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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수리 감성돈 Jan 17. 2020

떡볶이는 죄가 없다

2020년 1월 17일(금)-퇴사 후 17일    


우체국에 우편물을 발송하고 오늘도 동네를 한 시간 산책했다. 매일 6천 걸음이 목표인데, 한 시간 산책하고 보니 6천 걸음은 한참 지나 있었다. 

‘자, 이만큼 걸었으니 나는 또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떡볶이 집을 갔다. 작년 12월에 주인이 바뀌었는데, 주인이 바뀌면 어떤 맛이 날지 궁금해서 찾게 되었다. 오픈 첫 날, 떡볶이집 앞에는 화환이 하나 있었는데 ‘OOO, 23세 애인 있음. 떡볶이 드시러 오세요.’라고 써져서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양수리 동네에서 뭔가 재미난 가게, 웃음의 소재가 될 만한 곳이 하나 더 늘었다는 것에 기뻤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찾아갔다.     

“포장 되나요?”

“네”

“카드 되나요?”

“네”

“떡볶이 1인분, 튀김 1인분, 순대 1인분 포장해주세요.”

그리고 얌전히 의자에 앉아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난 부끄러운 게 없다. 혼자 먹을거고 1인분씩만 시킨거니까. 뭐 많은 양도 아니고, 혼자 먹기에 딱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장이 다 되고, 23세 애인 있는 남자 사장님은 나를 보며 말했다. 

“어머니, 꼬지 필요하세요?”

망설였다. 주변에 사람들도 많았다. 나는 순간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다정하게 말했다. 내 기억으로는 그렇다. 홧김에 말한 건 아니다. 

“꼬지는 필요한데요, 어머니는 아니예요.”

“아, 죄송합니다.”

두꺼운 패딩을 입고 있고, 체크무늬 모자에, 검은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 어딜봐서 내가 ‘어.머.니.지?’ 어느 포인트에서 나를 보고 어머니라고 하는 거지? 나는 백수다! 백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사실이니까. 그러나 이건 다른 문제다. 내가 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결혼한 것도 아니고, 애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초면에 어딜 봐서 어머니라는 거지? 도대체 어느 대목이야.    


내 나이 올해로 36살이다. 주변 친구들은 결혼해서 아이가 있기는 하다. 20살에 애를 낳았으면 아이가 16살이다. 16살 중2짜리 친구들과 자주 어울려 논다. 그래서 간혹 어머니 소리를 듣기는 한다. 그러나 나는 지금 혼자였다. 혼자일때도 어머니로 오해 받으니까 서글퍼졌다. 백수 티 나지 않게 백수의 격!을 지키며 잘 챙겨입고 다니는 게 내 목표였는데 백수 소리는 안 들었지만 어머니 소리를 들었다. 그 말이 내게 온 타격감은 컸다.     


“다음에는 어머니가 아니라 손님으로 기억해주세요” 

“네, 죄송합니다.”

떡볶이는 죄가 없다. 그냥 내 자격지심에 불을 끼얹은 것 뿐이다. 집에 와서 떡볶이를 꼬지에 꽂아서 먹었다. 

‘아... 이 집 떡볶이 맛있네.’     


좀 전에 해가 진 밤 마트에 다녀오다가 떡볶이 집을 지나쳤다. 내 표정이 보일 리는 없겠지만... 눈을 흘기며 지나쳤다. 그걸로 족하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책임지기 위해 조금 더 노력하라는 채찍질이라 생각하며 내 안의 평화를! 이너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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