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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맛공방 Jan 19. 2021

르완다 내전에서 한국전쟁을 읽다

영화 〈호텔 르완다〉와 책 〈20세기의 문명과 야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잘 모르는 지역은 어딜까? 아마 아프리카일 것이다. 한반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지만, 문명이 덜 발달된 탓에 우리에게 전달되는 정보가 적기 때문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일까? 아프리카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무관심에 가깝다. 몇 년 전, 내가 르완다 내전에 관한 얘기를 꺼냈을 때 주변의 반응도 그랬다.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야. 자기네들 일이니, 자기들끼리 끝장을 보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고 해!” 그러나 과연 르완다 내전은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일까?

테리 조지 감독의 영화 〈호텔 르완다〉는 르완다 내전에서 1268명의 목숨을 구해 ‘르완다의 쉰들러’라고 일컬어지는 폴 루세서바기나의 실화를 다루고 있다. 1994년 르완다에서는 후투족 대통령이 투치족 반군에 의해 피살되면서 내전이 격화되었다. 후투족이 장악하고 있는 르완다 국영 라디오 방송국이 “투치족을 모조리 죽여야 한다”고 선동함에 따라 무자비한 인종청소가 시작되었다. 폴이 일하는 곳은 벨기에인 소유의 호텔. 유럽인들인이 주로 이용하는 이 호텔은 UN군 보호 하에 있었고, 그 때문에 호텔은 금세 살육을 피해 모여든 난민들로 가득 차게 된다. 투치족 아내를 가진 폴(그는 후투족이다)은 호텔 지배인으로서 그들을 정성껏 보살핀다. 

그러나 상황은 악화되어만 간다. 르완다의 참극이 서방에 알려지지만, 정치적 개입으로 인한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 서방의 지도자들은 사태를 수수방관할 뿐이다. 유럽인들 투숙객들은 모두 르완다를 떠나고, UN군도 호텔을 더 이상 보호해주지 않는다. 평소 폴의 친절에 “당신은 우리와 똑같이 품위가 있다”고 했던 백인들은 모두 “자국의 깜둥이 보다 못한 무가치한 아프리카인”의 위상을 확인시켜주며 그를 헌신짝처럼 버린다. 더 이상 난민들을 보호할 수 없게 된 폴은 마지막 수단으로 난민들에게 모두 외국의 유력인사들 중 아는 사람이 있으면 전화를 해서 구호 요청을 하라고 한다. 수단은 적중했다. 외국인사들은 난민들의 정치적 망명을 허용했고, 그들은 구사일생으로 르완다를 탈출한다. 폴도 가족과 함께 벨기에로 망명한다. 르완다 내전은 100만 명의 희생자를 낸 후, 투치족이 다시 권력을 장악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 후투족과 투치족은 왜 그렇게 서로 죽기 살기로 싸우게 되었을까? 처음의 갈등은 14세기에 후투족(전인구의 85%)이 살고 있는 지역에 투치족(14%)이 들어와 왕국을 세워 후투족을 지배하는 바람에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갈등은 그리 심각한 수준이 아니었다. 두 종족은 그럭저럭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었다. 종족 갈등이 악화된 것은 1916년 벨기에가 르완다를 식민지로 만들면서부터였다. 벨기에인들은 지배전략으로 인종 차별정책을 취했다. 숫자가 적은 투치족을 식민지 지배체제의 앞잡이 삼아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후투족을 지배했다. 그로 인해 투치족에 대한 후투족의 증오가 뿌리내렸고, 1962년 독립 후, 후투족이 집권하면서 투치족에 대한 보복 학살이 시작되었다. 두 종족의 갈등은 식민주의가 낳은 비극이었던 것이다. 

가톨릭대 이삼성 교수는 〈20세기의 문명과 야만〉에서 독립을 쟁취하고서도 평화롭게 지내지 못하고 내전으로 치달은 르완다의 역사가 일제로부터 해방된 후 한국전쟁으로 치달은 우리의 역사를 닮아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단일민족인 한국인을 지배하는 데 일본은 인종차별을 이용하지는 못했다. 그 대신 계급차별을 이용했다. 즉 지주계급을 이용해 조선 민중을 통제했던 것이다. 일본은 조선에서 많은 땅을 빼앗았지만, 거기에서 소유권이 분명한 조선인 지주들의 땅은 제외되었다. 그것은 결국 조선인 지주계급의 온존을 의미했다. 일제하에서 일본 경찰의 물리력에 의존해 소작쟁의를 해결하는 양상을 보인 것은 일본인 지주보다 조선인 지주였다. 이런 경험에 따라 사람들 사이에서 “지주=친일파”라는 등식이 성립했고, 이것이 해방 후 “친일파 척결=사회주의 혁명”이라는 등식으로 이어져 좌우 대립, 나아가 한국전쟁의 내적인 뿌리로 작동했던 것이다. 한국전쟁은 일제 식민지 경험과 무관한 좌우 대립으로 인한 이데올로기 전쟁이 아니다. 한국전쟁 역시 르완다 내전과 마찬가지로 식민지배가 낳은 비극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다. 

르완다는 지금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는 투치족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르완다에 진정한 평화를 가져올 것인지는 의문이다. 겉보기에는 평안한 것 같지만 암류(暗流)가 여전히 잠복해있다고 보아야 한다. 요즈음의 벨기에 젊은이들은 르완다 내전이 자신들의 아버지들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거의 모른다. 그들은 마치 르완다 내전을 자신과 전혀 관계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쯤으로 여긴다. 멀찌감치 물러난 백인들은 자신들이 낳은 식민주의의 비극을 뒷짐 지고 바라보고 있는데, 정작 독립을 이룬 르완다인들은 서로 죽기 살기로 싸우고 있다. 언뜻 보기에 어리석게만 보이는 르완다 내전은 사실 우리의 모습인 것이다. 


글쓴이

박민영. 인문작가. 글맛 공방 대표.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오래 글쓰기 강의를 했다. 『글을 쓰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문내공』 등 글쓰기 책과 『반기업 인문학』,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  등 인문사회과학서를 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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