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하나 차분히 풀어 가보자, 너는 멋지게 해낼 수 있을 거야
TCD가 어느덧 마무리단계에 들어서고 있었다.
이근우부장이 이야기했던 입찰준비를 위해
오전 시간은 회사에서 입찰준비를, 오후 시간은 TCD 현장에서 시운전을 했다.
시운전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오전 시간만으로 입찰을 준비하기에는 다소 버거웠고, 어쩔 수 없이 시운전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왔다.
그날은 유난히 시운전이 늦어졌다.
선선한 바람이 귓가를 스치는 가을날의 저녁이었음에도 온몸은 땀으로 흥건했다.
문득 선배들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정우야, 왜 과로사가 줄어들지 않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저라면 죽음의 그림자가 보일 정도로 힘들 다면 회사를 그만두던 할 것 같은데요.“
“그럴 것 같지, 그런데 오늘만, 내일만 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되는 거래
그래서 더 무서운 거래“
‘나 이러다 과로사하는 거 아니야!’
불현듯 겁이 났고, 갑작스레 눈물이 났다.
입찰 마감기한이 점점 다가오며, 시간이 촉박하여 저녁조차 하지 못한 채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과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내가 서러웠던 것인지
회사 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어둡고 텅 빈 사무실이 서러웠던 것인지
이러다 과로사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무서웠던 것인지
아니면 이 모든 것이 서럽고, 무서웠던 것인지
여태껏 모르겠다.
한 시간 정도를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었나?
마음을 추스르고 준비하던 입찰서류 하나하나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넘어져 있을 여유도, 힘들다, 아프다 투정할 여유조차 나에게 없었다.
그때 나는 불행하게도 그러했다.
입찰 서류를 준비하다 보니 시간은 어느덧 새벽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조금만 더 하면 마무리되지 않을까
잠시나마 바보 같은 생각을 하다 그만두었다.
그래 내일 하자!
다행히 이틀이라는 시간이 나에게 있잖아
입찰은 이틀 후였고, 어느새 마무리되어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쓸쓸하리만큼 적막했고, 한산했다.
어쩌면 새벽 1시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 편안하게 쉬며, 잠을 청하고 있을 시간이니 너무나 당연한 일일지도
피곤함 때문이었는지, 치기 어린 어리광이었는지 요란스럽게 울리는 알람소리를 무시하고 10분만 10분만 하다 지각을 해버렸다.
급히 이시운상무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죄송하다 했다.
알았으니 늦었다 급히 서두르지 말라한다.
회사에 들어서니 30분 정도 지각이었다.
그날따라 양병수대표까지 자리에 있었다.
‘어휴 이게 무슨 망신이냐’
이부장은 나를 보더니 한마디 한다.
“김정우과장 이제 지각까지 하네?”
그 누구도 도와주는 이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운전 마치고 회사로 들어오면 다들 퇴근하고 없으니
내가 몇 시까지 어떻게 일하는지 알 리가 없지
체념한 듯 죄송하다 이야기하려 하는데
양병수대표가 문을 열고나오며 운을 뗀다.
“이부장, 김과장 요 며칠간 계속 새벽에 퇴근했어요.
내가 이부장에게 지시했던 입찰준비 어디까지 진행되었죠?
혹시 김과장이 혼자 준비하고 있던 건 아닌가요?“
“아, 대표님 저는 시운전 후 마무리를 해야 해서, 김과장에게 부탁했습니다.”
“이시운상무님, 이근우부장 제 방에서 잠시 이야기 좀 하시죠!”
이야기는 꽤 길어졌고, 그 사이 TCD 방문 시간이 되어 TCD로 향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새벽에 퇴근한 걸 양대표가 어떻게 알았는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나에게도 내 편이 한 명쯤 있구나, 혼자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 다행인 것은 준비하던 입찰은 좋은 결과가 있었고,
이부장은 수주한 공사 준비로 한 동안 엄청나게 바빴다.
정말 쌤통이었다! 하하