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산 Apr 12. 2019

나비의 노래

나비의 노래     


'여명의 눈동자'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당시 드라마가 오롯이 보여준 한국의 근현대사는 충격이었다. 사람들은 저녁 시간이면 이 드라마를 보기 위해 TV 앞으로 몰려들었다.


이 드라마는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것이었다.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여자 주인공 윤여옥이 당한 일이었다. 그녀는 필리핀, 사이판으로 끌려 다녔던 성노예였다. 

그 실체를 모르고 있던 사람들은 분노했고 성노예에 대한 문제를 주시하게 된 계기였다. 물론 드라마도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할 정도로 반응을 폭발적이었다.     


식민지 여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그녀들의 고통은 많은 사람을 울렸다. 당시까지만 해도 음지에 숨어 살던 성노예 할머니들은 이 드라마를 계기로 양지로 나올 수 있었다. 증언은 쏟아졌고 한국뿐 아니라 중국과 동남아의 성노예 여인들의 미투가 이어졌다.     


그녀들의 비극은 1930년대 말부터 태평양 전쟁 기간 내내 지속되었다. ‘서양 세력을 몰아내고 아시아 국가들끼리 똘똘 뭉쳐서 다 같이 잘 살자’는 ‘대동아 공영’을 핑계로 일본은 동남아시아까지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뜨렸다.     

이들의 광기는 극에 달해 있었다. 민간인 마을의 약탈과 여자들에 대한 강제 성폭행은 빈번하게 벌어졌다.

이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여성들을 강제로 끌고 가 일본군의 성노예로 삼기까지 했다. 

10대에서부터 40대까지 여성들은 일명 ‘정신대 종군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무차별적으로 끌려갔다.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의 한 장면

그녀들의 생활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비참했다. 전쟁터마다 끌려 다니며 위안소라고 불리는 구역 안에 갇혀 있어야 했고, 한국말로 대화조차 할 수 없었다.      


그녀들이 상대한 군인들은 적게는 하루 열 명에서 많게는 삼십 명까지 감당해야 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병에 걸려도 치료조차 받지 못했다.


그녀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였고, 집안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이었고 무슨 일이든 해서든 먹고살아야 했던 가난한 과부이기도 했다.      


전쟁에 내몰려 원치 않는 삶을 살아야 했던 그녀들의 수모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조국에 돌아와서는 ‘위안소 출신’이란 딱지가 붙어 문밖출입조차 힘들었다. 심지어 가해자인 일본으로부터는 ‘돈 벌러 온 매춘부’란 소리마저 들어야 했다.     

평화의 소녀상

한국의 모 보수 국회의원은 ‘화냥녀’라는 표현까지 썼다. 

한국 사회에서 이 단어가 의미하는 것은 치욕의 역사다. 보통 ‘화냥년’이라고 통칭되는 이 말의 어원은 고려시대 원나라의 침입으로 국권이 상실되었던 시기에 나온 말이다. 원나라로 끌려간 여인네들이 후일 다시 고려로 돌아왔을 때 부르던 ‘환향녀(還鄕女)’에서 유래한 말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수많은 전쟁을 겪은 나라다. 그리고 한국전쟁을 포함해서 거의 대부분 여성들에 대한 성 착취가 있었다. 


이러한 성 착취는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닐 것이다.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이런 일은 발생하고 있다.      

근래의 경우로는 전 세계를 테러 공포에 몰아넣은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가 그랬다. IS는 점령지에서 이슬람 원리주의 교리를 강요하며 야지디 등 소수종족을 집단 학살했다. 그런데 그들의 만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점령지 종족의 여성들을 성노예로 착취하는 등 반인륜 전쟁범죄를 자행한 것이다. 이러한 IS의 만행에 대해 가장 분노를 표출한 나라가 미국이었다.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이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가던 무렵 저지른 만행은 이러한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사실 성 착취가 가장 대규모로 벌어진 곳은 베를린이었고, 바로 미군에 의한 강간이었다. 전쟁 막바지에 독일의 서베를린은 미군 점령군의 세상이었다. 베를린의 여성들에게 사상 유래 없는 끔찍한 기억을 남긴 도시였다. 

당시 베를린에 남아 있던 인구 270만 명 중 200만 명이 여성들이었다. 


그 시기 가족은 이미 해체된 상태였고, 생존자들끼리 뭉쳤다 흩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전쟁에서 여자들은 이중의 고통을 받게 된다. 배고픔과 강간이었다. 미군에 의해 강간 희생 여성은 총 19만 명에 이른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모스부르크의 한 마을에선 그 해 8월 1일 미군이 들어오고 나서 미군정이 나서서 여성들의 명단을 작성한 것으로 기록이 남아 있다. 기록에는 17명의 소녀와 성인 여성들이 병원으로 끌려가 성폭행 당했다고 한다. 그때 성폭행 피해 여성들 가운데에는 7세 소녀와 69세 여인도 있었다. 

소련군이 진군해있던 동베를린 역시 이러한 상항은 매한가지였다. 


문제는 사람들의 시선이 아우슈비츠의 유대인들의 학살에 집중하는 동안 베를린 여성들은 잊혀졌다는 것이다. 다만 얼마 전 이들의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져 당시 있었던 일을 증언하고 있을 뿐이다. 영화 <베를린의 여인>이 바로 그것이다.     

영화 '베를린의 여인' 중에서

약한 나라, 혹은 약한 민족의 여인들에 대한 성 착취는 고대에는 더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다. 여인들은 전리품에 지나지 않았다.      


