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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앗의 정원 Oct 07. 2022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식물이 자란다, 아이가 자란다, 나도 자란다

식물이 가진 매력 중 하나는 ‘느림’이다. 빠르게 움직이는 동물들과 달리 식물은 움직임이 너무 느려 마치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여겨진다.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타임랩스 영상으로 찍어 보면 마치 춤을 추듯 끊임없이 흔들리며 자라나는 식물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식물이 실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로 나는 오래, 관심을 두고 자세하게 식물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면 어제보다 조금 자란 잎의 모습이라던가, 미세하게 달라진 잎의 색깔을 확인할 수 있다. 바싹 말라 축 늘어진 화분에 물을 주면 불과 한두 시간 만에 잎이 짱짱하게 솟아오르는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활발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는 식물을 확인하는 것이다. 무언가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은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을 더욱 사랑하게 만든다. 


텃밭을 가꾸다 보면 아이들이 자연스레 채소를 잘 먹는다. 직접 가꾸고 수확한 작물은 더 귀하고 애틋하게 느껴지는가 보다. 나태주 시인의 시처럼 식물 역시 오래 보아야 예쁘고 자세히 보아야 사랑스럽다. 씨앗, 새싹, 꽃, 열매까지 식물의 한살이를 관찰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식물에 정이 든다. 오래 자세히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사랑이 싹트는 것이다. 식물을 좋아하다 보면, 그 식물의 열매를 맛보는 일이 자연스러운 과정이 된다. 


감자는 어떻게 심는지, 어떤 모양의 싹이 나고 무슨 색깔의 꽃이 피는지, 수확할 때 줄기 아래에 매달린 감자는 어떤 모양인지를 알게 된다. 식탁에서 만나는 감자가 공장에서 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땅에 심겨 100일간 양분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나 만나게 된 것임을 알게 된다. 식물에 담긴 농부의 노고까지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주로 마트에서 판매되는 형태의 식물을 본다. 음식으로 섭취하는 순간의 모습만으로 식물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배추와 무, 상추 등의 채소에도 꽃이 피어난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많다. 식탁에 자주 오르는 브로콜리는 꽃봉오리들이 빼곡하게 모여 있는 것인데, 브로콜리의 노란 꽃이 활짝 피어나면 마치 풍성한 꽃다발을 보는 듯하다. 어쩌다 보니 꽃을 피워내기도 전에 사람들에게 먹혀버리느라 미처 꽃을 피울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이다. 채소가 피워내는 꽃은 꽃집에서 만나는 꽃들만큼이나 아름답다. 특히 무꽃은 내가 본 그 여느 꽃들보다 매혹적이다. 흰색과 보라색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청순가련한 모습이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눈에 보이는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님을, 식물의 한살이를 보며 생각하게 된다. 


육아를 하며 부모들은 종종 아이에게 화를 낸다. 부모마다 화가 나는 포인트가 다른데, 나의 경우 아이가 계속해서 같은 잘못을 반복할 때 화가 치밀어 오른다. 첫째 아이는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에서 동생을 때리곤 했다. 다른 사람을 때리면 안 된다고 강조하는데도 동생을 때려 울리면 나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게 된다. ‘엄마가 그러지 말라고 했는데 또 그러는구나!’ 아이에게 소리를 높여 화를 낼 때면 남편은 조심스레 나를 따로 불러 ‘아이가 아직 잘 몰라서 그러니 계속해서 가르쳐주는 수밖에 없다고, 화를 내는 것이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진정시킨다. 맞는 말이다. 앞으로 아이가 변화해 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엄마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아이를 관찰해 본다. 아이는 여전히 같은 잘못을 반복한 게 맞지만 나름대로 노력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아직 자신의 감정을 잘 다루어내지 못해 말로 표현하기보다 손이 먼저 나갔던 것인데, 그래도 이번엔 빠르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동생에게 사과한 것을 보면 조금은 변화했다고 볼 수 있겠다. 화를 낼 때는 보이지 않았던 부분이다. 아이는 여전히 미숙하고 서툰 존재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아주 천천히 변화하고 있다. 


아이는 현재 인생의 어떤 단계를 거쳐 나가는 중일까? 내 아이를 자세히 오래 들여다보면 느리게나마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아이들마다 성장하는 속도가 제각각이니 일찌감치 꽃을 피우려는 아이도 있을 테고 이제 막 싹을 틔워내는 아이들도, 잎을 피워내기 전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다른 집 아이들이 잘하는 모습을 보고 아이를 닦달하며 다그치게 된다. 수많은 육아서를 보며 ‘왜 우리 아이는 이게 안 통할까?’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 아직 꽃 피울 시기가 아닌 아이를 다그쳐, 얼른 꽃을 피워내라고 한들 온전한 꽃이 피어날 수 있을까? 


육아는 내 아이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아이가 어떤 성향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행복을 느끼는지를 관찰해 아이에 맞는 자신만의 육아법을 찾아가야 한다. 자신만의 속도로, 이파리를 하나씩 펼쳐가며 세상에 대해 배우고 자신만의 삶을 꾸려나가는 아이의 모습을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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