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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수리 감성돈 Jan 12. 2020

일상으로의 초대

2020년 1월 10일(금) -퇴사 10일


할머니 댁에서 머무는 마지막 날. 

오늘은 경기도 양평 내가 머무는 곳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공황장애로 혼자 차를 타고 이동하지 못하고 아버지께서 차량으로 데리러 오기를 기다렸다.     

긴장이 풀린 탓일까. 

하도 돌아다녀서 그런 것일까. 

아침에 정신은 들었는데 도저히 눈이 떠지지 않았다. 몸이 무겁고, 콧물이 폭포수처럼 나오고, 재채기가 쉬지 않고 나왔다. 감기몸살이 심하게 온 것이다. 할머니는 네가 밖으로 나돌아다녀서 감기 올 줄 알았다고 하신다. 그리고 내게 국대접 만한 그릇에 무언가 가득 담긴 물을 건넸다. 할머니께서 직접 담근 모과차라며 이거 마시면 감기 뚝 떨어진다고 마시고 가라고 했다. 할머니의 정성을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라 한 모금 입에 담았다가 삼켰다. 아우...시큼해... 못 먹겠다고 그릇을 테이블에 놓았다. 할머니 서운하시겠지? 그리고 다시 재도전! 꿀꺽 꿀꺽 삼켜버렸다.     


고모를 병원에 데려다 주고 양평으로 가는 길에 갑자기 배가 너무 아팠다. 내비게이션에서 휴게소까지 5km 남았다는데 진짜 ’헉‘소리도 안 나올 정도로 화장실이 가고 싶었다. 간신히 휴게소에서 내려서 화장실을 기어갔는지, 뛰어갔는지, 걸어갔는지, 날아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머문 변기에서는 천둥 번개 소리가 났다. 짧고 굵게. 끝!     

그리고 다시 차를 탔다. 아버지께서 4박 5일 고향에 머무는 동안 공황도 오지 않고 할머니와 고모랑 잘 지낸 게 기특하다며 소고기를 사주셨다. 배가 따끔따끔 거리고, 재채기는 쉼없이 나왔지만 배는 고팠다. 소고기 3인분과 한우 우족탕을 먹고 양평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께 이번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할머니네 집 다녀온 후 혼자 사는 지금의 일상이 너무 소중하게 다가왔다. 다시 돌아갈 공간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아버지는 나를 양평에 내려주고 다시 본인의 거처로 가셨다. 난 다시 혼자가 되었다.     


내일은 병원에 다녀올 예정이다. 재채기와 두통, 배의 통증이 심상치가 않다. 나의 아픔에만 집중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는 지금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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