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다니는 부모

by Slowlifer

아기를 낳고 나면

조금 색다른 종류의 인간관계가 생긴다.

아기를 위한,

아기에 의한 그런 인간관계.

물론 나 같은 종류의 사람은

내가 좋아서 하는 인간관계 말고는

그다지 관심이 없지만

많은 엄마들이 그런 커뮤니티에

시간을 쏟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다.

아기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고

아기에게 좋은 정보를 얻고 등등

나의 관심사는 아니지만

나 또한 아기를 통해 만나게 된

사람들이 몇몇 있다.

그중 가까워진 엄마가

남편 회사에서 에버랜드 표를

구할 수 있으니 같이 가자고 해서 다녀왔다.

밥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서로의 직업 이야기가 나온다.

서로 아주 다른 계열의 일을 하고 있기에

그저 회사에서 수출입 쪽 일 하고 있어요

라고하고 나의 이야기는 줄인다.

그쪽 이야기가 이어진다.

에버랜드 표가 복지로 나오는 아빠야

당연히 삼성 계열일 거라 생각했고,

엄마는 뭐 대충 서초에서 일한다길래

그냥 그렇구나 하고 더 묻진 않았는데

아기 아빠가 이야기한다.

원래 둘 모두 같은 현대 계열에 있었는데

굳이 같은 복지 받을 필요 없을 것 같아서

본인이 삼성으로 이직했다고.

“그렇죠~ 그것도 좋겠네요”

라고 맞장구치고 그 집 아기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너는 앞으로 하고 싶은 건

웬만큼 다 지원받고 살겠구나’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문득 그 대화가 생각났다.

분명 남편분의 그 말투에는

회사에 대한 자부심과 만족감이 느껴졌었다.

그러고 다시 생각을 하고선

남편에게 말했다.

“그래도. 난 다시 못 돌아가.”

나는 자부심과 만족감이 없었으니까.

남편은 내게 단 한 번도

회사에서 버텨내라고 하거나

회사로 돌아가라거나

그런 말을 한 적도 없는데

돌연 혼자 그런 말을 했다.


아마도 그분들과의 대화에서 나는

잠깐이지만 내적 갈등을 한 것 같다.

아기의 미래를 생각하자니

안정적이고 월급 잘 나오고 복지 좋은 대기업을

굳이 발로 걷어찰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하지만 입 밖으로 마음을 꺼내놓아 보니

더욱더 분명해졌다.

이제 못 돌아간다.

그래서 난 내 아기에게

대기업 다니는 부모는 못되어준다.

월급도,

복지도,

그냥 이제 남 이야기가 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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