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을 할수록 더 완벽한 자세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도 생기지만,
내 한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욕심을 비워 내는 것도 함께 배운다.
그렇게 나는 내 안의 균형을 찾아간다.
요가수련을 매일 이어가 진도 어느덧 3개월,
요가는 이제 나의 중요한 일상이 되었다.
요가를 하기 전과 후의 나는 다른 사람이었다.
요가가 좋은 이유를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매트 위에서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이다.
바로 지금의 나를, 그 순간 날것의 나를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만날 수 있다.
한계에 부딪히는 것도
수용이든 회피든 어떤 방식이라도
그 한계에 대응하는 것도 모두 ‘나’라는 걸 알게 된다.
그걸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내가 달라지고 있음을 깨닫기 충분하다.
나는 내가 다니는 요가원
원장선생님이 참 좋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내 또래로 보이는
선생님에게서는
내가 그토록 갈망하는
내면의 단단함이 보인다.
수수한 겉모습과 느릿한 말투로
내뱉는 한마디한마디가
진중하고도 차분해서
부럽기도, 멋있기도 해다.
그래서 닮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런 선생님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만큼만”
그 어떤 말보다 내게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이 말은 절대 대충 하라거나
노력하지 말라는 뜻이 아님을 알고 있다.
너무나 차가운 경쟁사회를 겪으며
나의 한계를 직시할 틈도 없이
타인의, 나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너덜너덜해진 내 마음에 단비 같은 한마디였다.
그 한마디는 나를 다시 움직이게 했다.
무리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만
조금씩
꾸준히 하다 보면
변화는 찾아온다는 걸 이미 몸으로, 마음으로
깨달은 터였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겉으로만 강한 척을 하는 게 아닌
진짜 강해진 나를 만날 수 있다는 걸.
최근 머리서기를 도전하려다
뒷목이 아프다는 내게
선생님이 말했다.
“목이 안 좋으시기 때문에 무리하게 머리서기를 위한 머리서기를 하시려고 하기보단, 지금 잘 안 되는 동작을 먼저 하나씩 풀어나가는 데 집중하다 보면 아마 본인이 이제 머리서기를 할 수 있겠다 느끼는 때가 올 거예요.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요. “
고개를 끄덕끄덕.
안 되는 걸 안된다고 말해주는 진정성.
상대방이 충분히 스스로 수용할 수 있을 만큼의
적당한 개입에서 나오는 적당한 피드백.
이건 분명 비난 또는 비판과는 다른 것이었다.
내가 다른 사람의
평가성 피드백에 약한 사람인가
생각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이제 알겠다.
나는 진정성 없는 비판을 비난으로 받아들이기에
그걸 받아들일 수가 없었을 뿐이다.
나는 오늘도 요가를 통해
한층 더 성숙해진 나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