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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수리 감성돈 Jan 11. 2020

친구야, 밥 좀 줘

2020년 1월 8일(수)-퇴사 8일    


할머니 댁 충주에서 머문지 셋째 날. 

내 기상시간은 오전 11~ 오후 1시 사이. 

그러나 할머니 댁에서는 눈치라는 게 보여서 잠이 일찍 깨버렸다. 

아침밥을 먹어볼까... 하는데, 어머나, 아침부터 할머니랑 고모는 목욕한다고 나가신다고 한다. 냉장고를 열어봐도 마뜩찮아 고민하다가...     

오전 9시, 친구에게 카톡을 보낸다. 

’밥 좀 줘‘

’짜장면 시켜 먹을래? 떡볶이 해줄까?‘

’아니, 밥이랑 국 좀 줘‘

’알았어. 출발할 때 연락해‘


20년지기 친구.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친구는 시댁에서 살다가 분가한지 얼마되지 않았다. 새 집 이사오고 나서 몇 개월 되지 않아 나를 맞이했다. 친구가 임신했을 때 보고 아이가 태어나서 3살이 될 때까지 한번도 실물 영접을 한 적이 없다가 이제야 만나게 되었다. 오전 9시 30분쯤 친구네 집에 가서 밥을 얻어 먹었다. 소고기무국에 계란후라이를 해줬다. 그걸 얻어먹으며 이 집은 얼마고, 대출은 얼마 받았는지, 아이는 언제 어린이집에 가는지, 남편 벌이는 괜찮은지. 이런 현실적인 이야기를 물어봤다. 그러면서 내가 약간 눈치 없어 보였다. 친구가 현재 나의 상황을 물어본다면 난 한마디도 자신있게 미래를 위해 계획한 게 없는데, 나만 무례하게 친구에게 이것저것 물음표만 늘어놓았구나. 싶었다. 그러면서 친구한테 미안해졌다.     


밥을 먹고 수다 삼매경에 빠지다 보니 어느덧 아이가 낮잠 잘 시간이 되었다. 엄마가 된 내 친구도 피곤할 것 같아서 오랜 시간 머물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에 갔더니 목욕을 마친 할머니와 고모의 모습에서 개운함이 묻어났다. 그것과는 별개로 시간이 무료해서 혼자 영화를 보러 갔다. 

“해가 다 졌는데, 이 지지배야, 또 어딜나가~!!!!!!!!!!!!!!” 

할머니가 소리 지르신다. 시계를 보았다. 오후 1시 40분이였다. ...해가 빨리 떨어지네 생각했다. 영화 ’시동‘을 지난주 하남스타필드 메가박스에서 본 적이 있다. 박정민 배우를 한번 더 보고 싶어서 ’시동‘을 예매했다. 하남 메가박스는 성인이 1만 1천원이였는데, 충주 메가박스는 8천원이였다. 조금 더 저렴한 값에 보는 것이라 백수 맞이 한 나를 위한 서비스라도 받은 듯 기분이 좋아졌다.   

 

영화를 마치고 오후 5시쯤 집으로 돌아왔다. 할머니께 5시 전에는 돌아오겠다고 말하고 난 터라 그 시간에 맞게 치킨을 시켜주셨다. 눈에서 오늘 처음 생기가 돌았다. “응?” 그런데 고모랑 할머니랑 나랑 셋이 먹는데 치킨 한 마리? 라는게 의문스러웠다. 나 혼자 살때는 항상 1인 1닭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무슨 행위이지? 부족하면 짜장면을 시켜주겠노라고 할머니는 말씀하셨지만, 할머니께서 무안해하실까봐 셋이서 치킨 한 마리를 먹으며 ’아, 배부르다‘ 하며 일찍 손을 닦고 음료수로 배를 채웠다.   

  

5시 30분. 작업해야 하는 게 있다며 할머니댁에는 와이파이 안된다는 핑계를 대며 나는 동네 카페로 갔다. 정말로 할머니 댁에 잡히는 와이파이는 없었다.  

“혹시 빵 종류는 안 파나요?” 

배가 고팠다. 카페 주인분은 빵을 별도로 팔지 않지만 개인이 먹으려고 사둔 게 있다며 빵을 나누어 주셨다. 너무너무 감사했다.      

하루를 돌아본다. 충분히 백수임에도 바삐 살았다. 할머니의 잔소리를 못 이겨내 조금 힘겹지만, 오늘 하루도 살았다. 그래! 충분히 보람 있었어. 하루의 끝에 달콤함을 맛 보는 것도 괜찮겠지? 아이스 바닐라라떼를 주문했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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