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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함에도 유효기간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내 안의 애어른을 만나다

by Slowlifer

아빠가 미웠다.

아이를 낳고 나니 아빠가 더욱 더 미웠다.

이렇게 예쁜 아이를 두고 어쩜 그렇게 무책임했을까,

가족의 생계보다 본인의 자존심이 그렇게 중요 했던걸까,

이해가 가지 않았고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아빠니까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아빠니까


비록 경제적으로는 무책임했지만

정서적으로는 불안감 못지 않게

평생의 ‘내 편’, 내가 뭘 해도 나의 편이 되어 줄 사람이 있다는

안정감도 느끼게 해준 사람이 바로 아빠니까


미워도 아빠니까

미워하더라도 아빠는 늘 내 마음속에서 그렇게 남겨둬야 한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덩그러니 혼자 남겨두기도 했지만

나도 살아야겠다며

나도 이제 제대로 된 정서적 독립을 해야겠다며

애써 외면 했던 나날들이 있었지만

나는 대체로 아빠에 대한 마음을 끊을 수 없었던 딸이었다.


대부분은 마치 아이를 보는 듯한 심정의 마음이었다.


불안함

불쌍함

가여움


그 때는 몰랐다.

그저 시간이 많이 남은줄로만 알았다.


아빠가 희귀병 진단을 받았을 때에도,

치료할 약은 없으며

현상 유지만이 진료의 목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도,

이 병은 발병하고 3년 이내에 그 증세가 확연히 심각해지는 게

일반적이라는 이야기를 분명히 들었었다.


그저 해석을 달리 했을 뿐이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었으니까.


3년이라는 시간이 죽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뇌가 죽어가고 있어서

단지 거동이 불편하고, 대소변을 스스로 조절할 수 없고,

의사소통이 안되고, 밥을 삼키는게 힘들어지고,

뭐 그래도 죽을거라고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한번도 아빠가 내 곁을 떠날거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누구나 죽는다는 그 뻔한 사실을

나 역시 외면하고 살았다.


마치 그 사실이 나에게는 적용되지 않을 것처럼.


아빠의 병세가 급격히 나빠져서

요양원에 있던 아빠는 병원에 입원을 했다.


이제는 숨을 혼자서 제대로 쉬지 못한다고 한다.

산소호흡기를 단 채 병원 침대에 앉아

밖을 멍하니 쳐다보는 아빠의 눈에는 더이상 생기가 없었다.


생기를 잃은지는 이미 오래였지만

나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아빠의 혼은 이미 흐려지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생각하다가

이내 생각을 접었다.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에.


동생네 근처에 입원해있는 아빠를 보러

한달에 한번은 우리 식구는 금요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동생네 집으로 가서 외박 신청한 아빠를 모셔와서 시간을 보냈다.


그저 아이를 보여주는 것만으로

내가 할 도리는 다 하는 냥 느껴졌다.


휠체어를 밀고,

동시에 유모차를 밀고,

춥지도 덥지도 않은 어딘가를 다닌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그 핑계로 늘 집에서 그저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에

심리적 죄책감을 덜어내곤 했다.


하지만 늘 알고 있었다.

이건 최선이 아니라는 걸.


나는 더 할 수 있었지만

더는 무리라고 스스로 합리화를 하였고

아빠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늘 그 죄책감에 울곤했다.


결국은 내가 후회할 것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고

늘 느끼고 있었고, 나는 그 마음이 버거웠다.


결혼한 동생네에 한달에 한번 정기적으로 가서 지내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

눈치를 봐야 할 일이었다.


그것 또한 좋은 핑계거리였다.

그렇게 나는 병든 아빠를 한 달에 한 번 보러 가는 것에

온갖가지 핑계를 갖다 대며 현실에 묻혀 살았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며,

나는 나 대로 열심히 살면 된다며,

내가 살아야 가족도 있다며,

자위 하면서.


맞는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틀린 말이다.


나에게 소중했던,

나의 인생에 정말 중요한 부모라는 사람의 시간은

어쩌면 내 생각보다 훨씬 짧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애당초 내 계산에 없었기 때문이다.


수화기 너머로 의사 면담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생이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라며,

조금 더 자주 보러 오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 말이 가슴을 찢어놓았다.


급하게 병원에 입원을 한 아빠를 보러

주말에 내려갔다 돌아온 직후였다.


심폐소생술 각서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마음 약한 누나에게

모든 사실을 다 알리지 않던 동생이

힘들게 꺼냈을 그 말에

누나로써 짐이 되기 싫은 마음에

꾹꾹 참아보려던 마음이 터져나와버렸다.


꺽꺽 거리며 울어버렸다.


죽는 건 생각못했다.

아빠가 죽을거라는 건 전혀 생각을 못했다.

그것도 어쩌면 수년내.. 아니 수년도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나만 하지 못했던 거다.


모든 것이 후회되고

모든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감 조차 오지 않아

잠이 들기 어렵고

잠에서 깨기가 두려워졌다.


이 슬픔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지금부터 그냥 울 수 있는만큼

다 울어버리면

정말 남들처럼 그렇게 겉으로는

덤덤한 척 살아갈 수 있게 되는건지 사실 지금의 나는 알 수가 없다.


남들이 다 그렇게 산다는데

나도 그렇게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남들보다 30년은 빠른 인생을 살고 있는 아빠는

남들이 30년 뒤에나 겪을 일을

30년이나 앞 서 겪는 우리는 대체 뭘 그리 잘못했을까

원망스러운 마음이 올라오다가도

원망조차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마음 껏 미워하지도 원망하지도 못하게 되었다.


아픔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가 없어서

이 마음을 꺼내 놓아야 내가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는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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