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 vs 악마 2탄.
가끔 물건 계산을 하고, 거스름 돈을 더 많이 받는 날들이 있다.
운수가 좋은 날들이었을까.
그런 날이면 나는 늘 가게로 다시 돌아가 점원에게 말을 했다.
저기... 거스름 돈을 더 받았는데요!
이상하게도 그런 날이면 늘 비가 자주 왔다.
더 받은 거스름 돈을 다시 돌려주고, 돌아오는 길에 비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서 읽었던 '운수 좋은 날'을 떠올렸다.
'왜 먹지를 못하니...'
'거스름 돈을 더 줘도 왜 먹지를 못하니!'
얼마 전 비가 오던 날이었다.
나는 또 한 번 '운수 좋은 날'을 경험했다.
그 날은 평소보다 저녁을 조금 더 일찍 먹은 탓에, 밤 10시쯤이 되자 뱃속이 조금 출출해지기 시작했다.
밤이 늦었지만, 무언가를 조금이라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허기를 달래줄 식량을 사기 위해 집을 나섰다.
- 첫 번째 방문 장소 : 편의점 -
살 것을 미리 정해두었어도, 편의점 안에만 들어서면 늘 항상 이리저리 둘러보며 구경을 하게 된다.
마트나 편의점을 구경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저 보기만 해도 마음이 든든하다.)
먼저 시원한 냉기가 느껴지는 도시락과 샌드위치 코너 앞에 섰다.
'역시... 텅텅 비어있군...'
늦은 밤이 되면 인기 있는 품목들은 모두 사라지고,
맛없어 보이는 녀석들만 늘 덩그러니 남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녀석들은 꽤 오래도록 사람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다가, 꽤 늦은 새벽이 되어서야 배고픔에 눈먼 중생들의 품에 안겨 하나둘씩 이곳을 떠나게 된다.
나의 배고픔에는 아직 이성이 남아있다. 그래서 이 녀석들은 믿고 거른다.
나는 내가 목표로 했던 것들을 사기 위해 빠르게 자리를 옮겼다.
중간에 마주친 바나나 우유가 잠시 발걸음을 멈칫하게 만들었지만, 나는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내 목표는 탄산음료였다.
'오늘의 야식 조합에 바나나우유는 어울리지 않아!'
빠르게 발걸음을 옮겨 음료 냉장고 앞에 섰다. 그리고는 탄산 1+1을 집어 들었다.
1+1 행사는 편의점마다 다르긴 한데, 보통 마운틴듀, 펩시 콜라, 밀키스 등이 주요 품목이다.
'흠...'
'그래! 오늘은 마운틴 듀 너로 정했다! '
기분 좋게 탄산 2개를 품에 안고, 과자코너로 향했다.
가던 길에 추가로 육개장 컵라면을 집어 품에 쏙 안았다.
마지막으로 과자 코너에 들어섰다. 과자들의 종류가 많았지만, 나는 늘 먹던 것만 반복해서 먹는다.
평소 즐겨먹는 조청유과를 집어 들었다. 그런데 오늘의 야식 조합에 있어 너무 달콤한 조청유과는
어울리지 않는 듯했다. 오늘은 조금 더 가벼운 과자가 어울릴 것 같았다. 그래서 조청유과 대신
웨하스 2+1으로 최종 결정했다.
-두 번째 방문 장소: 버거킹-
늦은 밤, 햄버거는 내게 너무 무거운 음식이었다. 배가 크게 고프지는 않았기에
치즈스틱 2개만 포장하기로 결정했다.
주문이 들어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따끈따끈한 치즈스틱이 나왔다.
계획했던 식량들을 모두 구비한 나는 만족함을 안고 집으로 향했다.
오후부터 구름이 짙어져 곧 비가 오려나 했었는데, 이제야 슬슬 빗줄기가 조금씩 굵어지고 있었다.
비를 맞았기에 집에 도착해서 간단히 샤워를 하고, 치즈스틱 2개와 탄산 1개, 웨하스 1개를 가지런하게
책상 위에 정렬했다. 음식 세팅을 마치고 난 후, 나는 야식을 먹으면서 볼 영화를 고르기 시작했다.
영화 한 편을 틀어 놓고, 편하게 자세를 취하며 핸드폰을 바라봤다. 핸드폰에는 편의점과 버거킹에서 결제한 내역이 알림으로 와 있었다.
그런데 편의점에서 결제한 내역이 조금 이상했다.
편의점에서 꽤 많이 산 것 같은데 결제된 금액이 좀 적은 것 같았다. 3,050원 이 찍혀있었다.
뭐지? 꽤 산 것 같은데 내가 이렇게 현명한 소비를 했다고?
나는 내가 사 온 것들을 다시 한번 눈으로 훑어보며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려 보기 시작했다.
-지불했어야 할 금액-
육개장 컵라면 : 850 원
탄산 1+1 (마운틴 듀): 1400 원
과자 2+1 (웨하스) : 1800 원
합계 : 4,050 원
-실제로 결제된 금액-
합계: 3,050 원
'헛!....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시는 분이 천 원을 덜 결제하셨구나...'
'어쩌지....'
샤워도 다 하고 옷도 다 갈아입고, 음료와 음식 영화마저
세팅이 끝났으며, 밖에는 비가 오고 있었다.
'윽...'
'다시 옷을 입고, 양말을 신고, 이 세팅을 두고, 비를 뚫고 가야 한단 말인가...'
내 안에 악마가 속삭였다.
'알바의 실수잖아! 넌 잘못한 거 없어! 그냥 신경 꺼!'
'천 원 굳었네~!, 오늘 운이 좋구나!'
내 마음속의 천사가 속삭였다.
'너 원래 그런 사람 아니잖아!'
'이러지 마! 아르바이트생들이 구멍 난 가격을 자신의 일당에서 메꿔야 한다고! '
'밤늦게 까지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에게 네가 그럴 수 있어?!'
평소 같았으면 바로 달려 가서 말했겠지만,
지금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으며 샤워도 이미 마친 상태라 너무 귀찮았다.
10분 정도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이윽고 나는 다시 옷을 주섬주섬 입기 시작했다.
밖에 나와보니 빗방울이 조금 더 굵어져 타닥타닥 하고 바닥을 치고 있었다.
나는 비를 뚫고, 편의점으로 다시 걸어갔다.
'저기..., 한 30분 전에 물건을 샀는데요.'
'집에 가서 보니까 결제금액이 잘못되었더라고요.'
편의점에 들어가서 아르바이트생에게 말을 걸었다.
아르바이트생은 당황하며 말했다.
'구매하신 것보다 더 많이 결제되었나요?'
'아니요, 제가 산 금액보다 더 적은 금액이 결제가 되었어요.'
그렇게 나는 결제 시간과 결제 목록을 다시 말해주고, 결제한 내역을 찾아
천 원을 더 결제하고 편의점을 나왔다.
밖을 나오니 빗줄기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캄캄한 밤, 그리고 떨어지는 빗방울 사이로 김첨지의 목소리가 조용하게 들려왔다.
왜 먹지를 못하니...
거스름 돈을 더 줘도 왜 먹지를 못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