모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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