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급장교인 아들에게 소대원지휘를 잘하라고 당부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비상계엄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는, 어쩌면 처참하게 목격했을지 모를 아버지는 얼마나 공포스러웠을까. 아들과의 통화가 마지막일 수 있다고 느끼고 있었을 순간, 그 마음이 전해져 내 마음이 아팠다.
아버지는 아들이 군인다운 군인으로 행동하는 '한 사람'이기를 바랐을 것이다. 비상계엄령이 떨어졌다는 말에 자다가 벌떡 일어나 발을 동동 구르며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으며 꼴딱 날을 샌 ' 한 사람' 나는, 한 아버지의 통화에 담긴 내용에 감동을 넘어 존경심이 우러났다.
80년 5월 광주는 철저히 차단되어 있었지만 44년 후 12월 그날 여의도 국회는 생중계되고 있었는데 이 자체가 하나의 집단 트라우마를 만드는 장면이었으니, 이루 말할 수 없는 분노가 치민다.
'한 사람'의 리더는 '그저 한 사람에 불과'하지 않아 여러 사람을 망가뜨릴 수 있음을, 자기 돌봄을 잘하지 못한 '한 사람'이 리더일 때 엄청난 위해가 될 수 있음을, 재산과 지위는 높으나 인품이 낮은 '한 사람'이 돈 없고 못 배운 사람에게는 악惡이 될 수 있음을 코앞에서 목격했다.
반면교사反面敎師. 국회 앞에서 자기 일터에서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 모두,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하고 우리 '한 사람'이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인지 확인하는 중이다. '한 사람'의 힘이 얼마나 어마무시한 것인지를 똑똑히 배우고 익히는 중이다. 힘을 휘두른 '한 사람'은 숨어버렸지만 우리는 광장에 나와 광장을 차지하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