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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맛공방 Feb 23. 2021

돌아오지 않은 대금

가끔 절도에 관한 뉴스를 접할 때가 있다. 그런데 매장이나 남의 집에 침입해서 훔치는 것만 절도일까?      

경제적으로 어려운 때, 남편으로부터 받은 생일 선물이 있었다. 대금이었다. 오래 전부터 배우고 싶었던 악기였다. 조르진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자주 대금을 입에 올렸던 모양이다. 남편은 그걸 기억했다가 내게 선물한 것이다. 주말부부로 지내던 터라 일주일 만에 만나는 남편의 초췌한 얼굴엔 웃음이 한 가득이었다. 손에 들린 대금 때문이었다.     

쌍골죽으로 만든 산조대금이었다. 원하던 물건이었지만 남편과 달리 나는 그리 반갑지 않았다. 일이만원도 아니고 수 십 만원하는 대금이 반가울 리 없었다. 그 돈이면 생활하는데 필요한 이러저러한 걸 해결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나는 악기를 꺼내서 이리저리 만져보고 취구에 입을 대고 바람을 불어넣어보고 있었다.      

처음엔 하루에도 몇 번씩 꺼내서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차츰 뜸해졌다. 대금은 한동안 고이 모셔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저렴한 수강료로 대금을 배울 수 있는 곳을 알게 됐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루라도 빨리 가서 배우고 싶어 안달이 났다.     

마침내 그날이 왔다. 설레는 마음을 애써 추스르며 스승님을 뵙게 된 것이다. 그런데 중늙은이 정도의 스승님인 줄 알았는데 이십대 후반의 훤칠한 미남이었다. 이미 수강하고 있던 두 사람과 인사를 나눈 뒤 첫 수업을 받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한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전철을 몇 번 갈아타가며 집으로 돌아왔다.  대금은 소리 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배우는 게 재미있었다. 그런데 제자 세 명의 실력에 별 진전이 없자 그는 산조대금 대신 정악대금으로 수업을 하자는 제안을 했다. 새로운 악기가 필요했다. 내키지 않았지만 제자들을 위한 수업 안이었기 때문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저렴한 가격에 우리 세 사람이 함께 정악대금을 구입했다.     

띄엄띄엄 있는 대금의 구멍을 막느라 손가락이 아팠다. 연주 자세 때문에 목도 아프고 허리도 불편했다. 처음의 설렘은 사라지고 슬슬 게으름이 몰려왔다. 그 즈음 그는 쉬고 있는 내 산조대금을 자주 만지작거렸다. 아주 좋은 악기라며 칭찬도 하고 농담처럼 자신에게 팔라고도 했다. 나는 악기의 사연을 얘기하고 그럴 일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나의 단호함에도 불구하고 그 후로도 자주 내 산조대금을 어루만졌고 종종 연주까지 해보였다. 연주대회에 나가서 수상경력도 있는 전문 연주가였다. 초라한 실력의 우리 외에 입시생들을 다수 거느리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런 그가 하도 내 악기를 예뻐하기에 나는 농담처럼 약속을 했다. 권위 있는 연주대회에 나가서 입상을 하면 선물로 내 산조대금을 주겠다는 약속이었다.      

얼마 후, 나는 그로부터 연주대회가 있을 거라는 얘길 들었다. 하지만 그 대회에서 그는 입상을 하지 못했다. 농담처럼 했던 내 약속을 그가 기억하고 있었는지는 잘 모른다. 어찌되었든 나의 약속은 무효가 된 것이다. 그런데 그는 다시 내 대금을 들먹이며 이번엔 빌려달라고 했다. 자신의 여자 친구와 함께 연주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그 후, 덕분에 연주를 잘 끝냈다는 얘길 그로부터 들었다. 그리고 다른 지방으로 이사를 해야 해서 더 이상 그에게서 강습을 받을 수 없는 날이 왔다. 작별 인사를 하는 내 눈길은 그의 열려진 대금 케이스에 머물렀다. 차마 내 대금을 돌려달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왜 못해? 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내 스승이었다. 스승과 제자사이의 예와 정이 사라진지 오래되었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수없이 많이 존재할 것이다. 빌려간 물건을 스스로 돌려줄 때 까지 기다리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그는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악기와 떨어질 일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 서너 개의 악기를 보관하는 1m 남짓한 길쭉한 대금 보관 케이스는 그가 하루에도 몇 번씩 여닫는 것일 터였다. 눈에 안 뜨일 수가 있을까? 아무리 악기가 많더라도 남의 물건이고 자신이 그토록 갖고 싶었던 물건이라면 말이다.      

얼마동안 마음의 갈등이 심했다. 전화를 해서 '제 대금을 이제 그만 돌려주시죠' 라고 말할까 라고도 생각했다. 애써서 침착하려하지만 목소리엔 노여움이 서려있을 게 분명했다. 그가 얼마나 부끄러워할까? 비록 가상의 통화상이긴 하지만 그의 당황스러워 할 얼굴이며 황망한 변명이 들려오는 듯했다.       

이젠 더 이상 그런 어리석은 상상은 하지 않으려 한다. 행여 그가 연락해 와서 악기를 돌려주겠다는 기적이 일어난다면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미리엘 주교처럼 말하고 싶다. “제가 선생님께 드린 것입니다.”라고.


글쓴이

빨강머리 앤. 

온유하고 너그러운 사람이 되고 싶은 하와. 


* 이 글은 '글맛공방'의 '에세이 쓰기'를 수강한 분이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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