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이 자란다, 아이가 자란다, 나도 자란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거실로 나가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킨다. 밤사이 칙칙해진 집안의 공기를 밀어내고 오늘의 새로운 공기로 바꿔준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면 그제야 정신이 조금 맑아지는 듯하다. 자연스레 거실 창가에 자리 잡은 식물에게로 눈길이 간다. 이파리를 하나씩 살피고 흙이 마른 화분이 있는지 살핀다. 물이 부족해 힘없이 잎을 늘어뜨린 녀석이 보이면 얼른 물을 떠다 준다.
엄마의 바스락대는 소리를 듣고 아이들이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온다. 아이들은 엄마가 무슨 일을 좋아하는지 관심이 많다. 식물을 좋아하는 엄마를 둔 아이들도 스며들듯 식물에 관심을 갖는다. 어떤 날은 자신이 아끼는 화분에 스스로 물을 주기도 한다. 아직 잠도 덜 깬 얼굴로 식물을 살피는 아이의 진지한 모습을 보는 것이 좋다.
아이와 함께 몇 년간 식물을 키우다 보니 장점이 꽤 많음을 발견하게 된다.
아이들은 길을 걸으며 보이는 나무와 풀에 관심이 많다. 누군가에게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길가의 나무를 보며 아이들은 계절의 변화를 배운다. 봄에는 어떤 꽃이 피는지, 어떤 모습으로 꽃이 지며 그 자리엔 어떤 열매가 맺히는지, 잎은 어떤 모습으로 자라나는지 유심히 들여다본다. 그래서 아이들과 산책을 할 때면 시간을 넉넉히 잡아야 한다.
무언가를 자세히 들여다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관찰하는 힘이 생긴다. 사물을 자세히 관찰하는 것은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호기심은 상상력과 창의력, 과학적 사고력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식물을 바라보는 아이는 궁금한 것이 많다.
“꽃 안에 꿀이 어디에 들어있어요?”
“이 열매는 왜 보라색이에요?”
“밤송이에는 왜 가시가 있어요?”등 쉼 없이 질문이 쏟아진다.
“왜 그럴까?” 되물으면 아이는 골똘히 생각하며 자신의 의견을 얘기한다. 그 생각들이 또 기발하다. 아이의 재미난 설명을 듣다가 아는 것은 대답해주고 모르는 것은 집에 돌아와 함께 책을 찾아보며 배운다. 이렇게 알게 된 지식은 아이에게 그대로 흡수된다. 아이와 함께 식물을 키우는 일은 끊임없이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요즘은 자녀를 많이 낳지 않는 시대라 외동으로 자라는 아이들이 많다. 아이들이 외로울까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도 자주 눈에 띈다. 아이들은 동물을 돌보면서 자연스레 타인을 배려하고 돌보는 방법을 습득할 수 있으니 좋은 현상이라 본다. 동물을 키우기 어렵다면 반려식물을 키워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식물의 상태를 살펴 물을 주고 햇빛을 쬐어주며 아이는 무언가 돌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던 아이들이 작은 화분의 식물을 보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의 마음도 포근해진다. 아이의 마음에 자라나는 배려와 사랑이 보이는 듯하다.
초등학교 교과 과정 중에는 식물의 한살이가 포함되어 있다. 주로 강낭콩 씨앗을 심어 싹을 틔우고 열매 맺는 과정까지를 관찰하며 관찰일지를 쓰는 것으로 진행된다. 요즘은 특히 코로나로 인해 친구들과 학교에서 마음껏 부비며 지내기 어려운 상황이라, 이런저런 교육 자료들을 학교에서 나눠주곤 한다. 어느 날엔가 작은 화분에 다육식물 심는 프로그램을 했다며 집으로 가져와 햇빛 잘 드는 곳에 올려 두었다. “얘는 물을 자주 주면 안 되는 아이예요!”라며 주의사항을 일러두는 것도 잊지 않는다. 아이가 무언가를 돌보는 마음을 낼 때 참 반갑다.
며칠 뒤, 아이와 함께 학교를 지나다 길가에 버려진 다육을 보았다. 뿌리를 드러낸 채 무더운 햇살을 견뎌내던 다육이는 잎이 쭈글쭈글 말라가고 있었다. 아이는 다육을 집어 들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얘, 죽었을까요? 집에 데려다 심어볼까요?”
내가 보기에도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 보였지만 간절한 아이의 표정을 보니 그대로 두고 올 수가 없었다. 시들어버린 다육의 뿌리를 물로 적셔준 뒤 화분에 심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다육이는 한동안 계속해서 시든 상태였는데 어느 순간 통통하게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뿌리가 살아난 것이다. 버려졌던 다육을 살려냈다는 기쁨에 아이는 여전히 그 화분을 아낀다. 식물에 대한 아이의 관심은 생명과 자연,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된다. 생명을 아끼고 보살피는 마음을 배우는 것이다. 살아있는 생명이라 생각하지 못한 누군가는 화분에 심긴 다육을 뽑아 버리기도 하고, 식물도 하나의 생명임을 아는 누군가는 버려진 식물에게도 마음을 쓴다. 아이들과 함께 식물을 키우기 잘했다 싶은 순간이다.
손바닥만 한 작은 화분 하나만 있어도 아이들과 식물의 한살이를 경험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친하게 지내는 지인들에게 종종 화분을 권한다. 지금껏 보아온 아이들은 대부분 화분에 식물 키우기를 즐거워했다. 그래서 많은 아이들이 식물을 키워보게 해주고 싶다. 작은 새싹을 틔워본 아이의 마음에는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이 함께 싹튼다.
오미크론이 한참 기승을 부리던 때, 초등학교에 다니는 첫째 아이도 코로나에 걸렸다. 아이는 일주일간 자신의 방 안에서 혼자 격리생활을 했다. 이틀 정도는 고열로 몸이 아파 누워있느라 심리적으로 힘들 겨를이 없었는데, 사흘째부터는 몸 상태가 급속도로 회복되면서 갇혀 있는 것이 슬프다고 했다. ‘5일은 더 이렇게 있어야 하는데 어떡하지?’ 그때, 며칠 전 아이가 새로 심어둔 사과 씨앗이 발아해 올라오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사과나무 화분을 방에 함께 넣어주었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사과나무의 모습을 관찰하고 그림으로 그리며, 아이는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실제로 식물을 키우는 것이 우울감을 경감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들이 있다. 외롭고 치열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작은 실천으로 나만의 화분 하나 키워보기를 희망하는 이유이다
아이와 함께 식물을 키우면 좋은 점이 많지만, 그중 가장 좋은 것은 아이와 부모가 같은 관심사를 공유하고 공감대를 형성해 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아이가 점차 자라나며 사춘기 자녀와 관계가 멀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함께 식물을 가꾸며 공통의 관심사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제 초등학교 고학년에 접어든 아이와 함께 씨앗을 심고, 식물에 대해 이야기하며, 종종 꽃집에 들러 아이가 좋아하는 꽃 화분을 하나 사 오기도 한다. 함께 시간을 보내며 아이는 요즘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 고민은 무엇인지 슬쩍 물어본다. 사춘기의 특성상 시원하게 답을 해주지는 않지만, 적어도 엄마가 나의 고민을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이는 알게 된다.
식물과 함께 하면 좋은 점이 많다는 것을 이렇게 길게 얘기한 이유는, 한마디로 여러분도 아이들과 함께 키워보면 좋겠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복잡할 것 없이, 작은 화분 하나로 시작해 보시기를 추천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