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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em Jan 28. 2021

너의 불안을 이해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오만하게도

 너의 불안을 이해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이라고 생각했기에. 사랑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비롯한 수많은 사랑 관련 서적들에서 항상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라고 이야기했고, 나는 그 존재 중 가장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바로 '불안'이라고 생각했기에. 하지만, 너와 함께하며 불안은 너만이 가지고 있는 게 아니란 걸 널 만나며 깨달았다. 나의 불안은 외면한 채, 오직 너의 불안만을 품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어릴 적 항상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사랑의 형태는 동화에 나오는 ‘기사와 같은 사랑’이었다. 단, 악당을 물리치고 공주를 구하는 기사가 아닌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언제나 곁을 지키는 기사의 사랑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다. 상대가 나를 가장 좋아하지 않더라도, 언제나 묵묵히 곁을 지켜주며 안정감을 주는 그런 사랑. 그 사람의 행복에 내가 포함되지 않더라도, 오롯이 그 사람이 행복하기만을 바라는. 하지만 이런 사랑은 나 자신에게는 가학적일 때가 많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데 있어 욕심이 생기지 않을 리 없으니까. 이런 내 감정에 대한 가학적 '무시'는 내 안에 '불안'을 키워나갔지. '불안'이 가진 힘은 생각보다 강해서, 티를 내지 않으려 한 들 이런 불안은 결국 내 행동에 스며들게 될 테니까.


‘인간 사회는 민폐의 사슬이다. 인간은 나약하기에 사회성을 갖는다. 살자면 기대지 않을 수도 기댐을 안 받을 수도 없다. 건강한 의존성을 확장해나가는 과정을 통해서만 우리는 관계에 눈뜨고 삶을 배우는 어른이 될 수 있다.’(다가오는 말들, 은유) 


 나는 안정적이고 네가 불안하다는, 앞으로도 영원히 그런 관계일 거라는 생각에 관계의 상하를 나누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만하게도 인간이 가진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불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치유의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불안'에서 파생된 폭력을 휘두르고 있었다는 걸 언제나 한 걸음 멀어지고 깨닫는다.

 

내가 나를 너무 많이 외면했기에,

언제나 나를 피해 도망 다녔기에,

언제나 이성적이라고 생각했지만 감정에 휘둘렸다.  

이제는 깨닫는다.

나도 많이 불안하다는 걸.

나도 나의 불안을 이해받고 기댈 수 있어야 한다는 걸.

억누른다고, 외면한다고 없어지고 티가 나지 않는 게 아니란 걸.


그러니, 이제는 나의 불안도 잘 돌보아 주어야겠다. 서로에게 기대기도 하고, 기댐도 받으며 서로 잘 의존하는 연습을 해야겠다. 불안하지 않는 내 모습이 성숙하고, 어른스럽고, 강인하다고 생각한 게 아니라 비정상적이란 걸 깨닫고 흔들리되 내가 왜 흔들리는지 이야기해 주며 함께 해 나가는 연습을 해야겠다. 너의 불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의 불안을 내가 이해해야 한다는 걸 너를 통해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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