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그때의 제가 너무 불쌍해서요

심리상담 15회 차

by Slowlifer

일주일에 한 번 심리상담사 선생님을 만나는 시간에 나는 조금 더 나의 내면 깊숙한 곳에 들어있는 나와 마주하는 시간을 갖는다.


처음에는 그곳의 내가 나조차 낯설어 내면 깊은 곳에 있는 나의 아픔과 슬픔을 들여다보는 것이 어색하기만 했고 어색했던 만큼 나는 나의 깊은 마음을 쉬이 꺼내놓지 못했었다.


나는 내 안의 감정의 이름을 잘 몰랐다.


상담 중 “그건 어떤 마음일까요?”라는 선생님의 질문에 주로 내가 선택했던 대답은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거나 이름을 붙일 수 있었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감정들은 ‘불안’이라는 하나의 감정으로 뭉뚱그려지던 시간들이었다.


내 불안엔 이유가 없다고 여겼다. 손에 잡히지 않는 그 불안에 또 불안해졌던 나날들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조금은 단단해진 탓일까, 연습을 통해 익숙해진 탓일까, 지금의 나는 나의 아픔을 마주하는 일 앞에서도 더 이상 뒷걸음치지 않는다.


슬픈 감정이 들면 슬프다고, 불편한 감정이 들면 불편하다고 나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받아들이는 일이 전보다 자연스러워졌다.


불안하다는 말 대신 구체적인 나의 감정을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불안 뒤에 숨은 감정은 대체로 화, 두려움, 슬픔 등이었다. 감정을 억누르는 일에 익숙해진 그동안의 나는 내가 화를 잘 못 느낀다고, 별로 두려운 건 없다고, 슬픈 게 아니라 그저 조금 갑갑하다고만 생각하며 그 감정들의 출구를 막아왔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 안에 일어나는 감정을 무시하지 않고 지켜봐 주기 시작하니 흐릿하기만 했던 나의 상태를 조금은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이유가 없는 줄 알았던 불안의 실체를 하나, 둘 알게 되자 마음속 불안은 어느새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그저 그 감정의 이름을 읽어줬을 뿐인데, 그저 내 감정을 그대로 인식했을 뿐이었는데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다시 예전 한때의 나와 같이 활기를 찾고 밝아진 모습으로 상담을 임하던 내가 힘들었던 나의 시간을 다시 떠올리자 곧장 표정이 어두워졌나 보다.


선생님이 왜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진 것 같냐고 물으셨고 나는 대답했다.


“그냥 그때의 제가 너무 불쌍해서요.. 너무 안쓰러워요. 모든 일이 처음 겪는 일이라 너무 두렵고 무서웠던 그 어두웠던 시간 속에 있는 저를 떠올리기만 해도 너무 마음이 아프고 슬퍼져요 “


그랬다.

나는 회복의 과정에 들어서고 있음에도 여전히 나의 아픔을 마주하는 일은 내게 슬픈 일이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이 있다. 나는 이제 그 슬픔을 담담하게 꺼내놓는다는 것. 그 나의 슬픔과 아픔을 더 이상 불안이라는 이름으로 묻어두거나 외면하지 않는다는 것.


나는 이제 두려움, 슬픔, 연민 등 다양한 내 안의 감정을 읽어낼 줄 알게 되었다.


그저 안쓰러운 과거의 나를 위해 슬픔을 느끼면 느끼는 대로 눈물을 흘려주고 나의 감정을 억누르거나 통제하지 않는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아픔이, 슬픔이 나를 쏙쏙 피해 가준다면 좋겠지만 삶 자체가 고통이 필연이라면 나는 그 고통을 인정하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아프다고 화들짝 놀라 숨기보다 아픔을 그대로 들여다보며 그 아픔이 서서히 사그라 들릴 기다려주는 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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