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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윈픽스의 빗치 Apr 21. 2019

나 잘난 거 모르는 사람 없게 해주세요!

2018.5.26.

좋아하는 배우나 가수를 묻는 질문은 언제나 어려웠다. 그들의 작품 중 하나가 좋다거나 곡 중 이것은 좋다거나 하는 일은 많아도 어떤 사람을 대표하는 ‘이름’을 거론하면서 “나는 누구누구가 좋아”라고 말하는 일은 뭔가 그 사람의 세세한 부분을 알아야만 할 수 있는 일 같았다.


그나마 20대의 마지막을 달리고 있는 지금은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누구야?”라 고 묻는다면 삐죽삐죽이나마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겼다. 한 명은 김윤아, 또 한 명은 이랑. (우효도 좋다)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기분은 굉장히 뿌듯하다. 하루종일 그들의 음악만 틀어놓고 듣고 있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다.


윤아언니 미안해요...


그런데 내가 이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 관한 세세한 뒷이야기를 말한다. 그 뒷이야기라는 게 그들이 얼마나 직접 겪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잘난 맛에 취해서 산다거나, 남자 관계가 복잡하다거나 그런 것들이다. (이랑은 노래했다. “그러니까 너도 함부로 나한테 남자관계가 복잡하다고 그렇게 말하지마.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알지도 못하면서.”)


어렵게 좋아하게 된 아티스트들이 안티팬이 많은 건지, 내가 안티팬이 많은 아티스트들을 굳이 좋아하게 된 건지 선후관계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안티팬들의 말이 고깝게 들리는 것은 그 안티 멘트들이 대부분 “그 사람은 너무 자기애가 강해”라는 말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자기애가 강하고 자기의 소신대로 발언하고 행동하는 게 왜 흉이 될까.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언제부터 욕할 일이 된 것일까. 모든 사람은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다른 사람도 사랑할 줄 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기준이 뚜렷해야 세상에 어떤 파장이라도 일으킬 수 있다. 결국 이들은 자기 재능을 표출하고 싶어서 작품을 만들고, 나 같은 사람들이 그 작품을 느끼면서 이런 쓸데없는 ‘생각’이나마 하도록 돕는 것 아닌가.


어릴 때 나는 미움 받는 것에 대한 극단적인 불안감에 시달렸다. 주위에서 봐 온 따돌림 당하는 아이들은 너무나 불행해보였다. 나는 절대 그렇게 되지 않아야겠다는 강박증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내가 말하고 싶은 것,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 그런 것들을 억지로 참을 때가 많았다. 그런 쓸데없는 노력 덕에 겉으로는 모든 사람들과 두루 친했다. 내가 가만히 숨만 쉬고 있어도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나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로 그게 얼마나 바보같은 짓 이었는지, 얼마나 나 자신을 학대하는 짓이었는지 후회가 됐다.


그래서인지 나는, 자기만의 특색을 세상에 내보이며 “내가 이렇게 잘났어요!” 하고 발악하는 사람들이 좋다. 김윤아와 이랑 외에도 몇 몇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의 발언이나 작품을 보면 솔직히 손발이 오그라들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사랑스럽다. 다른 사람의 욕을 들으면서도 꿋꿋하게 자신을 표현하려고 하는 거,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2018년 5월 26일 토요일 오전 10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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