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끄적거림

침식(浸蝕)

작은 병균이 바꿔 놓은 일상.

by 진영

단단했던 바위가 불어오는 바람에 깎여 간다.

저마다 각자의 자리에서 오랜 시간 동안 쌓아왔던 그 모든 것들이

작은 병균으로 인해 깎여진다.


일상이 침식(浸蝕)되어간다...



평소 나는 겨울이 되면 마스크를 자주 착용하는 편이라, 일회용 마스크를 서랍 속에 꽤 두둑하게 쟁여놨다.

실수로 구매했던 작은 크기의 마스크까지 합하면 대략 100장 정도.

처음에는 천 마스크를 이용하다가, 얼굴에 트러블이 자주 생겨서 결국 일회용으로 바꿔 사용하기 시작했다.

외출을 하고 귀가하면, 사용한 일회용 마스크는 그 즉시 쓰레기통에 버렸다.

외출이 잦은 날에는 일회용 마스크를 하루에 2장에서 3장까지 쓰기도 했다.


내가 보유한 일회용 마스크가 70장 정도 남았을 때 즈음, 코로나가 터졌다.

나는 썩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곧 사라지겠지 뭐...’

'마스크 70장이면 넉넉하겠네...'


나는 한 달 정도면, 이 전염병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스크를 계속 물 쓰듯이 썼다.

그러나 나의 예상과는 달리, 현재 전 국민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상황에 이르렀다.

편의점과 마트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마스크가 순식간에 사라지기 시작했다.

겨울에 쟁여둔 내 일회용 마스크도 결국 동이 났다.

서랍을 휘휘 저어도,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았다.

곡간의 곡식이 다 떨어졌을 때, 이런 느낌일까.

통장에 잔고가 0원일 때, 이런 느낌일까.


낭패였다.


일회용 마스크 보유량 ‘0’ 개.

절망의 순간이 찾아왔고,

나도 여느 사람들처럼 이리저리 떠돌며 일회용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거리를 배회했다.

오랜 시간 동안 발품을 꽤 팔았지만, 어디를 가던 되돌아오는 답변은 늘 한결같았다.


품절입니다.



인터넷에서는 일회용 마스크의 가격이 순식간에 오르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줄을 서거나, 서로 거래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뭔가 우스웠던 이 모든 상황들이, 이제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으로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전염병으로 인해 누군가는 생계를 잃었고, 누군가는 생명을 잃었기 때문에.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견고하게 쌓아온 것들이 무너져갔다.

단단했던 것들이 깎여져 갔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려왔던 일상이 깨어져갔다.


누군가는 집에 머물며 소중한 일상을 포기했고,

누군가는 참다 참다 아예 포기를 포기해버렸다.




2020 作, ‘코로나’. created by 진영.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 전염병으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이 연장되었다.


누군가는 커피숍에서 마시는 커피 한잔을 포기했고,

누군가는 따듯한 봄날의 햇살을 포기했다.


대중교통에서는

누군가의 기침소리가 불편함이 되었고,

마스크 없이 탑승하는 사람들에게 눈살이 찌푸려졌다.


열심히 사회적 거리를 두던 사람들

이제 하나둘씩 지쳐,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지친 자들과 진즉 포기한 자들이

모두 세상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지금.

타인과 안전거리를 두는 일이 더욱 중요해졌다.


도로 위에서는 앞차와 뒤차 간의 안전거리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

연쇄 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자신뿐만 아니라 뒤 따라오던 차들의 안전까지 확보할 수 있다.


거리라는 것이 그렇다.

그 작은 차이가, 그 작은 약속이, 그 작은 원칙이

안전을 지켜준다.


전염병으로 인해 많은 것들을 잃었지만,

더 많은 것들을 잃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일상 속에서 그저 작은 것들을 하나씩 지켜나가는 일일 것이다.














.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