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CC
현시점에서 기후 위기를 가장 실질적으로 바라보고, 연구하며, 대처 방안을 계획하는 협의체가 있다. IPCC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기후변화와 관련된 전 지구적 위험을 평가하고 국제적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1988년 11월 설립된 국제 협의체다. 세계 기상기구(WMO)와 유엔 환경계획(UNEP)이 공동으로 설립한 이 협의체는 각국 기상학자, 해양학자, 빙하 전문가, 경제학자 등 3,000여 명의 전문가로 구성됐다.
IPCC는 6차례에 걸쳐 특별보고서를 발표했다. 주로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비롯된 공해 물질이 기후 변화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과학적, 기술적, 사회경제학적으로 분석한 결과들을 다루고 있다.
1990년 8월에 발표한 1차 특별보고서는 앞선 100년 동안 지구 표면의 대기 평균 온도가 섭씨 0.3~0.6도 상승했고 해수면 높이는 10~25㎝ 상승했으며, 산업 활동 및 에너지 이용 시스템이 현 상태로 계속될 경우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해마다 1.7배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1995년 WMO가 개최한 스페인 마드리드 회의에서 초안을 마련한 2차 특별보고서는 온실가스가 현재 추세대로 증가할 경우 2100년의 지구 평균 기온은 섭씨 0.8~3.5도 상승하고 해수면도 15~95㎝ 상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2001년 1월 중국 상하이 기후변화 회의에서 발표된 3차 특별보고서는 기후 변화가 자연적인 요인이 아니라 인간에 의한 공해 물질에서 비롯된 것임을 천명하고, 공해 물질이 현재 추세로 배출되면 21세기 안에 앞서 1만 년 동안 겪었던 피해보다 심각한 기후 변화가 올 것이라고 평가했다.
2007년 2월 프랑스 파리에서 발표된 4차 특별보고서는 금세기 안에 지구 표면 온도가 섭씨 1.8~4.0도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고 더욱 심각한 폭우, 가뭄, 폭염, 해수면 상승 등이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2014년 발표된 5차 특별보고서의 주된 내용을 보면 기후 변화는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인위적 영향이 확실하다는 것. 인간이 기후를 더 많이 교란할수록 더 심각하고 광범위한 불가역적인 영향의 위험에 직면하리라는 것. 향후 생물종 멸종, 식량 생산 저하, 질병 증가, 사회적 갈등 증가 등 기후변화로 인한 위험이 증가할 것. 향후 인위적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멈추더라도 기후변화는 지속될 것이라고 했다. 또 이에 맞서 우리에게는 기후변화를 줄이고 더 번영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방안이 있다며 낙관을 보이기도 했다.
2021년 발표된 6차 평가 보고서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번 세기 중반까지 현 수준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유지한다면, 2021~2040년 중 지구 평균 온도가 1.5도를 넘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2018년 특별 보고서에서 제시되었던 2030~2052년보다 10년이나 앞당겨진 것이다. 이는 기후 위기의 진행이 예상보다 빨라졌고, 그에 대응할 시간이 줄었음을 시사한다. 덧붙여 홍수와 고온 현상, 해수면 상승 등 자연재해의 상당 부분도 인간 활동으로부터 비롯됐다고 명확히 밝혔다.
6차례의 보고서 모두 탄소 배출로 인한 기온 상승, 해수면 상승을 기후 위기의 지표로 삼고, 주목하고 있다. 이 둘은 과연 기후 위기와 어떤 연관이 있으며,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지난 만 년 동안 자연에 의해 올라간 이산화탄소 농도는 0.01%이고, 1910년 이후 지금까지 인간에 의해 올라간 이산화탄소 농도 역시 0.01%라고 한다. 또 지난 만 년 동안 자연적으로 오른 지구 표면 평균 온도는 4도라고 한다. 이에 반해 20세기 산업혁명 이전 대비 100여 년간 지구 표면 평균 온도는 1.09도 상승했다. 그나마 에어로졸(황사, 미세먼지 등)이 지구로 들어오는 햇빛을 차단했기 때문에 0.4도 낮아졌다고 한다. 이러한 상쇄가 없었다면 이미 되돌릴 수 없는 1.5도에 도달했을 것이다. 단순 계산을 하면 2천 년 동안 자연적으로 오를 1도를 인간은 100년 만에 올린 것이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100년 동안 또다시 1도가 오를 것이고, 50년이면 0.5도가 오를 것이다. 머지않은 시점에 1.5도에 도달하는 것이다.