로마 건국 초기를 묘사한 <사비니의 여인들>은 그러한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자크 루이 다비드가 구상한 이 작품은 로마의 건국사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 중 하나였다. 이리의 젖을 먹고 자란 건국 영웅 로물루스가 이끄는 로마는 전사의 나라였다.      


그런데 그들에게 하나의 고민이 있었다. 

그들의 제국을 굳건히 유지하기 위해서는 출산을 통해 인구를 늘려야만 했다. 결국 그들이 선택한 것은 이웃 부족인 사비니에서 여인들을 강탈해 오는 것이었다. 

로마인들은 자신들 뿐 아니라 주변의 모든 부족을 초대해 신을 위한 대대적인 축제를 벌였다. 축제가 어느 정도 무르익을 무렵 로마의 전사들은 사비니의 여인들을 약탈해 자신들의 부인으로 삼아버렸다. 사비니의 남자들은 갑작스런 공격으로 힘조차 쓰지 못하고 결국 여인들을 남겨두고 로마를 도망쳐야 했다.      


다비드가 선택한 주제는 이 이후에 벌어진 일을 선택했다. 

그 사건 이후 3년을 와신상담하며 힘을 키운 사비니의 남자들은 로마로 진격해 전쟁을 벌인다. 

그림에서 서로 대립하고 있는 남자들 중 왼편이 사비니의 지배자인 타티우스이고 오른쪽은 로물루스다. 그런데 그들이 대립하고 있는 장면에서 가운데로 끼어들어 평화를 호소하는 여인이 바로 이미 로물루스의 아내가 된 타티우스의 딸 헤르실리아다. 

그녀는 전쟁을 말리기 위해 흰 옷을 입고 전쟁의 한복판에 섰다. 

자크루이 다비드, '사비니의 여인들'

비록 과거의 일로 원수지간이 되었지만 지금은 자식을 둔 친족이었다. 사비니의 여인들은 전장의 중간에 뛰어들어 화해를 중재하고 있다. 그러면서 아이들을 화면의 곳곳에 배치하고 있다. 

한 여인은 타티우스의 다리를 잡고 말리고 있고, 가운데 여인의 발아래는 아이들이 뒹굴고 있다. 그리고 한 아이는 그림을 보는 관객과 눈을 마주친다. 가슴을 풀어헤친 여자는 모성애를 호소하고 있다. 

아이와 어머니라는 관계를 통해 평화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그림에서는 약자와 약탈, 그리고 모성애가 혼재되어 있다. 그런데 이는 다비드의 시각이다. 다비드는 프랑스 혁명에서 강자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었다. 강자의 논리인 것이다. 승자의 논리는 약탈보다는 가족과 사랑으로 합리화한다.     


강자의 논리에서 합리화된 사례는 트로이 전쟁 중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의 이야기에서도 나타난다.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가 불화로 전쟁 한가운데서 대립한다. 그 대립은 여자를 두고 벌어진 탐욕에서 비롯되었다. 아가멤논은 트로이 전쟁 과정에서 포로로 끌고 온 아폴론 신전의 사제의 딸 크리세이스(Chryseis)를 첩으로 삼으려 했다. 

사제 크리세스(Chryses)는 아가멤논에게 자신의 딸을 돌려보내줄 것을 간청했지만 매몰차게 거절당하고 만다. 크리세스가 아폴론 신에게 딸의 이야기를 하며 부탁하자, 아폴론은 그리스 연합군을 향해 화살을 날려 수많은 군사들을 죽게 만들었다.      


그리스군은 이러한 아폴론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예언자 칼키스에게 조언을 구했다. 이에 칼키스는 크리세이스를 돌려보내야만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마음에도 없이 크리세이스를 돌려보내야 했던 아가멤논은 아킬레우스에게 할당된 전리품인 브리세이스를 그의 막사로 데려가 버렸다. 

이에 분노한 아킬레우스가 아가멤논을 죽이려 하자 아폴론이 나서 이를 말렸다. 

아가멤논과 그를 죽이려는 아킬레우스, 말리는 아폴론

그러자 아킬레우스는 더 이상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버렸다. 그러자 전세는 급격히 기울어 그리스 군이 패배를 거듭했다. 


결국 아가멤논은 브리세이스를 돌려보내 아킬레우스를 달래야만 했다.      


이러한 아킬레우스와 브리세이스에 대한 얘기에서 둘 사이의 관계는 사랑이란 새로운 고리가 형성된다. 엄밀히 말해 브리세이스는 패전한 트로이에서 약탈한 여인이다. 승자인, 그리고 역사의 기록자인 그리스의 입장에서 바라본 논리다.      

아킬레우스와 브리세이스

이러한 논리는 유럽의 힘이 세지고 세계의 중심으로 자리잡던 시기에 당연하게 받아들여졌고 이를 묘사하는 그림도 이들의 입장을 충실히 대변했다. 


장 레옹 제롬의 그림에서 보면 여자노예, 즉 약탈해 온 피정복지의 여인들에 대한 표현에서 인간적인 대우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성적인 부분만을 부각하며 성노예로 그녀들을 바라보고 있다. 심지어는 우시장에서 소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는 방식으로 여인들의 상태를 체크하기도 한다. 

강자들의 논리에서 바라본 여인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을 뿐이다.

      

장 레옹 제롬의 '노예시장'
장 레옹 제롬의 '노예시장'

오늘날 인권이 시대정신이 된 문명사회에서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 불가피성으로 무장한 합리화는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학살과 성폭력, 약탈이 약육강식의 논리라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평화는 요원해진다. 

한국과 일본 간의 관계에서도 일본은 식민지 지배와 전쟁이라는 불가피성을 내세우게 되면 갈등 해소가 더 어려워진다. 결국 전향적인 국가적 결단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태어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