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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수리 감성돈 Jan 11. 2020

귀에서 피나오겠어요.

2020년 1월 9일(목)-퇴사 9일

 

할머니 댁 충주에서 머문지 넷째 날.

할머니의 구수한 말씀에 귀에서 피가 나올 것 같다. 

상황1. 안방 방바닥 놔두고 소파에서 몸 구기며 자는 날 보며 할머니 말씀

“으이구, 모가지 꺾여나가겠다. 저걸 어뜩햐”

상황2. 얼굴에 뾰루지 났는데 거울 안 보고 연고 바르는 날 보며

“저 지랄봐, 엉뚱한 데 쳐바르고 앉아 있네”

상황3. 어제 영화보러 간다고 또 옷 입는 날 보며

“해 다 졌어!!!!어딜 나가!!!!!!!!!!!!”... 오후 1시 40분이였다.     


어디 나가기만 하면 걱정하는 할머니 때문에 오늘은 아무데도 안 나가겠노라고 약속을 했다. 오전에는 지켰지만, 오후가 될수록 몸이 슬슬 근질거렸다. 조현병으로 입원한 고모도 나와 함께 4박 5일 외박나와서 할머니 댁에 머무르고 있다. 당뇨가 있는 고모는 과일도 과당 때문에 못 먹고, 그렇게 좋아하는 콜라도 못 마시고, 먹는데 제약을 너무 많이 받아서 안쓰러워보였다. 정신병동에 2년 넘게 입원해있는데... 얼마나 갑갑할까. 고모가 커피를 좋아하는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시럽을 넣지 않은 커피를 한 잔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였다. 할머니께 고모와 동네 개천 한바퀴만 돌고 오겠다며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 집에서 2분거리 카페로 들어갔다. 고모는 카페라떼를 주문했고, 뜨겁지 않게 미지근하게, 크림은 스푼으로, 음료는 빨대로 마셨다.    


나는 지금 혼자 살지만, 몇 년 후 내 목표는 정해진 게 있다. 몇 년 후 고모가 좀 괜찮아지면 퇴원해서 양평에 가서 같이 살고 싶다. 나는 양평에 북카페를 차려서 오후 1시부터 8시까지 근무. 고모는 낮시간만 이용하는 시설, 예를들면 주간보호센터나 정신보건센터 다녀오고 카페에서 저녁을 함께 먹고 집으로 함께 돌아가는 것이 목표다.     


고모는 슬퍼한다. 고모는 두려워한다. 할머니 돌아가시면 엄마를 잃는거니까 너무 슬플까봐. 그리고 그 후 혼자가 될까봐. 그래서 고모를 볼 때면 난 늘 말한다. 

“고모! 나중에 나랑 사는거야”“고모 평생동안 병원에 있는 거 아니야. 아픈 거 괜찮아질때까지만 있는거야.”     

그러기 위해서 나는 좀 더 건강해지도록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 내일이면 나는 양평으로 돌아가고, 고모는 병원으로 돌아간다. 서로 다른 시간을 살겠지만, 우리 또 그렇게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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