기후 위기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 바로 1.5도, ‘Tipping point’다. 균형이 깨지고, 변화가 급속도로 발생하게 되는, 되돌릴 수 없는 시점을 일컫는 말이다. SSP 시나리오(미래 기후변화 대비 수준에 따라 인구, 경제, 토지이용, 에너지 사용 등의 미래 사회경제가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를 적용한 시나리오)에 따르면 지금부터 아무리 노력을 해도 최소 21세기 중반까지 지구 지표면의 온도가 계속 상승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이어 앞으로 다가올 수십 년 동안 탄소를 비롯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큰 폭으로 감축하지 않으면 지구 지표면 온도는 21세기 중 1.5도~2도에 도달하여 온난화의 수준을 넘어 지구 환경을 완전히 바꿔버릴, 더 이상 어떠한 노력도 무의미한 상태, 임계점에 도달할 것이라 예측한다.
IPCC는 현재의 극단적 기상 현상은 기후 변화로부터 기인한다는 점을 명백히 밝혔고, 1950년대 이후의 지구 온난화는 인간의 활동과 관련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에서 ‘명백하다’로 의견을 바꾸었다. IPCC에서는 기후 위기에 대한 유일한 대책은 온실가스 감축뿐이라고 이야기한다.
기후 위기를 논하면서 가장 흔히 이야기되는 사례가 있다. 바로 녹아내리는 빙하다. 빙하가 녹는 것은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 새하얀 빙하가 태양 빛을 반사하기 때문이다. 빙하가 계속 녹게 되면 지구는 자체적으로 열을 방출시키는 능력을 잃기 때문이다. 지구로 들어오는 태양의 열의 약 90%는 바다가 흡수하고, 약 5%는 대지가 흡수한다. 공기에 남는 잔열은 단 2%라고 한다. 이 2% 정도만 인간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이 2%가 지금의 기후 위기와 각종 자연재해를 유발하고 있는 것이다. 하얀 빙하의 면적이 줄어든 만큼 검은 바다의 면적이 늘어나고, 그만큼 태양의 열기를 받는 면적이 늘어날 것이다. 인간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로 인해 빙하가 녹고, 일정량 이상의 빙하가 녹게 된다면 인간이 아무리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인다고 하더라도 자연적으로 지구의 온도는 꾸준히 오를 것이다.
사실 온실가스는 지구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해 주는 온실 효과에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온실효과는 태양으로부터 전달되어 지구 표면에서 방출되는 에너지(복사열)를 대기 중에 존재하는 온실가스가 흡수하고 순환하여 지표면으로 다시 방출하는 과정을 통해 지구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한다. 문제는 온실가스 ‘과다’이다. 문명 발달의 숨결과도 같은 탄소가 지구의 나이를 생각했을 때 무척 짧고 빠른 시간 동안 배출되었고, 그로 인해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가 지구에 갇히면서 지구의 온도를 높인 것이다. 바로 이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우리가 탄소 배출 문제를 논할 때 한 가지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 2020년대 상승하는 지구 온도는 1990년대~2000년대 초반에 배출했던 온실가스의 영향이라는 것이다. 좀 더 가감 없이 직접적으로 말하면, 지금부터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2040년에 1.5도 상승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뜻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루 중 가장 높은 기온이 12시가 아닌 오후 3 시인 것과 같은 이치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이나 태양의 빛이 지금의 빛이 아닌 것과 같다. 시간은 상대적이라는 말이 여기에도 적용된다. 이렇듯 온실가스의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에 망연자실하고, 낙담하며 무력함에 빠져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것이 우리가 지금 당장 기후 위기를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이유이다. 과학자들의 허풍이나 과장이 아니다. 그냥 지금 바로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고, 언젠간 분명히 사라질 지구 역사의 과정일 뿐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엄중히 받아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