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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앗의 정원 Oct 07. 2022

잡초도 이름이 있어요

식물이 자란다, 아이가 자란다, 나도 자란다

주말 텃밭에서 농부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잡초다. 잡초 관리를 쉽게 하기 위해 비닐을 씌워보지만 조그만 틈새라도 있으면 어떻게든 잡초가 자라난다. 매주 부지런히 잡초를 뽑아내도 다음번에 가보면 무성하게 자라 있는 잡초에 골머리를 앓는다. 


여름이면 잡초의 세력이 더욱 강해지는데, 이때 잠시라도 신경을 쓰지 못하면 어른 키 높이로 자라나 텃밭은 정글처럼 되어버린다. 초보 농부들이 텃밭농사를 포기하는 시점이 바로 여름철 잡초가 무성해지는 시기이다. 무성한 잡초만으로도 한숨이 나는데 그 사이에 숨어있는 모기와 벌레까지 보고 나면 절로 고개를 내젓게 되는 것이다.  


초보 농부이던 시절, 무엇이 잡초이고 무엇이 작물인지를 구분하는 것부터 배워야 했다. 다행히 초보 농부들은 씨앗을 뿌리기보다 주로 모종을 심었기 때문에, 내가 심지 않았는데도 자라난 것이 잡초라는 것을 안다. 직접 심은 모종 이외에 다른 것들은 모두 잡초로 분류되어 뽑혀나갔다. 아직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한 어린 잡초들은 쏙쏙 잘도 뽑혀 나온다. 뽑아내면서도 궁금했다. 도대체 잡초 씨앗은 어디에 숨어 있다가 이렇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일까? 잡초의 씨앗은 땅 속에 숨어 있다가 봄이 되면 싹튼다. 몇 년이고 땅 속에서 버틸 수 있다 하니 그 생명력에 놀라게 된다. 


몇 년간 텃밭 농사를 짓다 보니 잡초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져 불리던 풀들이 종류별로 구분되어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처음 외국에 나갔을 때는 모든 사람들이 비슷해 보이다가 시간이 흘러 한 사람씩 구분이 가능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잡초가 하나씩 개별적으로 보이기 시작하면서 각자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쓸모가 없어 잡초라고 불리는 풀들에게도 각자 고유한 이름이 있었다. 개망초, 꽃다지, 닭의장풀, 명아주, 쇠비름, 지칭개, 점나도나물 등 텃밭에 자주 출몰하는 잡초들의 이름을 알게 되면서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변화했다. 텃밭의 골칫덩이로 치부하며 망설임 없이 뽑아버리던 손길에 주저함이 묻어났다. 왜 이곳에 뿌리내렸니. 저 넓은 산이나 들판에 자라났다면 뽑혀버리지 않고 마음껏 자라났을 텐데. 하필이면 텃밭에 뿌리를 내려 잡초 취급을 받게 되었구나.


무성하게 피어난 잡초를 보며, 차라리 저것들을 다 먹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텃밭에 작물을 심을 게 아니라 저절로 자라난 잡초들을 캐어다 먹을 수는 없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봄날의 텃밭에 피어나는 잡초들은 대부분 식용이 가능하다. 쑥, 냉이처럼 널리 알려진 잡초뿐 아니라 개망초, 종지나물, 괭이밥, 민들레 등 다양한 잡초들이 먹을 수 있는 것들이다. 먹을 수 있는 잡초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텃밭의 잡초를 뜯어다 먹어보았다. 개망초와 종지나물은 끓는 물에 데쳐 양념에 무쳐먹으니 제법 나물 맛이 났다. 민들레는 겉절이 양념에 버무려 매콤하게 먹었다. 쌉쌀한 향이 입안 가득 퍼졌다. 잡초의 이름을 알고 먹어주니 그냥 뜯어 버릴 때보다는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잡초의 입장에서 보자면 끝까지 살아남아 씨앗을 퍼뜨리는 것이 나았겠지만, 나의 입장에서는 적어도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잡초 취급을 하지 않을 수 있어 미안한 마음이 덜 했다. 


하나로 뭉뚱그려져 잡초로만 보이던 풀들에 관심을 기울이자 각자의 맛과 향이 드러나는 것을 보면서 아이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아이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아이들 각각의 이름을 불러주고 특성을 고려하여 대하고 있다기보다는 공부하는 수많은 학생들 중 하나로 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훌륭한 작물로 대우받고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잡초와 같은 대우를 받고 있지는 않은가? 


잡초도 알고 보면 이름이 있고 고유의 맛과 향, 효능이 있는 것처럼,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자가 가진 재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공부라는 단 하나의 기준으로 잡초로 여겨져 뽑혀나가지 않고, 자신만의 재능을 꽃피울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아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고, 아이가 관심을 보이는 분야가 무엇인지 살핀다. 아이의 취향과 재능에 대해 섣불리 판단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격려해 주려 한다. 자신의 재능을 알아봐 주는 세상에서 아이는 마음껏 뿌리내리고 열매 맺게 되리라. 


아이들에서 조금 더 확장시켜, 사람들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을 개별적 존재로 바라본다는 것은 의외로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연습이 필요한 일이다. 요즘 MZ세대에 대해 정의 내리거나 혹은 그들의 특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때마다 과연 MZ세대에 속하는 모든 사람을 하나의 공통된 특성으로 묶을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사람을 각각의 개별적인 존재로 여기기보다, 세대, 직업, 또는 다른 무언가로 구분 지어 대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이로 인해 세대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고 그들을 대하게 될까 스스로를 견제하게 된다.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내가 노인 세대에 대해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공원을 산책하던 중 길가에 옥수수 대가 버려져 있었는데 그것을 본 내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드시고 버리셨나 보네’ 하고 중얼거리자 그 말을 들은 남편이 말했다. ‘나이 든 분들이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야. 아무 데나 버리는 젊은 사람이 나이 들어서도 그런 노인이 되는 거지. 안 그런 사람들은 노인이 되어도 안 그래. 사람을 그렇게 세대로 구분 지어 보는 건 좋지 않아.’ 그 말을 듣고 한동안 멍하니 눈만 껌뻑였다. 엄마들을 한데 묶어 개념 없는 존재로 비하하는 단어인 ‘맘충’이란 말을 듣고 분개했었는데, 내가 노인 세대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구나. 마치 한 무더기의 잡초처럼 그들을 대했구나. 모든 풀이 자신만의 이름이 있는 고유한 존재이듯, 사람들을 하나하나 고유한 존재로 대하는 연습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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