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우울증 약 그런 거 먹는 거 아니야?

by Slowlifer

병가를 신청할 당시 우리 집에는

시어머님이 와계셨다.


맞벌이인 우리를 도와

아이 등하원을 맡아주시기 위해서였다.


몸과 마음이 곧이라도

와장창 무너져 버릴 것 같던 나날들

시어머님과의 동거는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직은 거리가 있는 관계에서

나의 어두운 면을

보이는 게 너무너무 싫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제가 마음이 좀 힘들어서

치료받으면서 좀 쉬어야 할 것 같아요 “

했으면 그만이었는데

어머님이 집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끝까지 내 입으로는

나의 아픔에 대해 단 한마디도 뱉지 못했다.


남편을 통해 대강 내용을 들으신 어머님은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참고 참으시던 말을 한마디 하시고서는

집으로 돌아가셨다.


“네가 얼른 마음 잘 다스려야지, 나도 그런 일을 당해봐서 그게 무슨 마음인지 잘 알아. 얼른 털어”


나는 뭐라고 한 적도 없는데

내 마음이 뭔 줄 알고 안다고 하셨을까,

여유라곤 없던 내 마음에

그 위로가 와닿았을 리가 없다.


더군다나 요청한 적 없는 위로는

당시 오히려 아픔이었다.


내 입으로 내가 내 아픔을 이야기하고 나면

꼭 내가 정신이상자라고 인정하는 것만 같았다.


스스로에게 감기 걸리면 병원 가듯

마음이 아프면 정신과를 가서

치료를 받아야지 뭐라고 설득하여

정신과 치료를,

항우울제와 안정제를 처방받아 복용하기가

꽤나 적응이 된 상태였는데도 말이다.


여전히 나는 나를

그저 아픈 환자가 아니라

‘이상자’로 여기던 때였던 것 같다.


아버님 생신 날,

온 식구들이 다 같이 시댁에 모여 저녁을 먹는데

불쑥 어머님이 하신 말씀이 가슴에 날아 꽂혔다.


나는 내 입으로 내가 아프단 말을

가족들 앞에서 단 한 번도 하지 않고

힘겹게 아무 내색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어머님의 그 한마디로

모든 게 강제로 까발려진 기분이었다.


“너 우울증 약 그런 거 먹는 거 아니야?”


옆에서 병원을 오가는 걸 보셨기에

짐작을 하셨고 궁금하셨던 모양이다.


악의가 있었던 건 아니란 것쯤은 안다.

그저 우울증 약 복용을 하면

그걸로 나중에 퇴사를 하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지 않냐는 말씀이 하고 싶으셨던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날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님 말이 공기 속에 흩어진 그 순간

모두가 갑자기 조용해지고

분위기가 싸해졌다는 걸.


내가 그날 받은 상처는

어머님 말이 아니라, 침묵 속의 그 공기였다.


정작 당사자는 당황했음에도

웃는 얼굴로, 하지만

더 뭐라 말도 한마디 못 하고 그저

“네, 맞아요”라고 대답했는데

왜 오히려 주변이 다들 얼음이 되었을까.


그 침묵이 더 나를 아프게 했다.


차라리 감기 걸린 사람에게

어디가 안 좋아요? 안부를 묻듯

마음이 안 좋아요? 한마디 해주는 게

백번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심지어 남편 형의 여자친구까지 있는 자리.

솔직히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 숨고 싶었던 날이었다.


죄진 것도 아닌데.

난 아픈 나를 두 번 죽였다.


돌아오는 차 안

혼자 뒷좌석에서 흐르는 눈물을 숨기며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굳이 그렇게 그 자리에서

말씀 안 하셔도 되지 않았을까? “

“엄마가 잘못한 거야, 내가 말할게”

“아니야 뭘, 없는 사실도 아닌데.

그냥 좀 당황스러웠나 봐. “


불과 몇 달 전 사건이었다.


오늘 새벽 일찍 눈이 떠져

가만히 누워있는데

문득 그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의 나라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아마도 당당하지 않았을까.


“네, 마음이 좀 안 좋아서 정신과 치료 중이에요.

약을 먹으니 많이 좋아지는 것 같아요 “


나는 이제 나의 아픔에 대해

더는 억지스럽게 숨기지 않으려 한다.


글을 통해 덤덤하게 털어놓듯

일상에서 마주할 편견에도

내가 아무렇지 않게 대응할 것이다.


아무렇지 않은 척이 아니라

그리 모두가

침묵을 지켜줄 만큼

특별할 일도 아니니까.


많은 사람들이 불안과 우울으로

괴로워하는 요즘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하루라도 더 빨리 병원 치료를 받길 바란다.


도움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도와주세요”손 내밀기.

그게 진정한 나를 위한 용기라 생각한다.


그리고 마음이 아픈 사람을

옆에서 지켜보시는 분들이 있다면

섣부른 위로의 말보다는

그저 믿고 기다려주며 옆에 있어주시길.


도움을 요청할 때

손이 뻗는 그 정도의 거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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