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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수리 감성돈 Jan 22. 2020

할머니는 내가 아플 때 소아과가 아니라 정신과에 갔다.

2020년 1월 22일(수) - 퇴사 후 22일    


초, 중, 고등학교 다닐 때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이였다.(지금은 술을 전혀 못 드신다) 고모는 조현병(옛날말로는 정신분열증 1급), 할머니는 홧병, 할아버지는 파킨슨 병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우울증으로 인해 정신과를 다녔다. 아프다고 할 때면 가정이 이러니까 너가 정신이 힘들어서 몸이 아픈거라며 할머니는 나를 소아과가 아니라 정신과로 데려갔다. 우리 가족은 왜 그렇게 다들 힘들었을까. 뭐 그리 힘들게 살았을까.     


어디가 아프다고 할머니께 말씀드리기 어려웠다. 할머니 한숨 소리가 듣기 싫었다. 할머니의 한숨 소리가 아픔을 이겼다.      


이번에 퇴사하고 나서 할머니께 전화통화 했을 때, 할머니는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이런 가정에서 자라나 너가 지금 공황장애가 생긴 것이라며 눈물을 흘리시며 흐느적거리는 소리로 말씀하셨다. 할머니는 뭘 그리 잘못한 것일까. 다들 참 어렵게 살았다.      


정신과 치료일기 형식으로 된 책을 읽다가 모든 신경이 곤두섰다.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이야기이기에. 아이러니 하게도 공황장애 초기에는 조울증과 공황이 심해서 스스로 나를 해치려 하는 일이 많았는데 이제는 조울이 거의 없어진 상태이다. 하루하루가 즐겁고 감사하다. 딥한 조증이 올라온 건가? 아무려면 어때. 행복한데. 지금의 행복을 의심하지 말자.     


오늘은 전 직장 동료분들을 만나서 점심으로 닭백숙을 먹고 커피를 한 잔 했다. 1시간 이상 집 주변을 산책하고 집으로 돌아와 낮잠을 즐겼다. 잠시 후 일어나 집 청소를 하고 누군가 퇴근하기를 기다렸다가 퇴근하고 같이 순대국밥을 먹었다. 그리고 카페로 와서 2월 달 우리의 여행일정을 짜고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 넷플릭스 영화를 보다가 잠들 예정이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7년차 공황장애로 인하여 정신과 약을 복용한다. 그러나 어렸을때와 지금의 이유는 조금 다르다. 어렸을 때 상처받은 나의 내면 아이 플러스 살면서 겪던, 그리고 겪게 될 모든 불안까지 다 떠안아 아파할 필요는 없다. 나는 그저 지금을 산다. 뜨거운 순대국밥을 숟가락에 잔뜩 떠올려 후후 불면서 먹는다. 그게 지금 내게 가장 큰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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