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포진이요? 나는 여전히 나를 모른다

by Slowlifer

갑자기 콧등에 뾰루지도 아닌 것이 방울방울 올라왔고 통증이 있진 않았지만 또 애써 기억해 보자면 따끔따끔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냥 지나가는 피부 트러블이겠거니 생각하고 평소와 다름없이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데 이번엔 턱선에 통증이 느껴진다.


‘왜 이렇게 여기저기 말썽이지?’ 속으로 참 성가신 몸뚱이네라고 불평했다.


그러면서도 운동을 하겠다며 무리해서 밤 수영을 다녀와서 자고 일어난 다음날 아침, 이번엔 온몸을 두들겨 맞은 것 같은 근육통 추가. 심지어 턱선 아래 목으로 작은 혹이 만져졌다. 응? 이쯤 되어서야 슬슬 불안한 마음이 올라왔다. 얼굴은 지나가는 뾰루지라 치더라도 목에 난 혹은? 이런 경험이 없다 보니 심각하게 생각할수록 겁이 났다.


그러면서 최근에 몸의 이상반응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런 것들이 다 신호였던 걸까, 한 달 전엔 갑자기 난데없이 오른손등에 검은 반점과 수포들이 뒤덮었다. 뭐가 그리 바빴는지 딱히 통증이 없다 보니 병원 가야지 하며 차일피일 미루다가 한 달이 지난 지금은 좀 많이 옅어졌지만 틀림없이 그것 또한 처음 겪는 이상 증세였다.


마음이 힘들어 지난 오 개월간 마음 치유에 온 마음을 다했다. 그중 일부는 요가, 프리다이빙, 텃밭 등 내 몸을 적절하게 움직여내서 마음을 가라앉히는 방법이었고 그 방법들에 의해 제법 효과를 보고 있다 생각했다. 그랬다. 나는 지금껏 내 마음을 충분히 잘 돌보아 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최근에 그다지 힘든 일이 있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집 근처 내과를 방문해 이러한 증상에 대한 진료를 받는 동안 의사 선생님이 “최근에 무리하신 일이나 스트레스받는 일 있으세요?”라고 하시는 질문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아니요”라고 답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닌 게 아니었구나 느끼게 된 건 집에 돌아와 남편과 진료 내용을 공유하면서였다.


“최근에 무리한 일 있냐고 물어보던데? 아니라고 했지”


남편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맞받아쳤다. “무리했지, 템플 가서 108배를 두 번이나 하고, 사람들 만나 새벽까지 술도 마시고 오고, 프리다이빙을 다섯 시간 내리 하질 않나, 피곤하다 하면서 수영까지 가고.”


최근의 나의 일정들이었다.


그랬다. 나는 내 마음을 돌본다는 핑계하에 내 몸을 혹사시키고 있었다. 사실은 마음이 편안하기 위해서는 내 몸을 계속 굴려야 했던 것이다.


밸런스.

밸런스가 깨졌다.


‘나는 왜 이렇게 중간이 없나’ 또다시 자연스레 화살을 나에게로 돌린다. 그렇게 그러지 말자고 연습했건만.


마음이 아프면 몸이 아프다.

몸이 아프면 마음이 아프다.


이 둘은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관계란 것쯤은 이제 잘 안다 생각했는데 여전히 잘 몰랐나 보다.


안면에 찾아온 대상포진 증세가 한층 더 심해져 눈까지 올라와서야 정말 겁이 나서 다시 한번 병원으로 갔다. 사실 최근에 이러이러한 일들을 했습니다 이실직고하니 선생님의 표정도 가관이었다. “지난번 진료 때는 무리하신 적 없다고 하시더니..” 그리고 곧장 말을 이어가신다. “본인이 생각하는 무리의 기준과 타인이 보는 기준이 좀 다른 것 같으신데.. 가능하면 다 나을 때까지는 활동을 좀 줄이고 휴식을 취하세요”


뼈를 맞았다.

순간 스쳐 지나갔다. 남들보다 더 혹독한 강도의 일을 떠맡으면서도 “네, 괜찮아요. 할 수 있습니다.” 남발하던 나의 모습이.


결국 나는 마음이 아파 병가를 내고 쉰 지 6개월 차에 대상포진이라는 병을 추가로 얻었다.


회사를 안 가니 일을 안 하고 쉰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그 시간의 공백을 몸을 혹사시키는 쪽으로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머리는 ‘이 정도쯤은 뭐’, ‘예전에 비해 호사지’ 이런저런 생각으로 힘듦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몸의 면역력은 급격히 떨어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또다시 몸이 나서서 나에게 브레이크를 걸어준다.


적당히.


몸과 마음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늘 중간중간 들여다보고 천천히 가라고.


늘 잃고 나서 깨닫는 것이 건강이라더니 아프면 다시 또 힘겹게 쌓아 올려둔 일상이 한순간에 무어진다는 것을 경험하며 이번 주는 다시 나에게 온전한 쉼을 주려한다.


나도 모르게 얼른 괜찮아져야 한다고 나에게 스스로 계속 다그쳐온 건 아닌지 다시 한번 멈춰서 속도를 줄여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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