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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달 Oct 01. 2024

가을 마중

왕송호수 한 바퀴

어제는 여름 오늘은 가을. 아침에 내린 비로 기온이 아래로 뚝 떨어졌다. 사람들의 발길도 뚝 끊겼다. 한갓진 데다 내리쬐는 볕 없걷기에 최적화된 날이다. 이런 날은 하루종일 걸어도 지칠 것 같지 않다.

먹구름이 걷히고 비에 씻긴 하늘이 새파랗게 드러났다. 목욕한 아가처럼 보드랍고 맑은 빛. 온몸을 감싸고  레일바이크의 연인 가족들의 웃음소리 화음을 이룬다.


왕송호수 편애한다. 무척 아끼기 때문에 많이 와서 어지럽히는 싫다. 시끄러운 것도 싫고. 나만의 장소로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은 곳이다. 얼토당토않은 생각을 하게 만는 곳이다.


호수 저 멀리 사진물을 흐리는 아파트만 빼면 완벽한 뷰다. 탁 트인 곳, 마음탁 트이는 곳이라 나의 편애가 심하다. 건너편 산꼭대기, 수리산 천문대가 보이는데 두 팔 벌려 감싸는듯한 모습은 호수를 돋보이게 한다.

가만 손꼽아 보니 와본 게 열 번쯤 되는 것 같다. 벚꽃 흐드러질 때 와서 남편하고 레일바이크를 탔고, 작년 이맘때는 수원 사는 친구를 불러냈고, 한겨울 눈 덮인 호수는 혼자서 한 바퀴 돌았는데 그때는 철새들의 소리만 요란했었다. 그리고 또...... 생각하다 말고 현재 시선이 호수로, 하늘로, 함께 걷는 남편에게 꽂힌다. 전만 못한 남편은 힘들어했고 맨날 쏘댕겨서 다리 힘이 있어 멀쩡한 . 운전하고 다니면 걷는 건 소홀해지기 마련이짬나는 대로 걸으라고 잔소리하려다 말았다. 그러기에는 날이 너무 좋았고 아름다웠고 눈에 담을 게 많았다. 사진에 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호수 위에 둥둥 떠다니는 이런저런 잡것들을 제거하는 모양이다. 저렇게 호수 위에 떠있는 것이 일이 아니나 놀이로 모이는데. 내가 이렇게 말하면 아저씨가 나를 흘겨보려나.

나는 가을 마중을 나온 거였는데 이상하게 벚나무는 단풍 들기 전에 잎을 다 떨구었다. 겨울나무처럼 헐벗은 모습이 애처롭다. 오히려 홀가분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봄의 벚꽃 못지않게 가을의 단풍도 이쁜데 그걸 볼 수 없다는 게 여간 아쉬운 게 아니다. 이상 기후 때문인가. 올해 단풍도 작년처럼 별로일지도 모르겠다. 아는 게 없으니 이런 추측만 난무하고, 모르는데 갖다 붙여가며 아무렇게나 해석하고 있는 나, 안타깝다.


나무와 꽃을 좋아하지만 아는 게 별로 없다는 것이 치명적인 약점이다.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은 관심이 적다는 뜻이고 애정의 깊이가 얕다는 것일 텐데.


하지만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데 더 이상 뭐라 하겠는가. 내가 내식대로 내 맘대로 좋아한다는데. 나무와 꽃이 주는 아름다움은 눈에 보이는 것도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향기도 있으니 오감을 만족시키고 흥분시키는 대상이다. 내 사랑은 일방적이고 무식하다.




가을 맞다. 이미  마중이 아니라 만남이었어도 반갑고 좋았다.

왕송호수에는 호수만 있는 게 아니라 논도 있고 밭도 있는데 코스모스 군락지는 처음 본다. 오는 계절이 다르고 올 때마다 매번 다르다. 코스모스 옆 논에서는 날마다 일용할 양식이 되어주는 벼가 익어가고 있다.

가을 하면 역시 코스모스다. 가을의 시그니처 꽃이다.

cosmos. 우주라는 뜻의 그리스어인데 어떻게 이런 이름으로 불린 걸까. 궁금해도 잘 알아보지 않는 게으른 사랑꾼이라 좋아만 하고 만다. 톱니바퀴모양의 꽃잎이 비에 쓸려나가지 않은 게 용하다.


핑크뮬리는 난생처음인데 참 신기하다. 하나를 보면 색이 보이지 않다가 뭉쳐놓으면 색이 모아져 눈에 들어오니. 가을이면 핑크뮬리 명소라며 올라온 사진들은 봤지만 이렇게 핑크빛 가을이 와 있을 줄이야. 놀랍고 반갑고 기뻤다.

여름이 오래 버티고 있어서 가을이 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 이미 와있는 가을을 만나고 돌아와 옷장에서 긴옷을 꺼냈다. 내일부터는 겉옷이 필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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