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1일(토) - 백수 32일째
퇴사 후, 31일 한 달이나 지났기에 이제 날짜를 세어보는 것을 퇴사로 두지 않고 백수로 변경하려고 한다. 그게 더 어울리는 시기가 왔으므로.
지난번에 우리집에 오셨던 손님이 야채를 손질해두고 가셨다. 제육볶음을 해먹을 때 편하게 조리해서 먹을 수 있도록 말이다. 오늘 야채를 넣고 간이 되어 있는 제육볶음을 넣고 프라이팬 가득 가열해서 뜨신 밥을 먹었다. 밥을 먹고 늘어지며 낮잠이 오려고 한다. 잠시 눈을 감았는데... 전화 벨소리가 들린다. 전 직장 센터장님께서 동네 오실 일이 있다고 차 한잔을 제안하셨다. “아이고, 좋죠~” 양치질만 하고 아무거나 주워입고 나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2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리고 대학교 2학년 친구를 불러 또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센터장님은 저녁 식사 전에 집으로 차를 옮기시고, 대학교 2학년 친구와 나는 야채곱창볶음을 먹으러 시장에 가는 길이였다. 신호등 너머에서 낯익은 여자 친구들 3명이 보였다.
신호등을 건너보니 전 직장에서 만난 중2 친구들 3명이 무엇인가 끌어안고 있었다. 만나자마자 대뜸 “강아지 좀 3일만 맡아주세요”라고 했다. 무슨 영문인지 끌어안고 있는 것을 봤더니 새끼 강아지 한 마리가 품 안에 있었다. 이 새끼 강아지 어디서 났는지 물어보자, 시장에서 아저씨가 무료로 주었다고 한다. 아무도 가져가지 않으면 안락사 시킨다고 했단다. 그 얘기를 듣고 중2 친구 3명이 강아지가 불쌍해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고 했다. 동네 천원숍에 가서 강아지 집, 배변 패드, 물통 등등 필요한 물건들을 용돈 모아서 사서 한아름 가지고 있었다. 중 2학교 친구들 3명 중 2명이 집에 가서 강아지 키우는 것을 허락받는 동안 강아지를 맡아달라고 했다. 아직 부모님께 강아지를 키워도 되는지 허락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아... 이 무책임한 녀석들. 집에서 키워도 되는지 허락받지도 않은 채 안락사 되는 강아지가 안쓰러워서 무작정 데리고 오다니... 이 친구들의 심정을 모르는 게 아니라서 가볍게 거절하지를 못했다. 시장 근처 벤치에 앉아 주변에 아는 사람들에게 강아지 좀 맡아달라고 3시간째 전화하고 사람들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아무도 맡아줄 사람이 없어서 걱정하다가 우연히 나를 만나 부탁을 하게 된 것이다. 중2 친구들에게 너희들이 이 강아지를 책임지고 키워야 하며,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나도 모르게 ‘라떼는 말이야’ 하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이틀 정도 맡아줄테니 부모님께 허락받고 강아지를 데리고 가라고 했다. 금방 어미젖을 뗀 새끼 강아지라서 다루기가 조심스러웠다.
“근데, 얘들아. 이 강아지 이름이 뭐니?”
“콩순이요”
그렇게 콩순이를 만났다. 긴장감이 풀렸는지 집에 내려놓자마자 볼일을 여기저기에 보았다. 아직 배변훈련이 안 된 새끼 강아지라 부지런히 따라다니며 닦아줬다. 그리고 강아지 집으로 쏙 들어가 잠들어 버렸다. 강아지에게서 냄새가 나기는 하지만 목욕을 시키는 것도 살짝 긴장되서 내일로 미루었다. 너도 오늘 하루 많은 일을 겪느라 피곤했겠지. 잘 자고 우리 내일 또 얼굴 보자. 그렇게 난 콩집사가 되었다.
이 작은 생명 하나에. 조그마한 숨소리에. 콩집사는 하루가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