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
언제부터인가 상담을 할 때 회사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그다지 기억하고 싶지 않기에
내가 의도적으로 내 마음속에서
이미 끝난 일이라고 정리를 해버렸던 것 같다.
하지만 사실 끝은 아니다.
아직 나는 서류상 회사원이기에
회사와 정리할 일이 남아 있으니까.
어제 상담에서는 왜 인지는 모르겠으나
다시 내가 힘들었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내 목소리는 더 이상 떨리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화가 많이 묻어 나오고 있다는 걸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목소리가 제법 격양되어 있었고
그것은 내가 다시 그 상황을 떠올렸을 때
느끼는 감정이 더 이상 '불안'이 아닌
'분노'였음을 정확하게 일깨워 주었다.
나는 당시 항상 불안하다고 말을 했었다.
뭔지 모르겠는데, 그냥 불안하다는 말을 많이 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는데 불안하다고.
사실 이유가 없지 않았다.
불안한 게 아니라 화가 났던 것이다.
너무 화가 나는데 적절하게
화를 내지도, 해소하지도 못하니
이 감정이 오도 가도 못하고 갇혀버려
불안이라는 덩어리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한참을 화가 난 목소리로
당시의 이야기를 끝냈을 무렵 선생님은 빙긋이 웃어 보이셨다.
몇 달 전만 해도 같은 이야기를 할 때 나는
늘 목소리를 떨거나 슬픈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곤 했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진 것 같다고.
그제야 기억이 났다.
상담 초기, 선생님은 늘 불안하고 말하는 내게 물으셨다.
"불안 뒤에 있는 그 진짜 감정은 무엇일까요?
화가 나는 걸까요? 두려운 걸까요?"
나는 이제야 명확히 답을 찾았다.
나는 두려운 게 아니라 화가 났던 것이다.
부당한 일을 겪고도 스스로를 지키지 않은 나 자신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만큼 큰 상처를 주는지도 모르고
언제나 자기 멋대로 미운 말들을 쉴 새 없이 내뱉던 그 사람에게.
선생님은 내가 상처받았던 그날을
아주 깊숙하게 들어와 질문하셨다.
"왜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을까요?"
"그 '일'을 못하게 되었을 때 왜 나는 '내가 부정당하는 기분'을 느꼈을까요?"
"'일'이라는 게 나에게는 어떤 의미인가요?"
다시 눈물이 터져 나왔다.
덤덤했던 감정은 온데간데없이 다시 감정이 요동쳤다.
제가 잘나야 했어요.
그래야 제 가족이 사니까요.
제가 잘나지 못하면, 진짜 우리 가족은 답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그래서 어떻게든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능력을 키워서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수준이 되지 않으면
엄마도, 아빠도, 가족도 없을 것 같았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열심히' 밖에 없었어요.
열심히 해서 인정받아야 했고, 여태 열심히 해서 인정받았어요.
이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는요.
그런데 처음 알게 됐어요.
열심히 해서 안 되는 것도 있다는 걸요.
슬픈 눈으로 내 이야기를 공감하며 들어주던 선생님이 이야기했다.
"나에게, 일이란, '생존'이었네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
그랬다.
일은 내게 생존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저 살기 위해 일을 열심히 했던 것뿐이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니라,
내 부모가 지키지 못한 내 가족을 내가 지켜내기 위해서
나는 끝없이 성장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나는 나를 잃었던 것이다.
모든 것이 다 설명이 된 기분이었다.
내가 왜 그렇게 성취욕이 높고,
인정 욕구가 강한지.
이내 감정을 가다듬고 선생님에게 말했다.
"선생님, 근데 저는요.
이번 일을 겪어서 일에 대해 완전히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됐어요.
이제 저는요, 제가 진짜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남에게 인정받는 게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하고, 인정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알았어요.
여태는 경제력을 갖추려고 무조건 돈을 많이 벌어야 된다는
생각으로 일을 했는데요. 이제는 안 그러려고요.
돈은 또 벌면 되니까요."
선생님은 너무 반가운 말이라며
다행이라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시며 웃으셨다.
여태 나에게 일이 '생존'이었다면,
나는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고 준비 중인가 보다.
가족을 위한다 하더라도
내가 없으면 가족도 없다는 사실을 이제 잘 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